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없이 풍경을 보여주는 '산'...국제갤러리, 유영국 20주기 전시
K1, K2, K3 전관에서 10일 개막대표 회화 70점·아카이브 등 작품세계 조명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산'이 아니라 '일'이다. 한국 추상미술 선구자 故 유영국(1916~2002) 작품 제목은 모두 'Work'다. 전업작가로서 절제의 삶을 지향하던 그의 개인적 철학이 담겼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며 단순하고 단정하게 구도자적 삶의 궤적을 반영한다. "내 그림은 주로 '산'이라는 제목이 많은데, 그것은 산이 너무 많은 고장에서 자란 탓일게다. '숲'이라는 그림도 내가 어렸을때 마을 앞에 놀러 다니던 숲이 생각나서 그린 것이다." 유영국의 생애는 작품처럼 '추상의 세계'였다. 지금도 낯선 '추상'미술을 하며, '혼밥' 하듯 '혼작'(혼자 작업)했다. 1964년 지천명의 나이에 신문회관에서 연 첫 개인전을 기점으로, 격동하는 세계와 주변 자연을 선, 면, 색 등의 기하학적 구조 및 질서로 환원, 조형예술의 영역과 시대 및 사회의 관계를 내면화하고 심화하는 일에 주력했다. 당시 미술인들의 로망인 대학교수를 오래 하지도 않았고, 화단 정치에 현혹되지 않았다. 마흔여덟 살이 되던 1964년 모든 미술 단체 활동을 중단하고전업작가로 돌아섰다. 혼자 매일매일 침실과 아틀리에 사이를 정시 출퇴근하며 작품에만 매달렸다. 산을 그린다는 건 일을 하는 것이었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 1966년부터 1970년까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정교수로 재직했다. '국전' 서양화 비구상부 심사위원장과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1984년 보관문화훈장, 1938년 제2회 '자유미술가협회전' 협회 최고상 등을 수상했다. 지난 2002년 별세했다. 그는 떠났지만 작품은 영원불멸한 생을 살고 있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탄생 100주년 기념전 '유영국, 절대와 자유'전시에 이어 2018년 국제갤러리에서 '유영국의 색채추상'전을 열었다. 사후 국제갤러리에서 관리하는 작가로 유영국의 작고 20주년 기념전을 기획, 대규모 작품전을 펼친다.
◆국제갤러리, 유영국 20주기 기념전...회화 70점 등 아카이브 전시 9일 국제갤러리는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Colors of Yoo Youngkuk'전을 K1, K2, K3 전관에서 개막했다. 유영국의 주요 작품 세계를 망라하는 이번 전시는 특히 다채로운 추상미술과 조형 실험의 궤적을 중심으로 시기별 대표 회화작품 68점, 드로잉 21점과 1942년 사진 작품 및 작가의 활동 기록을 담은 아카이브 등으로 구성된다. 48세에 전업작가로 나선 그는 다양한 드로잉과 산을 모티브로 한 대형 사이즈의 추상 회화를 그려냈다. 그가 “잃어버린 시간”이라 일컬은 지난 20년을 만회하려는 듯, 압도적 집중력과 에너지, 대담한 구상과 화체를 통해 풍경과 마음의 심연을 심도 깊게 표현한다. 1964년 첫 개인전을 개최한 후 유영국은 색채를 서서히 쌓아 올리고 두텁게 만드는 등 철저히 계산된 구도와 색채의 선택을 통해 작가적 세계관의 외연을 확장했다. 빨강, 파랑, 노랑이라는 삼원색을 기반으로 군청, 초록, 보라, 검정 등 다양한 색채 변주도 함께 일어난다. 긴장감과 보색의 조화, 색채의 깊이와 공감각을 동시에 부여하며 색을 통한 추상 회화적 미학의 절정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전시는 산과 자연을 모티브로 강렬한 원색과 기하학적 구도로 절제된 조형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영국 작품만의 예술사적 의미를 조망하는 자리다. 초록, 파랑, 군청 등 다양한 색채 변주로 선, 면, 색으로 이뤄진 비구상적 형태의 자연, '유영국의 거침없는 산'의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특히 70년대 후반 심장 박동기를 달고 죽음의 문턱에서 삶으로의 회귀를 반복한 오랜 투병 생활 끝에서 탄생된 회화들은 평화롭고 서정적인 분위기로 생의 빛이 주는 따뜻함이 담겼다. 식민, 해방, 전쟁, 냉전과 반공 시기를 관통한 한국 1세대 모더니스트의 추상 미술 스펙트럼, 또 화려하면서도 고요한 추상화를 통해 풍경 없이 풍경을 볼 수 있는 마력 같은 그림의 에너지를 전한다. 8월21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