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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문 대통령, 故이예람 중사 부친 마음 귀담아 줘야

등록 2021-12-08 09:35:48   최종수정 2021-12-08 14: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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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성진 기자 = 세밑을 앞두고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오늘도 청와대 분수대 앞부터 광화문, 종로, 시청광장, 여의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무심결에 지나치고 있습니다.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지나치는 기자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여러 사연 가운데에는 단연 대통령을 향한 목소리가 가장 많습니다.

이분들 가운데 최근 잠시나마 대통령을 만난 분이 있었습니다. 고(故) 이예람 공군 중사의 아버지 이모 씨입니다. 이씨는 지난 5월 성폭행 사실을 고발하고 세상을 떠난 딸을 위해 지금도 이곳저곳을 백방으로 뛰고 있습니다. 이씨는 지난달 18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가슴과 등에 딸의 사진을 걸고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1인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딸을 떠나보낸 뒤 '엄중 수사'를 지시한 대통령의 말만 믿고 기다렸다는 이씨는 수사 담당자와 지휘부 등은 핵심 관계자는 모두 빠져나간 채 종결된 국방부의 수사를 용납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이씨는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지난달 21일 열린 KBS '국민과의 대화'에도 신청을 했지만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만남을 간절하게 기원해서일까요. 이씨는 지난달 25일 부인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을 잠시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씨는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2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명동성당에 대통령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전 이른 시간부터 딸의 사진을 들고 대통령을 기다렸습니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대통령과의 즉석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통상 대통령 동선에 시위가 있을 경우, 경호처가 사전에 별도의 장소로 격리를 시킵니다. 하지만 이날은 대통령도 현장 보고를 받은 뒤 "인사라도 나누는 것이 맞겠지요"라며 직접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이씨는 대통령을 만나 "엄정 지시를 항명한 자들을 모두 특검으로 처벌해주십시오"라고 정중하게 요청을 했고, 이 중사 모친은 딸의 사진을 대통령에게 보여주며 "그때 (추모소에서) 보셨던 예람이에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대통령도 사진을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잘 알겠습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무거운 '알겠다'는 답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뒤 실제로 작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꿈쩍 않던 일들이 단 하루 만에 이뤄진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씨 부부와 대통령 만남 하루 뒤인 지난달 26일 이번 사건의 수사를 총괄했던 공군 법무실의 부실수사 여부 등을 직권으로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방정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도 이씨를 직접 만났습니다.

이씨는 지난 3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방 수석과 만나 대통령 면담과 국방부 특검을 요청하고, 군 인권 보호관 설치법에 인권위 불시조사권을 포함해달라고 호소했다고 합니다. 일련의 일들이 짧은 시간에 진행된 과정을 가만히 바라보면, 이씨가 왜 그토록 대통령과의 만남을 요구했는지도 알 만합니다.

다만 걱정은 남아 있습니다. 청와대가 이씨의 '대통령 면담 요구서'를 여러 차례 받아갔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닐까, 하는 조급한 우려입니다. 혹자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억울한 사람이 그 사람뿐이겠나. 억울한 사람, 억울한 사연은 한 트럭은 더 있을 것이다"고 말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고 있는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도 이 중사 부모와 대통령의 짧은 만남에 대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고충을 적었습니다. 그는 "(대통령의) 명령의 준엄함과 결과의 엄정함은 때론 그 거리가 멀기도 했고 절망스러운 처지의 사람들일수록 그 지난한 과정으로 인해 더 큰 상처를 받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또 "대통령의 앞까지 나서야 했던 유족들의 서러운 마음과, 그 마음 알지만 그 절절함에 더해 또 많은 것을 같이 두고 고민해야 하는 대통령의 마음, 두 마음 앞에서 나는 무력하다"며 "이 중사의 부모님이 건강히 견뎌주시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대통령 입장에서 모든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현실적 한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만큼은 유족들의 서러운 마음과 절절함의 편에 서서 다른 결말을 맺기를 바래봅니다. 이씨는 방 수석과 만나기 전에도 서주석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과 서욱 국방부 장관을 만나 사건의 진상을 명백하게 밝혀달라고 호소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결과는 유족에게 '희망고문'처럼 돌아왔습니다. '계속 살펴보겠다'는 희망섞인 대답이 무색하게 부실수사 책임자들은 모두 법의 그물망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러는 사이 다른 군인들의 안타까움 죽음이 밝혀져 세간의 주목을 받고 또 잊혀졌습니다. 최근 여의도 정가에서는 조동연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의 개인사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그도 한때 이 나라의 군인이었습니다. "폐쇄적인 군 내부의 문화와 사회 분위기, 가족의 병환 등으로 인하여 외부에 신고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는 조씨 측의 입장문을 보면서, 지금도 얼마나 많은 억울한 사연들이 묻히고 있을지 생각해봅니다.

이씨는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의 면담을 요구하는 이유에 대해, 딸이 겪었던 일이 "더 이상 없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씨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처벌이 아닙니다. 그는 "국방부 장관이나 다른 지휘관들처럼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바쁜 사람들이, 이런 사건으로 또다시 국회 국방위원회에 불려 나가서 질타를 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씨가 군 인권보호관 제도의 보완을 요구하는 것도, 누군가를 벌주자는 게 아니라 피해자를 보호하고 조치를 잘한 지휘관을 오히려 보호하는 제도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합니다. 군에서 황망하게 딸을 떠나보내야 했지만 그는 "나도 군인의 아버지"라며 "지휘관들도 누군가의 아버지 아니냐"고 말합니다. 이번 만큼은 딸을 둔 아버지인 대통령이 조금만 더 유족의 편에 서서 마음을 귀담아주길 기대해봅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ksj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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