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로]軍 사건·사고 감소에도 성범죄 제자리…성인식 문제 '여전'
국회입법조사처, 군 인권 현황·과제 분석사망사고, 자살 등 지속 감소하는 추세여군 늘어나는데 성적 대상으로만 여겨성범죄 입건 ↑, 피해자 신고 증가 원인성추행·가혹행위 가해자들 엄벌 내려야다만 군 사건사고 때마다 매도 외부 시선"일반 시민 인권 인식, 전반적 향상돼야"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성추행을 당한 여군 부사관들이 주변 남군의 회유와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선임들이 후임을 가스 보관 창고에 감금하고 불을 붙이려 하는 등 위험천만한 가혹행위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음도 드러났다. 가해자들은 엄벌을 받아 마땅하다. 일련의 사건을 접한 시민단체들은 군에 대한 불신감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이들은 군사법원을 전면 폐지해 군으로부터 사법권 자체를 뺏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군 전체와 군 수사기관을 악마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군 내에서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피해자와 유족은 지금 이 순간도 씻을 수 없는 고통과 분노를 경험하고 있다. 가해자들은 물론 가해자를 불법적으로 비호한 관계자들에게 당연히 엄벌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군 전체가 범죄 집단인 것은 아니다. 모든 군인이 범죄자 혹은 공범인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 곳곳에 후진적인 문화와 관성이 남아있듯이 군 역시 과거의 비행과 관행에서 벗어나는 데 시간을 필요로 한다. 군복무가 어렵고 고통스러운 만큼 사회생활도 곳곳이 지뢰밭이나 마찬가지다. 일반 사회에서도 개인 간, 집단 간, 성별 간 갈등이 폭증하고 끔찍한 살인과 성폭행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유독 군대만이 복마전(마귀가 숨어 있는 집이나 굴)인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실제로 관련 통계는 군이 느리긴 하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심성은 국회입법조사처 외교안보팀 입법조사관이 최근 발표한 '군 인권 제도 현황과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군대 내 군기사고(군인복무기본법, 군형법 등 각종 법규를 고의 또는 과실로 위반해 발생한 사건·사고)와 안전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2011년 143명에서 2019년 86명, 지난해 55명으로 감소했다. 군기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2011년 101건에서 지난해 44건으로 감소했다. 심성은 조사관은 "군기사고는 군 인권침해 사례와 연관된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이런 감소는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고 평했다.
군기사고 중 자살 건수는 2011년 97건에서 증감을 반복하다가 지난해 42명으로 감소해 최저치를 기록했다. 폭행으로 인한 사망사고는 2012년, 2014년에 1건씩 발생했다. 총기 사고 역시 2011년과 2014년에 발생한 후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특히 2011년 10만명당 15.2명이었던 자살 건수는 2013년 12.2명, 2019년 9.73명, 2020년 7.12명으로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만명당 군 자살자 수는 20대 일반 남성과 비교했을 때 2013년 58.37%, 2017년 38.46% 등 절반 수준이다. 군에서 자살로 인한 사망사고 건수가 감소한 원인 중 하나는 군대 문화 변화다. 자살 감소 원인은 군 인권 개선에 대한 사회적 요구 제기, 군인복무기본법 등 군 인권 보장을 위한 법적 기반 구축, 피해를 호소할 수 있는 신고·상담 창구 활성화, 군 인권교육 강화 등으로 풀이된다. 국방헬프콜이나 군인권지키미처럼 군 장병들이 자살 충동에 시달릴 경우 심리 상담을 하거나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도 많아졌다. 다만 학업과 취업 문제에 직면한 일반 20대 남성과 식사부터 훈련, 취침까지 통제된 생활을 하는 군 장병과의 자살률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 단체 생활을 하는 군 장병들은 쉽게 자살을 시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군 내 성범죄 관련 통계 역시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육·해·공군과 검찰단의 성범죄(강간, 추행 등) 입건 수를 보면 2016년 873건에서 지난해 884건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군 내 성범죄 진상 조사 미흡과 가해자에 대한 미온적 처벌로 인해 군 성범죄가 줄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군 내 여군이 늘어나는데도 여군을 동료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는 남군들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적절하다. 반면 일각에서는 성범죄 피해자들이 전보다 적극적으로 신고하면서 성범죄 입건이 증가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과거에는 2차 피해와 부실한 진상 조사 등에 대한 우려로 피해자들이 신고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신고한다는 것이다. 심성은 조사관은 "엄밀히 말하면 이는 최근 들어 실제 재판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성범죄 사건 비중이 전체적으로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역으로 보면 기소 대상이 되지는 않지만 입건 대상이 되는 사건 수 비중이 커졌다는 의미로 군 인권을 침해당한 군 장병들이 적극적으로 사건을 신고하고 경우가 늘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군 문화가 점차 변화하고 있음에도 외부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군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역시 구제불능이다', '한국군은 후진적인 집단'이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게 우리 사회의 관성이 돼버렸다. 하지만 실상 더 심각한 수준의 범죄는 일반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군인이 그러면 되느냐'고 따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군과 군인을 천대하면서 이들에게 일반인보다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어찌 보면 모순이다. 군과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하나의 직군일 뿐 천대하고 짓밟아도 되는 하층 계급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군에게는 쿠데타를 통해 독재 정권을 세운 세력이라는 주홍글씨가 남아있고 이 때문에 여론으로부터 동네북 신세가 될 때도 군은 묵묵히 감내하고 있다.
쿠데타를 자행하고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군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최근 사망했다. 이제 한 시대가 지나간 만큼 군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뀔 필요가 있다. 군에 대한 견제와 비판은 여전히 필수적이지만, 군을 무조건 비난하고 불신하고 낙인 찍는 습관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군 역시 한국 사회의 일부다. 사회에서 사건이 벌어지면 가해자를 비난하는 동시에 그 원인과 배경을 짚어 내고 해결책을 찾듯이 군 사건에 대해서도 그런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 심성은 조사관은 "군인 역시 제복 입은 시민이기 때문에 일반 시민의 인권 인식이 전반적으로 향상돼야 군 인권 역시 근원적이며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다"며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군 인권 인식과 보장 정책이 나아질 수 있도록 비단 군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의 노력이 함께 경주될 필요가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