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임시완 "저는 진화하고 싶어요"
넷플릭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사이코패스 살인마 '우준영' 역 맡아 열연"악역 연기 흥미롭지만 선한영향력 고민""칸에서 박수 또 받고 싶어 더 치열해져야""외국인 관객까지 고려한 연기도 필요해"[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글쎄요. 아직 고민하고 있어요. 물론 악역을 맡으면 제 연기를 더 다채롭게 보여줄 수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하면 선한 캐릭터를 더 자주 하는 게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해요." 극 중 캐릭터를 선과 악으로 나눈 뒤 어떤 역할을 연기하는 게 더 좋으냐고 물으니 배우 임시완(35)은 이렇게 답했다. 대중이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는 임시완의 연기는 아마도 드라마 '미생'(2014)에서의 비정규직 신입사원 '장그래'일 것이다. 당시 그는 특유의 맑은 눈으로 세상이 어떤 곳인지 하나씩 배워가는 착하고 평범한 직장인을 연기해 호평받았다. 하지만 '미생'에서 10년이 흐른 지금 임시완이 연기하는 인물들은 많이 달라져 있다. 최근 그는 다소 거친 캐릭터를 맡고 있다.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2017)에서 조금 변하더니 지난해 '비상선언'에선 아예 악역을 맡았다. 그리고 지난 17일 나온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에선 보통 사람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 '우준영'을 연기했다. 맑은 눈의 청년 임시완은 요즘 흔히 하는 말로 '맑은 눈의 광인'이 돼 있다. 그는 "악역을 맡겠다고 의도한 것도, 악역에 맛들린 것도 아니다"고 했다. 어찌됐든 임시완의 연기에 대한 평가는 어떤 작품을 맡든 대체로 긍정적이다. "악역을 연기하는 것에 꽂힌 건 전혀 아니에요. 선역과 악역을 돌아가면서 연기했는데, 팬데믹 등 영향으로 악역을 맡은 작품들이 한꺼번에 나온 거죠. 악역을 즐겨한다고 하긴 힘들어요. 요즘 저는 배우가 주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요. 물론 좋은 작품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제가 사회에 줄 수 있는 선한 영향력도 생각하지 않을 순 없어요." 사실 임시완은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를 고사했다. 각본은 흥미로웠지만, 연기하게 될 캐릭터가 결코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평소 친분이 두터운 선배 배우 김희원의 설득이 있었고, 이 작품의 짜임새를 볼 때 자주 만나기 어려운 영화라는 판단을 내린 끝에 결국 출연을 결심했다. "아직도 전 고민 중입니다. 답을 못 내렸어요. 악역을 연기한다는 건 마음을 무겁게 해요. 그래서 출연료의 일부를 기부했어요. 그렇게라도 그 무게감을 조금 낮추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찌됐든 임시완은 이번에도 악역을 소름끼치게 소화했다. 그가 연기한 우준영은 우연히 주은 스마트폰을 해킹한 뒤 주인에게 돌려준다. 스마트폰을 장악한 그는 상대를 집요하게 괴롭히기 시작한다. '비상선언' 때도 악역이고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에서도 악역이지만, 그의 접근법은 완전히 달랐다. '비상선언'에서는 스토리가 있는 인물이었다면, 이번 영화에선 그런 것 없이 그저 장난을 치는 듯한 인물로 표현했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걸 자기만의 컬렉션을 만드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마치 자신을 아티스트로 여기는 듯한 인물로 만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에게 부모님은 악역을 연기하는 아들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그는 "부모님은 무조건 아들이 최고라고 하시죠. 그래도 악역보다는 왕을 연기하는 걸 더 좋아하세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임시완은 아이돌 가수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해 배우 활동을 겸하는 이들 중 가장 앞서나가는 스타로 꼽힌다. 연기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굵직한 작품에 출연한 경력만 봐도 그렇다.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과 '비상선언'으로 두 차례 칸국제영화제에 다녀온 것도 그의 큰 자산이다. 임시완은 칸에서의 경험이 그가 연기를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영화가 다 끝난 뒤에 나오던 기립 박수를 기억해요. 저에 대한 사전 정보 하나 없는 관객이 저와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하고 저에게 박수를 보내주려는 그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이 반응을 얻기 위해 연기해야겠다고요. 제 연기의 기준점을 높여야 하고, 적당히 해선 안 된다고요.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이 영광을 다시 누릴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 거죠." 칸에 초청받은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에선 설경구, '비상선언'에선 이병헌 뿐만 아니라 송강호·이성민 등 임시완은 국내 최고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국내 젊은 남성 연기자 중 임시완만큼 선배 복이 있는 배우도 드물다. 그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하면서 많은 걸 배운다고 했다.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연기하는 걸 배우는 건 아니지만 선배 배우들을 열심히 관찰하면서 얻은 것들이 있다고 했다. 그 중 하나가 그 뛰어난 배우들도 여전히 연기에 대한 중압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정점에 있는 분들도 여전히 연구하더라고요. 제 롤모델이요? 그 분들만큼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기본값이죠. 관객은 이미 선배들의 연기를 오래 봐왔으니까, 요구하는 수준이 매우 높잖아요. 저는 제 시대에 맞는 연기를 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서 진화해야 합니다." 임시완에게 어떻게 진화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관객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는 의외의 답을 내놨다. "팬데믹 이후에 세상이 많이 바뀌었잖아요. 이제 불특정 외국인이 제 연기를 볼 거라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이전에는 한국적인 정서만 고민했다면 이제 세계적인 정서를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그게 제 세대 연기자의 기본 소양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