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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와인을 즐겼다

등록 2023-03-04 06:00:00   최종수정 2023-03-04 10: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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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일본 야마나시현 고슈의 와이너리. (사진=위키피디아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일본 사람들은 이미 3000년전부터 술을 마셨던 것으로 보인다. 3000년전 일본 죠몬시대 유적들 중에서 중국에서 술을 양조할 때 사용된 것과 유사한 기구가 발견됐다. 중국으로부터 전래됐다면 한반도를 경유했을 가능성이 높다. 1800년전 편찬된 ‘삼국지 위지동이전’의 ‘왜인편’에도 일본 사람들이 술을 좋아한다는 내용이 있다. 서기 700년경에는 술을 전문으로 빚는 관청이 생기고, 1000년경에는 오늘날 사케와 크게 다르지 않은 투명한 청주를 양조했다. 사찰에서도 술을 제조했다.

우리말의 ‘삭히다’가 ‘사케’와 발음이 비슷하고, 일본 고사기에 백제 사람이 술을 빚어 천황에게 헌상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들어 백제가 일본에 양조법을 전수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전래 시기나 두 나라 간 전통적인 양조법 차이, 누룩과 효모의 유전자 분석을 볼 때 이는 무리한 주장으로 보인다.

일본 야마나시(山梨)현에는 718년 백제 출신 왕인 박사의 후손인 승려 교기(行基, 668~749)가 야마나시현 고슈(甲州)의 가츠누마(勝沼)에서 약사여래보살의 현몽을 꾸고 최초로 포도나무를 발견했다는 전설이 있다.

일본의 포도나무에 대한 기록은 1186년의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처음 나타난다. 아메미야 카게유(雨宮 勘解由)라는 전설의 인물이 ‘고슈 포도’를 재배했다는 내용이다. 고슈는 일본에서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용 고유 품종이다. 고슈는 유럽의 비니페라 품종과 중국 고유 품종의 DNA가 섞여 있다. 중앙아시아 품종이 중국에서 교접돼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와인은 한참 후에 일본에 들어왔다. 1483년 편찬된 ‘고호코인키’(後法興院記)에는 쇼군의 측근이 ‘친타슈’(珍陀酒)를 마셨다는 기록이 나온다. 친타슈는 포르투갈의 레드 와인인 ‘틴토(Tinto) 와인’을 말하는데, 도수가 높은 포트 와인이다. ‘남쪽 오랑캐의 술’이라는 뜻의 ‘난반슈’(南蠻酒)로 부르기도 했다.

일본은 1543년 표류선을 통해 포르투갈과 최초로 접촉한다. 와인은 스페인 출신 포르투갈 선교사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cisco Javier, 1506~1552)가 1549년 가고시마(鹿兒)에 상륙해 처음 일본에 들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보다 60년 앞서 유럽 와인을 마신 일본인이 있었던 셈이다.

일본 전국시대 ‘3영걸’로 불리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는 모두 와인을 즐겨 마셨다.

1568년 예수회 선교사인 루이스 프로이스(Ruis Frois, 1532~1597)는 노부나가를 만나 와인을 진상하고 일본에서의 포교를 허락 받는다.

히데요시도 와인을 좋아했다. ‘예수회 일본연보’에 따르면, 1586년 히데요시는 오사카 성에서 포르투갈 선교사를 접견한 후 1588년 선교사의 초청을 받아 하카타에 정박한 배를 직접 방문했다. 배에서 장시간 머물며 처음 맛본 와인에 만족한 히데요시는 돌아갈 때 와인을 선물로 받았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2년 후인 1594년에도 필리핀 주둔 스페인 총독으로부터 와인 2배럴을 선물로 받았다. 하지만 그 이후 히데요시는 통치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천주교를 탄압한다.

에도 막부를 연 이에야스는 1611년 스페인과 외교관계를 맺었고, 스페인 국왕은 사절을 보내 레드 와인과 세리주 2배럴을 이에야스에게 선물했다. 스페인은 1613년에도 이에야스에게 세리주 다섯 병을 선물했다. 와인은 마셨지만 이에야스도 천주교를 박해했다.

하비에르는 본국에 보내는 서한에서 일본에서는 주식인 쌀로 술을 빚는데 그 밖의 술은 없다고 썼다. 프로이스는 ‘일본사’에서 유럽으로부터 수입된 와인은 미사를 드리는 용도나 어른용 약으로 쓴다고 했다. 와인이 귀해서였을 것이다.

1580년 ‘킨코쵸미슈’(今古調味集)에는 일본에서 와인을 처음 양조한 기록이 보이지만, 증류주인 소주에다 포도즙을 섞은 것이라 와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중국의 ‘본초강목’에 따라 누룩과 찐쌀을 넣어 발효시킨 와인도 있었다. 하지만 야생 포도는 제대로 된 와인을 만들거나 보존하기 힘들어 포르투갈 와인을 섞었다. 1687년 ‘혼쵸쇼칸’(本朝食鑑)에는 와인이 폐와 위장을 비롯해 건강에 좋다는 내용도 나온다.

메이지 시대인 1874년, 외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서도 정통 와인 양조법이 시작됐다. 1877년 프랑스에서 와인 양조법을 습득한 두 일본인이 귀국해 일본 최초의 와이너리 ‘다이니혼 야마나시 포도주 회사’를 설립한다. 일제 강점 하인 1918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와인을 생산했다. 2차 세계 대전 때에는 군수품의 원료로 와인을 생산하기도 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과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거치면서 일본의 와인 국내 소비는 급격히 늘어난다. 2010년 이후에는 가정 내 소비도 크게 늘고, ‘와인 바’ 붐이 일어났다.

현재 일본의 와인 소비량 중 20% 정도는 자국 생산이 차지한다. 일본 내에서 재배된 포도로 생산하는 와인은 5%가 조금 넘고, 나머지 포도는 외국에서 수입한다. 주요 와인 산지는 유서 깊은 야마나시를 비롯해 홋카이도, 나가노, 야마가타, 오사카 지역이다. 근래에는 북위 43도에 위치한 홋카이도 와인이 주목을 받고 있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딜리버리N 대표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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