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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독일과 프랑스, 애증의 와인史

등록 2021-11-27 06:00:00   최종수정 2021-11-27 06: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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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고뉴 본(프랑스)=AP/뉴시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정상회담 만찬 장소인 보르고뉴 본의 한 와이너리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프랑스 정부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하고 있다. 2021.11.24
[서울=뉴시스]  몇 주 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퇴임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부부를 부르고뉴의 꼬뜨 드 본에 있는 유서 깊은 와이너리로 초청했다. 메르켈의 마지막 공식 방문이 될 정상회담 장소로 엘리제궁이 아닌 와이너리가 선택돼 화제였다.

1500년 와인 역사를 지닌 보르고뉴 지역은 보르도와 함께 대표적인 프랑스의 와인 산지다. 부르고뉴는 크게 4개 지역으로 나뉘는데 꼬뜨 드 본은 그 중의 하나이다. 레드 와인으로도 명성이 높지만 피노 누아 등 세계 최고의 명성을 가진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 이 지역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1100년 된 ‘샤또 뒤 끌로드 부조’에 차려진 이날 정찬에는 송로 버섯 등 지역 특산 음식과 함께 프리미에 크뤼급의 화이트와인 ‘생 오뱅 2015’과 역시 프리미에 크뤼급의 레드와인 ‘뉘생 조르쥬 2014’가 나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 증진에 크게 기여한 메르켈의 헌신에 고마움을 표하고 언제까지나 프랑스의 친구로 남아달라고 말했다. 와인 잔을 들고는 “프랑스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메르켈에게 건배를 청했다. 메르켈의 재임 중인 2011년에 프랑스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호감 가는 첫번째 국가로 독일이 뽑힌 적도 있어 마크롱의 이러한 헌사는 외교적 언사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 나라 사이의 역사를 돌아보면 현재 프랑스와 독일간의 이러한 긴밀한 우호관계는 놀라운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오랜 앙숙 관계였다. 독일이란 나라의 역사적인 범위에 따라 다소 다를 수 있지만 두 나라 사이의 악연은 대체로 신성로마제국 시대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두 나라 사이에 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싹튼 것은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신성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를 프랑스 문화권으로 편입한 이후로 보기도 한다. 이때는 독일이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1870년 일어난 프로이센과 프랑스 전쟁에서는 프랑스가 참패하여 비스마르크에게 막대한 전쟁 배상금과 알자스 로렌 지방을 떼어준다. 이번에는 프랑스가 크게 자존심을 상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상호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결국 독일이 패하고 알자스 로렌 지방은 막대한 전쟁 배상금과 함께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다. 50년만에 프랑스가 크게 되갚은 셈이다.

이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의 기습침공을 받은 프랑스가 불과 33일만인 1940년 6월 항복한다. 히틀러는 1918년 독일이 항복문서에 서명했던 바로 그 자리인 콩피에뉴의 숲에다 그때 사용했던 객차를 갖다 놓고 항복식을 연다. 22년전의 치욕을 그대로 프랑스에 되돌려준 셈이다. 그러나 3년 후인 1944년 8월 파리는 해방됐고, 9개월 후 히틀러의 자살에 이어 독일이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한다.      

두 정상 모두 와인을 좋아하는 공통점으로 인해 와인은 이번 회담에서 두 나라 사이의 돈독한 우호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독일과 프랑스는 와인과 관련해서도 좋지 않은 역사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다.

2차 대전 시 독일이 침공하자 프랑스는 군인들까지 동원해 포도 수확을 앞당기는 등 와인산업의 보호에 노력했다. 하지만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후 처음 한 일 중의 하나가 각종 예술품과 함께 프랑스의 특급 와인을 약탈하는 일이었다. 독일은 부르고뉴와 보르도, 상파뉴 등 특급 와인 산지에 지역별로 ‘와인 총통(Weinfuhrers)’이라는 직책을 가진 와인 전문가를 파견해 조직적으로 프랑스 와인을 수탈했다. 프랑스의 와인업자나 레스토랑의 주인들은 와인저장고나 식당에 이중벽을 만들거나 가짜 라벨을 붙여 이를 피하기도 했다. 파리에 있는 400년 역사의 레스토랑 ‘라 뚜르 다르장’은 특급 와인 2만병을 벽 뒤에 숨겼다. 이 때 지킨 1788년산 ‘끌로 뒤 그리피에’ 꼬냑 3병은 2009년 경매를 통해 1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히틀러는 1943년 4월20일 생일 기념으로 라벨에 자신의 사진을 붙인 ‘총통와인’을 만들도록 직접 지시한 일도 있지만 와인을 비롯해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렇지만 최측근인 괴벨스와 헤르만 괴링은 와인을 좋아했다. 그들은 최상품 위주로 와인을 빼앗아 독일로 보냈다. 특히 공군사령관으로 ‘제국 대원수’였던 괴링은 파리의 리츠 호텔에 사령부를 설치하고 호텔의 ‘임페리얼 스위트’에 머물면서 프랑스의 유명한 특급 와인을 골라 마셨다.

연합군은 남 프랑스에 상륙한 후 와이너리를 보호하기 위해 ‘샴페인 전쟁’ 작전을 펼친다. 전쟁이 막바지에 달하고 히틀러가 자살하자 미군의 제3보병사단과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로 유명한 제101공수사단, 프랑스군의 제2기갑사단은 ‘독수리 둥지’로 불리는 히틀러의 별장이 있던 베르히테스가덴을 먼저 점령하기 위해 경주를 벌인다. 프랑스군이 먼저 도착했고 지하 셀러에 남아 있던 보르도와 보르고뉴를 비롯한 50만병의 최상급 와인을 발견한다. 독일군이 엘리베이터를 폭파해 요새 꼭대기의 산장에 있던 와인들은 부상병 이송용 들것을 사용해 내렸다. 뒤이어 미군이 도착했고 몇몇 미군들은 다시는 못 볼 특급 와인을 현장에서 따서 마셨다. 이 중에는 전설적인 ‘샤토 라투르 1929’ ‘샤토 무통로칠드 1934’ ‘샤토 라피트 1937’ 등이 포함돼 있었다.

독일 베를린으로 진격한 소련군도 괴링이 숨겨놓았던 20만병의 특급 와인을 찾아낸다. 이 와인은 구 소련으로 보내져 대부분 소비되고 일부는 현재 독립된 몰도바의 크리코바에 있는 세계 최대의 지하 와인 셀러에 보관돼 있다.

나라 사이에 영원한 친구나 적은 없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다만 상호관계가 있을 뿐이다. 관계는 사건을 만들고 만들어진 사건은 기록이나 기억에 편철돼 역사에 남는다. 결국 남는 것은 사건뿐이다. 사건이 세상의 본질이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우아한형제들 인사총괄 임원 ybby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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