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로]한중 갈등 핵 떠오른 조선족…이중 정체성이 낳은 비극
조선족, 中올림픽 개막식 한복 입고 등장中, 한민족 전통인 한복에 "소수민족 의상"조선족, 중국 국적인 한민족…이중정체성조선족, 중국서도 한국서도 차별에 직면동북공정 추진 中, 韓·조선족 분열 시도
애초에 반중 감정을 자극한 것은 개막식에서 벌어진 조선족 한복 사건이었다. 지난 4일 개막식에서 한복을 입은 조선족 여성이 소수민족 중 하나로 출연했다. 이후 중국이 한복까지 자기 문화로 삼으려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나아가 한민족 전통 의상인 한복을 중국 소수민족 문화로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한국을 속국으로 삼으려는 것이라는 불만까지 터져 나왔다. 실제로 시진핑 중국 주석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은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중국 국적자이면서 동시에 한민족인 조선족이 졸지에 한중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됐다. 조선족은 중국에 살고 있는 중국 국적 한민족을 일컫는 용어다. 조선족 인구는 약 170만명이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0년 중국 인구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족(약 1956만명), 위구르족(약 1177만명), 회족(약 1137만명), 묘족(약 1106만명), 만주족(약 1042만명), 이족(약 983만명), 토가족(약 958만명), 티베트족(약 706만명), 몽골족(약 629만명), 포의족(약 357만명), 동족(약 349만명), 요족(약 330만명), 백족(약 209만명), 하니족(약 173만명)에 이어 조선족 인구는 55개 소수민족 중 15번째였다. 조선족은 주로 동북3성에 거주하고 있다. 조선족은 한국에도 많이 들어왔다. 2018년 말 기준으로 한국에는 조선족 72만8000명이 머물고 있다. 한국 내 외국인 236만여명 중 약 3분의 1이 조선족이다. 조선족 1세대는 19세기 말부터 한반도에서 만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조선 이주민들은 고대 고구려의 기반이었던 동북 지역에 점차 기반을 마련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지역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전개됐다.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 조선족 216여만명 중 절반이 고향이 있는 한반도로 돌아갔다. 중국에 남은 조선족은 111만여명이었다. 중국에 남은 조선족들은 중국 공산당에 협조하면서 중국 건국에 힘을 보탰다. 이어 발발한 6·25전쟁에서 중국은 북한을 지원했고 여기에 조선족이 적극 참전했다. 6·25전쟁 중에 북한 피란민 수만명이 연변으로 넘어갔다. 전후에 중국 공산당은 조선족을 포함한 소수민족의 자치지역 결성을 승인했다.
이로써 조선족은 중국인이라는 국가정체성과 한민족이라는 문화정체성, 즉 이중 정체성을 갖게 됐다. 조선족은 중국 공산당 교육체계에서 교육 받았다. 이들은 6·25전쟁을 항미원조전쟁으로 보는 중국식 사고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따라 고구려 역사가 중국 역사라고 생각하는 조선족도 많다. 조선족 2세대는 1992년 한중 수교 전후로 일자리를 찾아서 또는 국제결혼이나 친척 방문을 위해 한국에 입국한 조선족이다.
조선족 2세대 남성은 제조업과 건설업, 음식점에 취업했으며 여성은 음식점, 제조업, 가구 내 고용, 간병인 등 서비스업에 주로 취업했다. 조선족 거주지는 구로구 가리봉동과 영등포구 대림동에 집중됐다. 구로구 가리봉동의 경우 1980년대 이후 구로공단이 해체된 곳에 조선족이 유입됐다. 이를 통해 지금의 연변거리가 형성됐다. 이제는 조선족 3세대가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1990년 전후에 태어난 청년층인 3세대는 부모가 한국으로 떠난 뒤 한부모 또는 조부모 등에 의해 양육되다가 청소년기 또는 청년기에 한국행을 택하고 있다. 조선족 3세대는 부모의 경제적 지원과 기대 속에 중국에서 학업을 이어갔던 이들이다. 3세대는 대학 교육을 받을 기회를 보장받았고 때로는 유학 기회까지 얻었다. 중국 개혁개방의 수혜를 입은 조선족 3세대는 이전 세대들보다 부유한 성장기를 보내고 부모의 초청이나 유학, 취직 등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그럼에도 조선족 3세대 역시 2세대와 마찬가지로 한국인과의 취업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이들도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차별과 육체적 고통으로 상처를 받은 3세대 중에는 빨리 돈을 벌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혜 남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 청년의 삶에 대한 생애사 연구' 논문에서 "우리 사회는 조선족은 곧 범죄자라는 프레임을 갖고 있다"며 "물론 때로 조선족 범죄가 발생하지만 이는 소수의 일탈인데 한국은 조선족 전체를 범죄자 집단으로 일반화한다"고 지적했다. 김진혁 경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국내체류 디아스포라에 대한 치안정책의 나아갈 방향' 논문에서 "한국의 환경은 디아스포라(조선족)들을 동포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이들은 열악한 경제적 사회적 환경에서 민형사상의 피해를 입기도 하고 문화적 갈등과 보호의 부재 속에서 사회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또한 내국인들에게는 이들을 문제 집단시하는 편견이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한국에서 차별 받는 조선족을 향해 중국이 손을 내밀고 있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55개 소수민족이 중국 오성홍기를 함께 옮기는 장면은 중국의 소수민족 동화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공봉진 부경대 박사는 '중국의 문화굴기와 소수민족문화의 세계화전략' 논문에서 "중국은 소수민족문화의 세계화를 통해 조선족의 역사와 문화는 중화민족의 역사와 문화임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며 "이미 중단됐다고 여기고 있는 동북공정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공 박사는 "중국의 문화굴기와 소수민족의 세계화전략 속에는 중국이 진행하고 있는 중화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민족단결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명목 하에 인접하고 있는 국가들의 역사와 문화를 중화문화 속으로 편입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이정원·공정배(한양대)는 '아리랑의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목록 등재로 비롯된 한중간 문화갈등 배경 연구' 논문에서 "조선족의 문화적 유전인자로 내재된 한민족 문화정체성과 현재 중국 공민이라는 국가정체성이 중첩돼 벌어지는 갈등, 이것이 한중 문화갈등의 근본"이라고 짚었다. 이들은 "중국 조선족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목록 작업이 계속되고 중국 조선족이 중국 내 소수민족으로 존재하는 한 소위 문화전쟁으로 비견되는 한중 간의 문화적 갈등과 마찰은 앞으로도 간단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선족 문제는 향후 남북한 통일이 달성될 경우 통일한국과 중국 간 국경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1962년 북한과 중국이 체결한 조중 변계조약에 의해 현행 북중 접경이 형성돼있지만 통일한국이 이를 그대로 승계해야 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민족인 조선족이 동북3성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통일한국 국경 확장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노영돈 인천대 법학부 교수는 '간도영유권문제와 조중 변계조약의 의미' 논문에서 "1960년대 전반에 북한과 중국 간에 조중 변계조약이 체결됐지만 이들 조약이 비공개조약이었기 때문에 한국측에서는 그 사실을 2000년에야 인지하게 됐다"며 "국경선은 유효한 조약에 의해 확정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영원하고 변경 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새로운 유효한 합의에 의해 변경될 수 있다"고 짚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