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무의미의 악당들, 그들이 만든 지옥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이 던지는 질문[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에서 동욱(김도윤)은 신을 욕한다. "그런데 말이야, 신이란 놈은 참 야비한 놈이야." 동욱은 이번엔 신에게 직접 소리친다. "메시지가 너무 복잡해서 못 알아 듣겠어. 도대체 말하고 싶은 게 뭐야 이 새끼야!" 동욱은 한 때 새진리회의 사상을 신봉하며 화살촉 멤버로 활동하던 인터넷 방송 진행자였다. 그는 미지의 존재에 의해 행해지는 죽음 고지(告知)와 그 예언의 시연(試演)이 죄지은 인간을 벌하려는 신의 뜻이라는 새진리회의 교리를 철썩같이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고지가 자신에게 내려오자 이를 인정할 수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도 없는 그는 폐인이 되고 만다. 그렇게 시연만 기다리며 수 년 간 고통 속에서 살던 동욱은 영재(박정민)와 소현(원진아)을 만나게 된 후 이들의 아픔을 통해 자신을 향한 고지가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됐다며 기뻐한다. 그러나 신의 대리인이라는 지옥의 사자는 또 한 번 동욱이 해석할 수 없는 결과만 남겨놓고 떠나버린다. 이제 동욱은 절규한다. "도대체 말하고 싶은 게 뭐야."
불가해한 일 때문에 고통받는 건 동욱만이 아니다. 영화 '곡성'(2016)에서 종구(곽도원)는 딸에게 자꾸 이상한 일이 생기자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동네 곳곳을 뒤지고 다닌다. 이웃에게 물어보는 것은 물론이고 병원에도 가보고 성당에도 가본다. 하지만 딸이 왜 그렇게 됐는지 누구도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 무속인 일광(황정민)은 종구의 딸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자네는 낚시할 적에 뭐가 걸릴 건지 알고 미끼를 던지는가? 그 놈은 그냥 미끼를 던져분 것이고, 자네 딸내미는 고것을 확 물어분 것이여." 그러니까 일광의 말은 딸에게 벌어진 일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동욱이 마주한 '너무 복잡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신의 메시지'처럼 말이다.
영화 '밀양'(2007)에서 신애(전도연)가 발악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들이 납치 후 살해당하는 사건을 마주한 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다. 아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던 신애는 아마도 그 의미를 신에게서 찾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신애는 누구보다 독실한 신앙인으로 거듭나고, 급기야 아들을 살해한 자를 용서하겠다고 나선다. 살인자를 만나러 갔던 신애는 이내 고꾸라진다. 그 살인마가 교도소 안에서 하나님을 믿게 됐고,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줬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닌가. "하나님이 이 죄 많은 놈에게 손내밀어 주시고 그 앞에 엎드려 지은 죄를 회개하게 하고 제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하다. 하나님이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인지, 신애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렇게 외친다. "이미 용서를 얻었는데 내가 어떻게 다시 용서를 해요?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할 수가 있어요? 난 이렇게 괴로운데, 그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받고 구원 받았어요.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왜, 왜!" 이 울부짖음은 "도대체 말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묻던 동욱의 물음과 닮아 있다.
불행을 마주한 동욱과 종구 그리고 신애는 똑같이 묻는다. '도대체 왜?' 이유를 묻는 건 당연하다. 이유를 알아야 잘못을 고쳐잡을 수 있을 것이고, 이유를 알아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대비할 수 있을 것이고, 이유를 알아야 최소한 그 불행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해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믿을 준비가 돼 있다. 그게 신이든 뭐든 간에 말이다. 문제는 어떤 것도 그들이 겪는 고통을 명쾌하게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신이라도 말이다. 신도 답하지 못하고, 신의 뜻으로도 해석할 수 없는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결국 답은 하나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무의미. 그 고통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그저 그 고통이 내게 왔고, 그 운명을 받아들인 채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을 '지옥'에선 이렇게 표현한다. "자연재해 같은 거예요." 최악의 악당은 정진수도, 새진리회도, 화살촉도, 외지인도, 아들을 죽인 살인마도 아니다. 도저히 감당키 어려운 진짜 악당은 바로 그 무의미다. 무의미한 사건들은 삶에 불쑥 나타나 그 인생을 쑥대밭으로 만든 뒤 사라진다. '지옥'이 묘사하는 지옥의 사자가 그처럼 갑작스럽게 등장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건 불행이라는 게 그렇게 사람들을 괴롭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이 이처럼 우리 스스로 통제불가능한 우연으로 가득차 있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곡성'과 '밀양'이 그랬던 것처럼 '지옥'이 관객에게 묻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