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세상에서 가장 비싼 와인
영국 런던 크리스티나 미국 뉴욕 소더비 같은 세계적인 경매회사의 경매에는 종종 와인이 등장한다. 와인이 수억 원을 넘겨 낙찰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경매에 나오는 와인은 오래 동안 숨어있다 난파선을 인양하거나 고택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격이 비싼 와인에는 이야기 거리도 풍부하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이 관련된 경우도 있지만, 영화 같은 사기나 절도 사건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 레스토랑에서 값싼 와인을 주문했는데 고가의 와인이 실수로 제공되는 에피소드도 발생한다. 예술품이 그러하듯 와인의 평가 가격은 판매 전까지는 그야말로 ‘평가’ 가격에 불과하다. 거래가 성사돼 팔려야 실제 가격이 된다. 평가 가격 기준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와인의 역대 최고가는 한 병 당 12억원에 달한다. 시속 2만7000㎞가 넘는 국제우주정거장 ISS에서 14개월간 숙성한 후 2021년 1월 지구로 귀환한 ‘샤토 페트뤼스 2000년’ 12병이 그 주인공이다. 크리스티는 이 ‘우주 와인’이 지구로 돌아오자 그 중 한 병을 경매에 붙일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가격을 100만달러로 예상했다. 현재 동일한 빈티지의 샤토 페트뤼스 평균 가격은 6600달러(약 800만원)이다. 이 우주 와인을 낙찰 받는 사람은 맛을 비교할 수 있도록 같은 빈티지의 ‘지구 와인’ 한 병을 추가로 받게 된다. 이 와인들을 시음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두 와인의 맛은 크게 다른 것으로 전해진다. 우주 와인이 지구 와인보다 2~3년 정도 더 숙성된 맛이라는 평도 있다. 실제로 거래가 성사된 것을 기준으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와인은 ‘로마네 콩티 1945년’이다. 2018년 뉴욕의 소더비 경매에서 750㎖ 한 병에 55만8000달러(약 6억7000만원)에 낙찰됐다. 1945년은 지난 100년 중 최고의 빈티지(생산연도)로 평가받는다. 더구나 그해 이 와인의 생산량도 예년의 10분의 1인 600병에 불과해 희소성이 더해졌다. 두 번째로 비싼 와인은 ‘스크리밍 이글 카베르네 쇼비뇽 1992년’이다. 1986년 설립된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와인이다. 6만평 넓이의 와이너리가 들어선지 6년 후인 1992년에 만들어 그 3년 후인 1995년 2700병을 첫 출시했다. 첫 와인을 로버트 파커가 99점으로 평가한 다음 유명해졌는데 이후 여러 와인 평론지로부터 여러 차례 만점을 받아 명성을 굳혔다. 2000년 자선 경매에서 50만달러(약 6억원)에 판매되었다. 스크리밍 이글의 평균가격은 4000달러(약 500만원) 정도이다. 세 번째로 비싼 와인은 역사가 채 10년도 되지 않은 와이너리의 와인이다. 2014년 설립된 캘리포니아 알렉산더 밸리의 소노마 와인 ‘더 세팅 와인즈 2015년’이 2017년 자선 경매에서 35만달러(약 4억2000만원)에 팔렸다. 1997년 핀란드 근해에서 인양된 스웨덴 난파선에서 발견된 샴페인 ‘하이직 1907년’은 약 3억원에 팔려 역사상 비싼 와인 6위를 기록했다. 10위는 일명 토마스 제퍼슨 와인으로 불리는 ‘샤토 라피트 1787년’이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의 창간자 맬컴 포브스가 1985년 15만6600달러(약 1억9000만원)에 구입했다. 하지만 이 와인은 2005년 독일인 와인 판매업자 하디 로든스탁이 위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시음회에 내놓은 와인을 18세기나 19세기 와인이라고 속이고 크리스티 경매나 개인적인 채널을 통해 판매했다. 1985년산 샤토 뒤캠을 비롯해 미국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이 소장했다는 1784년과 1787년 빈티지를 포함한 ‘제퍼슨 와인’, 1921년~1934년 빈티지의 샤토 페트뤼스 등 수 백병을 위조했다. 와인 스펙테이터지에 따르면 경매를 통해 팔리는 희귀 와인의 5% 정도는 가짜라고 한다. 1989년에는 뉴욕의 와인 판매상 윌리암 소콜린은 토마스 제퍼슨의 이름이 새겨진 1787년산 샤토 마고 한 병을 위탁 판매해 줄 것을 요청받는다. 와인의 가격을 25만달러(약 3억원)로 평가한 그는 마케팅을 위해 뉴욕의 부유한 와인 애호가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하지만 그가 와인을 고객들에게 보여주려는 순간 와인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다행히 이 와인은 20만 달러를 보장하는 보험에 들어 있었다. 바닥에 흐른 와인을 한 소믈리에가 손가락에 묻혀 맛을 봤는데 식초처럼 상해 있었다고 한다. 2020년 뉴욕 소호의 고급 레스토랑 ‘발타자르(Balthazar)’에서는 한 젊은 커플이 병당 18달러짜리 와인을 주문했는데 소믈리에의 실수로 2000달러나 되는 ‘샤토 무통 로칠드 1989’가 서빙되는 일이 발생했다. 레스토랑측이 실수를 깨달았지만 이를 모르고 즐겁게 마시고 있던 커플에게는 18달러만 청구했다. 2000달러라는 가격을 알았을 때 이들이 더 행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2000달러짜리 와인을 주문했던 다른 테이블에서도 18달러짜리 와인을 즐겁게 마셨다고 한다. 와인을 마시는 기쁨은 꼭 가격에 비례하지 않는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우아한형제들 인사총괄 임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