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로]"종잇장 불과" vs "국제법 효력" 종전선언 실효성 논란
도경옥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전례 소개소련·일본, 이스라엘·요르단 등 선언 사례한국 전쟁 독특성에 선언 효과 클 수도제2의 켈로그-브리앙 조약 될 것 우려도
사실 종전 선언을 먼저 꺼낸 쪽은 미국이었다. 2006년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종전 선언과 평화 조약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후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에서 종전 선언이 다시 거론됐다. 종전 선언이 현안으로 부각되고 실질적인 검토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2018년이었다. 그해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4·27 판문점선언을 통해 연내에 종전을 선언하기로 합의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 선언을 재차 촉구하고 북한이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이에 따라 종전 선언 성사에 따른 효과를 가늠해보기 위해 역대 종전 선언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도경옥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종전 선언과 평화 협정 2단계 구상의 의미와 과제' 논문에서 역대 종전 선언 사례를 분석했다. 도 위원에 따르면 교전 당사자들이 전쟁의 종료에 합의하고 이를 공동으로 선언하는 것이 종전 선언이다. 이를 통해 도출된 문서는 공동 선언 형식을 띠고 있더라도 국제법에 준하는 위상을 가질 수 있다. 종전 선언이 조약 수준의 구속력을 갖게 된 대표적인 예는 1956년 소련과 일본 간 공동 선언이다. 이 선언은 제1조에서 '소련과 일본 간 전쟁 상태는 이 선언이 발효하는 일자에 종료되며 평화·우호·근린 관계가 회복된다'고 규정했다. 양국 간 외교관계·영사관계, 억류자 문제, 청구권 문제 등도 다뤄졌다.
이 때문에 1956년 소련과 일본 간 공동 선언은 평화 협정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당시 선언에 법적 구속력이 있다는 점에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거의 없다. 국제법적 효력을 갖는 종전 선언의 또 다른 예는 1994년 이스라엘과 요르단 간 공동 선언(워싱턴 선언)이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1994년 7월25일 워싱턴 선언에 서명했다. 이 선언에는 '양국 간 오랜 충돌이 이제 종료된다'는 규정을 담고 있다. 선언 후 3개월 뒤인 1994년 10월26일 체결된 평화 조약은 전문에서 '양국이 1994년 7월25일 워싱턴 선언에서 교전 상태의 종결을 선언했음을 유념한다'고 언급했다. 조약 제1조는 '이스라엘과 요르단 간의 평화 수립은 이 조약의 비준서가 교환됨과 동시에 효력을 발휘한다'고 규정했다. 워싱턴 선언이 평화 조약 체결의 계기로 구체적으로 적시된 점을 고려하면 이 선언 역시 법적 구속력 있는 종전 선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는 종전 선언 사례도 있다.
그리고 2018년 9월16일 양국은 정식으로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당시 평화 협정 제1조는 '양국 간 전쟁 상태가 끝났으며 평화, 우호, 포괄적 협력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양국이 평화 협정 체결 전에 협정의 윤곽을 제시하는 정치적 성격의 문서를 채택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런 점에서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의 종전 선언은 이스라엘과 요르단 간의 워싱턴 선언과는 구별되는 측면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1978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 '캠프 데이비드 합의(Camp David Accords)' 역시 법적 구속력 없는 종전 선언으로 분류된다. 캠프 데이비드 합의는 '중동평화 계획'과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평화조약 체결 계획'으로 구성됐다. 캠프 데이비드 합의는 ▲당사국 간 분쟁의 평화적 해결 ▲지역 안보를 위한 국제 평화유지군 주둔 ▲중동 분쟁의 포괄적이고 항구적인 해결을 위한 이스라엘과 아랍국 간 평화 조약 체결 추진 ▲평화 조약에 적용돼야 할 기본 원칙 ▲서안지구·가자지구 문제의 최종적 해결을 위한 단계적 조치의 시행 등을 규정하고 있다. 다만 캠프 데이비드 합의에 전쟁 종료가 규정된 것은 아니었다. 전쟁 종료는 197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 평화조약 제1조에 담겼다. 캠프 데이비드 합의는 평화 협정 체결 전 단계에서 채택된 정치적 성격의 문서라는 점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한반도 종전 선언과 비슷한 점이 있다. 하지만 캠프 데이비드 합의에 전쟁 종료가 규정된 것은 아니라 차이점도 있다.
일각에서는 종전 선언의 법적 구속력 존재 여부를 떠나 선언의 내용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6·25 전쟁의 양상과 그 이후의 전개가 독특했다는 점에서 종전 선언에 어떤 내용이 담기느냐에 따라 그 효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전쟁은 발발 당시 전쟁 당사자 쌍방의 국제법상 국가로서의 지위가 모호했다는 점, 국제적 전쟁과 내전의 성격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점, 전쟁의 당사자가 서명 당사자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전쟁이 어느 일방의 패전과 항복으로 종결되지 않은 점, 종전도 평화도 아닌 기간이 68년 동안 유지되고 있다는 점 등 여타 전쟁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전쟁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독특함이 종전 선언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본다. 최철영 대구대 법대 교수는 '한국전쟁 종전선언의 법적 쟁점과 과제' 논문에서 "한국 전쟁의 종결은 전통적인 평화 협정의 체결이 아닌 창조적 방법을 통해 새롭고 독특한 구조로 이뤄질 수 있다"며 "정치적 선언으로서 법적 효과를 갖는 한국 전쟁 종전 선언 또한 전쟁을 종료하는 한국의 독특한 방식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한반도 종전 선언에 들어가야 할 내용으로 ▲한국 전쟁에 대한 당사국들의 합의된 평가와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위한 관계국들의 의지 확인 ▲공식적인 한국 전쟁의 종료 선언과 이를 제도화하기 위한 당사국들의 책무와 조치 ▲전시 관계에서 평시 관계로 전환된 한국 전쟁 당사국들 간의 관계 정상화 등을 제시했다. 아울러 ▲종전 선언 이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평화질서 형성을 위한 상설적 대화기구를 포함하는 한국 문제의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을 위한 조치 ▲통일을 지향하는 국가적 실체로서 남북 관계의 특수성에 대한 승인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에 대한 관계국들의 지지와 협력 선언 등도 종전 선언에 포함될 수 있다.
최 교수는 그러면서 "정치적 종전 선언은 언제라도 취소할 수 있지만 종전 선언으로 이뤄진 법제·사회경제적 변화는 어느 정도 불가역적 성격을 갖게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비관론도 없지 않다. 미국에서는 종전 선언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로버트 매닝 미국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지난 15일 미국의 소리 방송(VOA) '워싱턴 톡'에서 "(종전 선언) 그건 단지 종잇장에 불과하다"며 "켈로그-브리앙 조약처럼 단지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매닝 연구원은 이어 "우리가 단지 이런 성명을 낸다고 북한이 '좋습니다. 여기에 핵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걸로 생각한다는 것은 정말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매닝 연구원이 언급한 켈로그-브리앙 조약(Kellogg-Briand Pact)은 1928년 8월27일 미국의 국무장관 프랭크 켈로그와 프랑스 외무부 장관 아리스티드 브리앙이 제안해 15개국이 체결한 전쟁 규탄 조약이다. 이 조약은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추진됐다. 국가정책 수단으로서의 전쟁을 포기할 뿐만 아니라 분쟁 해결을 위한 전쟁이 불법임을 선언하는 내용이 조약에 담겼다. 부전 조약 또는 전쟁 포기에 관한 조약으로도 불린다. 1939년까지 63개국이 이 조약에 가입했다. 조약 발기자인 켈로그는 국제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192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 조약에는 조약을 위반할 경우 제재 방안이 담겨 있지 않았다. 아울러 조약 가입국인 독일과 일본이 1940년대에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등 근본적 한계가 드러났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