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 스토리]시총 1조 달러…엔비디아 힘은 대체불가능?
'굴뚝' 없는 팹리스, 반도체 '골리앗'을 압도고비마다 과감한 혁신으로 위기 돌파 성공AI 붐으로 각광…자율주행으로 성장 노려
팹리스(Fabless)는 말 그대로 '팹(Fabrication facility·생산라인)이 없는(-less) 회사'를 말한다. 지금까지 전 세계를 통틀어 반도체 기업 중 시총 1조 달러를 넘긴 기업은 엔비디아가 유일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기업 중 가장 많은 매출을 올렸지만 지난 2일 기준 시총은 431조원에 불과하다. 반면 엔비디아는 지난해 210억달러(27조원·옴디아 기준) 매출을 달성해 삼성전자(671억달러) 대비 3분의 1 수준에 그쳤지만, 시총은 3배 이상이다. '굴뚝 없는' 팹리스가 삼성전자 같은 대형 반도체 회사를 제치고 사상 처음 '시총 1조 클럽'에 가입한 것이다. 엔비디아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비결은 뭘까. ◆매출은 3분의 1, 시총은 3배…고부가제품 앞세워 지속성장 엔비디아의 가장 중요한 성공 비결은 반도체 산업의 가장 핵심인 설계에서 쌓은 전문성에서 비롯됐다.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장치 산업으로, 전통적으로 인텔이나 삼성전자처럼 설계에서 생산까지 전 과정을 수행하는 종합반도체회사(IDM)가 지배하던 시장이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분업화가 나타났다. 연구개발(R&D)을 중심으로 반도체 설계와 개발만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기업, 그리고 외주를 받아 반도체 제조에 특화된 기업으로 역할을 나눈 것이다. 바로 팹리스와 파운드리(위탁생산)의 등장이다. 팹리스 입장에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해 공장을 짓지 않아도 되고, 파운드리는 다양한 업종과 분야의 고객사를 확보해 안정적인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이후 반도체 산업 지형도는 크게 달라졌다. 설계, 생산, 조립·검사, 유통을 모두 책임지는 '거대 공룡' 인텔은 시장의 지배력이 흔들린 채 오랜 기간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 반면 고성능·고효율 반도체 설계 기술은 고도화되고, 공정 미세화로 인해 생산 난도는 갈수록 높아지면서 각 분야의 전문성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는 1998년 전 세계 최대 파운드리 회사인 TSMC와 파트너십 체결하고, 반도체 설계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엔비디아는 설계 전문성을 앞세워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첨단 산업에 필요한 고부가가치 제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과감한 혁신에 적기 대응으로 성공 신화 엔비디아의 '과감한 혁신'도 성공 비결로 최근 재조명 받고 있다. 1993년 창업 당시 PC 시장은 2D(2차원) 그래픽이 중심이었지만 엔비디아는 이에 개의치 않고 모든 역량을 3D에 쏟아 부었다. 엔비디아는 창업 초기 고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9년 세계 최초로 GPU(그래픽처리장치)를 선보였다. 단순히 화면에 영상을 처리해주는 용도에 머물렀던 그래픽카드의 기능을 고성능 프로세서의 위상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남들과 다른 제품을 선보이며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선 결과다. 이후 엔비디아는 GPU 개발 과정에서 쌓은 기술을 발전시켜 다양한 응용처로 범위를 확장하며 신화를 써내려갔다. 엔비디아는 20년간 고성능 게임 시장을 겨냥해 GPU 개발에 매진했다. 여전히 게임용 칩은 회사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지만, AMD 등 새로운 경쟁자가 출현하며 더 이상 시장을 독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엔비디아는 이에 따라 '3D 그래픽'이라는 핵심 기술을 토대로 노트북, 비디오게임기, 모바일기기, 의료기기, 군사용장비 등으로 응용 분야를 넓혀갔다. 엔비디아의 GPU는 2005년 소니의 PS3용 프로세서 개발에 적용됐고, 이후 2010년엔 슈퍼컴퓨터, 2015년 딥러닝(컴퓨터가 학습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머신 러닝 기법)에도 도입됐다. 특히 GPU는 암호화폐 '이더리움'의 블록체인 거래 유효성 검증에 사용되며 '코인 열풍'으로 기업 실적은 날개를 달았다. 이후 2018년 암호화폐의 변동성으로 매출이 반토막 나는 위기를 겪었고, 최근에는 암호화폐 채굴 난도가 높아져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 내몰렸다. 하지만 또 다른 첨단 산업의 성장으로 기회를 맞았다. 바로 인공지능(AI) 시장이다. ◆쓰기 쉬운 기술로 ‘대체 불가능성’ 높여 무엇보다 대체 불가능하다는 점은 이 회사의 가장 큰 무기로 통한다. 현재 인공지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 대의 GPU가 필요하다. GPU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병렬 처리 기술이 필요하다. 엔비디아는 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현재 챗GPT 같은 AI를 구동할 때 꼭 필요한 GPU 시장의 80%를 차지한다. 엔비디아가 AI 분야 반도체 시장에서 최강자가 된 것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엔비디아는 2004년부터 기업의 명운을 걸고 고효율 병렬 프로세서 '쿠다'(CUDA)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전용 AI 프로그래밍 소프트웨어인 이 프로세서를 엔비디아는 대학과 개발자 커뮤니티에 무료로 배포했고, 새로운 하드웨어를 개발자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교육도 시켰다. 반면 경쟁사였던 인텔과 AMD는 Open CL 관련 기술 개발과 투자에 소홀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엔비디아의 미래를 내다본 투자와 고객(개발자) 중심의 소프트웨어 생태계 구축으로 엔비디아는 Open CL을 밀어내고 GPU 병렬 처리의 사살상 표준 기술로 자리를 잡게 됐다고 업계에서는 전한다. 엔비디아의 올해 2~4월(회계연도 기준 2024년 1분기)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부 역시 데이터센터다. 생성형 AI 개발과 디지털 전환(DX) 투자가 진행되면서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의 수요가 크게 늘면서 회사 매출 실적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AI를 넘어 자율주행차 시장에서도 기회를 찾고 있다. 엔비디아는 테슬라모터스, 아우디 등과 손잡고 개량된 테그라 프로세서를 활용한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있다. 최근 또다른 팹리스 미디어텍과 기술 제휴를 맺고, 첨단 자동차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사업에도 협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고성능 AI 반도체 등 주요 산업의 격변 때마다 '적기'에 잘 대응해왔다는 평가를 받는 엔비디아가 또 한번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고 평가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