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데르센상' 이수지 작가 "항상 음악을 켜두신 엄마께 감사해요"
'여름이 온다', "독특한 문학적, 미학적 혁신" 평가148쪽 중 글 있는 부분은 3쪽…'글 덜어낸 그림책'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들으며 감상할 수 있어"마음에 남아있는 엄마의 태도 제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어 그려"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이보다 더 좋은 날들이 없을 것 같다." '아동문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이수지 작가는 "너무 바빠서 정신을 못 차리겠다"면서도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안데르센상 수상으로 우리 그림책 동네의 많은 분들이 함께 행복해하셔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쁜 마음입니다." 이수지 작가는 지난 21일(현지시간)그림책 '여름이 온다'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깜짝 수상해 화제가 됐다. 한국인 최초로 이룬 쾌거다. 2016년에 이어 두번의 도전 끝에 안데르센상을 거머쥐는데 성공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SNS를 통해 "세계 그림책의 새 역사를 만들었다"고 평가하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림책에는 특별함이 있다. 안데르센상 심사위원회는 "이수지 작가의 글이 없는 그림책은 독특한 문학적, 미학적 혁신"이라고 극찬했다. '여름이 온다'(비룡소)은 여느 동화책과는 다르다. 148쪽에 달하는 책에서 글이 적힌 부분은 3쪽에 불과하다. 글을 덜어내고 그림을 통해 지난 여름 아이들과 함꼐 한 물놀이를 펼쳐냈다. 이수지 작가와 서면으로 만나 그림책 '여름이 온다'의 창작 배경을 들어봤다.
◆어머니와 아이들에게서 받은 영감, 그림책으로 풀어내다 "아이들이 노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두곤 했는데 이를 보며 그림으로 그리고 싶어졌어요." '여름이 온다'의 첫 장에는 "항상 음악을 켜두신 엄마께"라며 어머니께 헌정하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는 "어머니가 음악을 좋아하셨다"며 "꼭 클래식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음악을 많이 들으셨다"며 "지금도 함께, 혹은 홀로 연주회를 보러 가시고 정말 음악을 항상 마음속에 켜두고 계신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음악을 공부하거나 전공하신 건 아니지만 어머니의 그런 음악에 대한 태도가 제 마음에 남아있었고, 저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에게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이 작가는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그림책으로 풀어냈다. 책의 날개에는 QR코드를 삽입해 음악을 들으며 그림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9분43초 분량의 노래를 재생하고 이에 맞춰 '여름이 온다'를 감상할 수 있다. 그의 아이들도 창작의 원천이 된다.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 마당이 있는 시골에서 살았는데 아이들의 친구들이 놀러러오는 여름날에는 결국 물놀이는 꼭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마당에 항상 물총과 바가지와 호스가 구비돼있었어요." 그렇게 그의 책에는 그 당시 아이들이 친구들과 한 물놀이가 생생하게 담겼다.
◆다양한 재료 사용과 표현은 미학적 혁신 '여름이 온다'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다양한 미술 재료의 활용이다. 색종이 콜라주부터 연필 드로잉, 크레용, 수채, 담채, 아크릴까지 한 책에 담기 힘들 만큼 다양한 재료로 여름과 물놀이를 표현했다. 그는 특히 아이들을 여러 색의 색종이로 콜라주로 표현했는데 아이들을 일반적인 드로잉 재료로 그려보다가 느낌이 살지 않아서 "다른 재료가 없을까 두리번거리던 중 색종이가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색종이는 아이들이 많이 쓰는 재료여서 편안하기도 하고 또 약간 형광이 어린 쨍한 색감이 매력적이었어요. 아이들의 다양한 피부색을 표현하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현실적인 생감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고요. 색종이를 대충 오리고 선을 얹으니 오히려 생동감이 있는 선이 나왔어요." 비와 물의 질감은 수채 물감을 사용했다. 그는 "수채 물감은 비가 후드득 떨어지는 풍경을 그리기 좋은 재료"였다며 "아주 빨리 그려낼 수 있고 촉촉한 속성"을 재료 선택의 이유로 꼽았다.
◆음악에서 시작된 그림책, "비발디의 '여름'에서 촉발된 저의 반응, 저의 느낌" '여름이 온다'는 음악과 함께하는 책이다.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들으며 감상할 수 있으며 책에도 오케스트라와 오선지가 등장하는 등 음악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책의 구성 또한 비발디의 '여름'과 같이 3악장으로 구성돼있다. 작가는 음악과 그림 모두 "말 없는 예술"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이를 연결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럼에도 '여름이 온다'는 "음악을 이미지화한다거나 비발디의 음악을 재해석한 것이 아닌 음악에서 촉발된 저의 반응, 저의 느낌, 저의 생각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1악장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벌인 아이들이 한숨을 돌리면 2악장부터는 폭풍과 함꼐 본격적으로 여름과 음악이 연결된다. 2악장부터 본격적인 음악의 세계를 펼친 이 작가는 "오선지, 음표 등을 풍경의 일부로 표현했다"며 "2악장은 몰아치는 폭풍의 3악장을 준비하는 악장이라고 보시면 된다"고 설명했다. 3악장은 폭풍과 같은 연주를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여름' 3악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험악한 여름 날씨가 시작된다. "3악장은 폭풍 그 자체죠. '폭풍과 같은 연주'를 말 그대로 표현해보려고 했어요. 연주자들의 격렬한 움직임과 날씨가 함께 가지요." 그의 말처럼 '여름'의 3악장 속 폭풍 같은 바이올린 연주는 여름의 천둥소리로 들린다.
◆문학적 완성도까지 갖춘 그림책, 무대에 오른 여름 이수지 작가는 '여름이 온다'를 통해 여름을 마치 연극 무대에 올린 듯이 표현한다. 책의 첫 장부터 연극의 막이 오르듯 파란 커튼이 걷어지는 장면과 함께 아이들의 물놀이가 시작되고 책의 마지막에는 연극의 커튼콜과 같이 물놀이에 참여했던 등장인물의 인사와 오케스트라의 인사 장면으로 끝난다. 그는 무대라는 개념이 "초기작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출발했다"고 전했다. "무대는 독자(관람객)를 환상과 현실을 오가게 하지만, 또한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이 그저 환영이라는 감각을 계속 가지게 해주는 가장 현실적인 장치이기도 해요. '여름이 온다'는 연주곡이고 무대라는 설정은 잘 어울리지요." 여름을 책 하나로 엮어낸 그에게 여름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여름은 변화무쌍한 계절"이라며 "지독하게 덥고, 지독하게 습하고, 지독하게 시원하다. 그 에너지를 그림책에 담고 싶다"고 말했다.
안데르센 상 수상에 대해 작가는 "아주 의미 깊고 큰 상을 받아서 그 의미를 가슴에 잘 새겨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꿈같던 상 수상은 멈춤이 아니다. '안데르센상'을 마음에 품고 다음으로 나아갈 준비를 새롭게 하고 있다. "며칠이 지나면 다음 작업을 하느라 그저 또 일상으로 돌아가겠지요." 이수지 작가는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 캠버웰예술대에서 북아트 석사 학위를 받았다. 16개국에서 출간된 ‘파도야 놀자’를 비롯해 ‘그림자 놀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강이’ 등 예술성 높은 그림책으로 호평 받고 있다. 안데르센상 수상으로 '여름이 온다'는 서점가를 역주행하며 판매량도 154배 가량 상승했다. 또 '파도야 놀자', '이수지의 그림책', '선' 등도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며 순위권에 올랐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