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300]뜨거운 코트를 가르며 왔다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1월 첫 주 개봉 영화 및 최신 개봉작 간단평을 정리했다.
◆바로 여기, 그 청춘이…더 퍼스트 슬램덩크(★★★☆) '슬램덩크'는 청춘의 표상(表象)이다. 겨우 만화책 따위에 어울리지 않는 과도한 상찬이라며 인정하지 않아도 상관 없다. 이건 사실이니까. '슬램덩크'는 19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춘기를 지나온 이들을 언제라도 그때 그 시절로 데려 간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이제는 나이를 먹어 생활에 절어 있는 이들에게도 강백호의 무모함이 있고, 서태웅의 재능이 있고, 송태섭의 깡다구가 있고, 정대만의 열정이 있고, 채치수의 패기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러니까 그들도 한 때는 북산고 농구부였고, 전국제패를 꿈꿨다고. 아마도 이들에게는 각자 가슴 속에 새겨 둔 '슬램덩크' 명대사가 있을 것이다. 그건 보고 또 봐서 외운 게 아니라 가슴 속에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 말들이다. 바로 그 청춘의 '슬램덩크'는 이 말 한 마디로 시작됐다. "농구 좋아하세요?"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이런 경험을 공유하는 이들의 마음에 다시 한 번 불을 지른다. 물론 이건 2시간이면 끝나버리는 영화 한 편에 불과하다. 그래도 이 작품은 그저 활활 타오르던 치기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확인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영화 그 이상이다. ◆그저 무난하기만 해서야…스위치(★★) '스위치'가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편한 영화라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볼 게 널렸고 볼 수 있는 방식 또한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부담 없고 편할 수가 있나. 이제 영화는 영화만의 매력 혹은 영화만의 충격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권상우도 좋고 오정세도 좋고 이민정도 좋다. 하지만 이들도 이 무난한 판에서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네, 조지 밀러 맞습니다…3000년의 기다림(★★★☆) 조지 밀러 감독의 영화를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 한 편만 본 관객에겐 이 영화가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밀러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꾸준히 따라온 관객에게 새 영화 '3000년의 기다림'은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작품이다. 그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는 '매드 맥스' 시리즈를 만든 터프가이이기도 하지만 '꼬마 돼지 베이브' 시리즈와 '해피 피트' 시리즈를 만든 천진난만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엔 '요술램프 지니' 이야기를 비틀어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전에 본 적 없는 독특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었다. 물론 '매드 맥스'처럼 강렬하지는 않다. 그래도 천편일률적인 영화가 지겨운 관객에게 '3000년의 기다림'은 신선한 공기다. ◆더 일찍 나오시지…젠틀맨(★★☆) 한 때 이런 영화가 유행한 적이 있다. 주인공은 동네 양아치처럼 건들거리지만 비상한 머리를 가졌고 잘생기기까지 한 남자. 그의 옆엔 각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졌으나 아웃사이더들이 있다. 이들은 기상천외한 작전을 짜서 부자 혹은 권력자를 골탕 먹인다. 위기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 위기마저 다 계획된 것이었다나. 유쾌하고 경쾌하게 그리고 반전에 반전이 이어진다. '젠틀맨'이 딱 이런 영화다. 그런데 지금은 2022년이다. 이제 이런 영화는 조금 낡아버렸다. 주지훈과 박성웅은 역시나 맞춤옷을 입은 듯한 연기를 하지만 그 맞춤옷이 올드해지면 그들의 뛰어난 연기력도 빛을 잃는다. ◆아슬아슬한 도전…영웅(★★★) 영화 '영웅'은 국내 최고 흥행 감독인 윤제균 감독의 클래스를 확인해준다. 러닝 타임 120분은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채워져 있고, 웃길 때와 울릴 때가 치밀하게 계산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은 아슬아슬하다. 두 가지 치명적 약점 때문이다. 하나는 스타급 주연 배우가 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뮤지컬 영화라는 것. 매번 거기서 거기인 배우들이 주인공을 도맡는다고 욕하면서도 관객은 눈에 익은 배우를 더 좋아하는 법이다. 게다가 한국 관객은 뮤지컬 영화를 웬만해선 반기지 않는다. 서사가 치밀하고 역동적이길 바라기 때문에 뮤지컬 영화 특유의 성긴 이야기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잦다. 그래도 '영웅'에는 한 방이 있다. 그 강력한 펀치는 배우 나문희에게 있다. 나문희는 노래와 연기가 다른 게 아니라는 걸 딱 한 장면으로 보여준다. ◆슈퍼 럭셔리 스펙터클…아바타:물의 길(★★★★) 일단 돈 얘기부터 해야겠다. '아바타:물의 길'은 제작비로 약 4억 달러(약 5200억원)를 썼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미국 현지에선 더 많은 비용이 투입됐을 거로 보기도 한다. 일각에선 이 영화에 쏟아부은 돈이 10억 달러에 육박할 거라고 추정한다. 한화로 1조원이 훌쩍 넘는 액수다. 뭐가 됐든 이 영화가 역대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많은 돈을 쓴 영화라는 건 확실하다. 말하자면 '아바타:물의 길'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정점이다. 돈값은 하고도 남는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192분 간 펼쳐보이는 이 럭셔리한 스펙터클은 도무지 질리지가 않는다. 절경이고 장관이다. 문자 그대로 이건 영화다. 스토리는 클래식하고 메시지는 선명하다. 물론 이 명쾌함이 맘에 들지 않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바타:물의 길'이 자주 볼 수 있는 볼거리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