[군사대로]'우리도 호주처럼'…韓 '핵추진 잠수함몽(夢)' 이뤄질까
호주 핵잠수함 건조에 韓 독자 개발 희망美 등 핵공급국그룹 핵연료 공유 안할 듯美, 중국 보복 두려워하는 韓 불신 분위기北, 韓 핵잠수함 보유 막으려 공작 가능성육군 중심 국회 국방위, 불가론 제시 기미
미국과 영국, 호주는 지난 15일 3국 안보협력체인 '오커스(AUKUS)' 창설을 발표하면서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제3국에 자국의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이전하는 것은 1958년 영국 이후 처음이다. 미국은 냉전 시기였던 1958년 옛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영국에 기술을 제공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 안팎에서는 핵추진 잠수함 확보를 위한 희망이 생겼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이 중국과 북한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국인 한국에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이전해줄 수 있다는 기대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핵추진 잠수함 확보를 위해 수년간 준비를 해왔다. 문 대통령은 2017년 4월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핵잠수함은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가 됐고, 이를 위해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논의하겠다"고 말했고 이후 트럼프 미 행정부를 상대로 독자적인 핵추진 잠수함 건조 가능성을 타진해왔다. 현 정부 인사들도 핵추진 잠수함 건조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심승섭 전 해군참모총장은 2019년 국정감사에서 "핵잠수함은 장기간 수중작전이 가능해 북한 SLBM 탑재 잠수함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격멸하는 데 가장 유용하다"고 밝혔다. 김현종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지난해 7월28일 "차세대 잠수함은 핵연료를 쓰는 엔진을 탑재한 잠수함"이라며 "한·미 원자력 협정과 핵추진 잠수함은 별개고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말했다.
핵추진 잠수함은 20~30노트(시속 37~55㎞) 속력으로 장기간 항해할 수 있기 때문에 작전 중 다른 세력에게 탐지되더라도 신속하게 추적을 회피할 수 있으며 상대방이 어뢰 등 공격을 시도하더라도 공격 성공 확률을 낮출 수 있다. 핵추진 잠수함은 디젤-전기추진 잠수함보다 크게 만들 수 있어 넓은 탑재공간에 더 많은 양의 어뢰, 기뢰, 잠대함·잠대지 미사일 등 무장을 적재할 수 있다. 아울러 핵추진 잠수함은 디젤-전기추진 잠수함에 비해 은밀성이 뛰어나다. 디젤-전기추진 잠수함은 축전기 충전을 위해 매일 일정시간 '스노클(공기흡입)'을 해야 한다. 이 때 소음과 열이 많이 발생하고 수면 위로 선체 일부가 노출되기 때문에 항공기나 수상함에 들킬 수 있다. 반면 핵추진 잠수함은 원자로를 활용해 거의 무제한으로 잠수할 수 있어 스노클이 필요 없고 은밀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나아가 핵추진 잠수함은 주변국에 비해 해군력 열세를 가장 효과적으로 만회할 수 있는 수단이다. 핵추진 잠수함은 잠수함뿐만 아니라 항공모함, 이지스함, 구축함 등 모든 해군 함정에 대응할 수 있는 공격적인 무기체계다. 옛 소련은 1980년대 미국의 항공모함 전력에 대응하기 위해 비슷한 수준의 항공모함 전력을 구성하려고 하다가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대신 순항미사일을 다수 탑재한 안테이급 핵추진 잠수함을 개발한 바 있다. 국내 잠수함 분야 최고 권위자로 방위사업청 잠수함사업단장을 지낸 문근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겸 대한민국잠수함연맹 부회장은 한국군사문제연구원에 기고한 '잠수함의 전략적 유용성과 대잠전 발전방안'이라는 글에서 핵추진 잠수함 확보를 주창했다. 문 교수는 "장보고-Ⅲ급 배치-Ⅲ 이후는 5000t급으로 규모를 늘려 반드시 핵 추진 체계를 장착해야 한다"며 "핵추진 잠수함에 필요한 우라늄 확보를 위한 정책적 문제의 해결과 함께 고속항해를 위한 고성능 소나 제작과 방사소음 감소기술, 선체구조 재설계, 잠수함 내부 대기관리기술 등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 교수는 핵추진 잠수함을 동해에서 2척, 남해에서 1척 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동해의 2척은 번갈아가며 북한의 SLBM 탑재 잠수함을 추적하고 감시하면서 주변국 감시 임무도 수행한다"며 "남해에 있는 1척은 서해로 침투하는 북한 잠수함 감시 및 전략적 타격 임무와 함께 주변국 감시 임무, 해군 기동전단에 대한 대잠 방호 임무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우선 미국이 아직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16일 한국도 호주처럼 가까운 미래에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을 전수받을 가능성이 있느냐는 자유아시아방송 질의에 "이번 호주의 경우는 예외적인 것으로 앞으로 그렇게 될 근거 선례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백악관은 지난 20일 전화브리핑에서 한국 같은 나라는 왜 호주와 같은 자격을 얻지 못하느냐는 질문에 "이것은 호주에 대한 것이고 호주와 관련된 독특한 상황에 근거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미국이 허락하지 않으면 한국은 합법적인 경로로는 핵연료를 확보할 수 없다. 현재 발전소용 우라늄을 판매하는 국가는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캐나다 등이다. 이들 국가는 발전소용이 아닌 잠수함용으로 우라늄을 판매할 수 없다.
한국이 호주만큼 미국에 믿음을 주지 못한 점 역시 고려해야 한다. 호주는 중국의 경제 제재를 무릅쓰면서까지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에 동참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2016~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조치 이후 중국을 자극하는 행위를 꺼리고 있다. 미국 전문가들은 미중 경쟁의 맥락 속에서 한국의 태도를 문제 삼고 있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수 김(Soo Kim) 전 미 중앙정보국(CIA) 정책분석관은 지난 17일 자유아시아방송에 "현재 한미 동맹은 견고하지만 미국이 한국에 핵잠수함 기술과 같은 더 많은 자원을 공유하려면 한국이 한미동맹에 대한 더 큰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랜드연구소 군사전문가인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지난 16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미국은 수십억 달러를 들여 핵잠수함을 개발해왔는데 이 기술이 적국으로 새나가면 미 핵잠수함 전체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며 "미국은 기밀정보 보안 문화가 철저히 잘 갖춰진 정말 가까운 동맹국에만 잠수함 기술과 기밀정보를 공유할 것"이라고 짚었다.
특히 북한은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보유할 경우 북한이 건조 중인 신형 잠수함과 개발 완료 단계인 SLBM의 활용도가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일찌감치 견제구를 던졌다. 북한 외무성 보도국 대외보도실장은 20일 조선중앙통신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파괴하고 연쇄적인 핵 군비 경쟁을 유발시키는 매우 재미없고 위험천만한 행위"라며 "우리는 미국이 이러한 결정을 내린 배경과 전망에 대해 엄밀히 분석하고 있으며 우리 국가의 안전에 조금이라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 반드시 상응한 대응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더라도 정부는 내부의 반대세력을 넘어서야 하는 최종 관문을 앞두게 된다. 육군 예비역 장성들이 장악하고 있는 국회 국방위원회는 해군의 전력 보강에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 국방위는 현재 추진 중인 경항공모함 건조 사업에도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등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국방위가 핵추진 잠수함 불가론을 뒷받침하는 각종 근거를 제시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이 많다.
또 북한 SLBM 탑재 잠수함을 선제 타격하거나 북한 잠수함 기지를 봉쇄할 경우 북한 잠수함에 대한 탐지와 추적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핵추진 잠수함이 디젤-전기추진 잠수함보다 더 큰 소음을 발생시켜 활용도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아울러 핵추진 잠수함은 지나치게 커서 얕은 수심에서 기동이 곤란하기 때문에 한반도 해역에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다. 핵추진 잠수함이 정박하는 항구나 지원시설을 건설해야 하는데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비관론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공약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길주 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 발간 학술지 '국가와 정치' 제27집 2호에 기고한 '한국형 원자력추진잠수함 정책추진과정 분석: 관료정치모델의 적용과 발전적 제언' 논문에서 무기 개발에 정치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 연구원은 "정치권력이 개입하면 기존의 관료조직 간 순수한 경쟁구도는 무력화돼 군사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무기체계가 정치적으로 휘말리게 될 위험성이 있다"며 "더욱이 지나치게 정치권력에 의존해 하향식으로 전력기획이 이뤄지면 정치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전력이 되고 만다"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