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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된 재난, 시한폭탄 같은 사회"…재난세대 이야기[안전사회③]

등록 2023-09-30 07:00:00   최종수정 2023-10-11 1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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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세대' 20대 청년 4인 인터뷰

흉기난동 지켜보며 일상 살아가는 사람들

"신뢰 사라져가는 사회…피하는 게 최선"

"날 지키는 건 나밖에 없다 생각 강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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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뉴시스 취재진은 지난 25일 이른바 '재난 세대'라고 부를 수 있는 20대 청년 4명을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났다. (왼쪽 위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김건수(27)씨, 문수영(26)씨, 유채연(25)씨, 이강(24)씨. 2023.09.25. f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위용성 임철휘 김래현 기자 = "신림에서 동료들과 밥 먹고 헤어진 게 흉기 난동 사건 딱 30분 전이었어요. 전 버스를 타러 큰 길로 나왔는데, 동료 중 하나가 그 골목으로 갔죠. 뉴스로 사건을 보자마자 바로 연락했는데 다행이 별 일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다다음주에는 그곳 근처 컴퓨터 학원을 다니게 됐어요. 묘한 느낌이에요. 여기서 흉기 난동으로 사람이 죽었는데, 이곳을 지나가야 하는 사람들은 계속 자기 일상을 만들어가는 거죠. 무뎌지고 있어요."

이른바 '재난 세대'라고도 불리는 20대 청년 4명을 지난 25일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건수(27)씨, 문수영(26)씨, 유채연(25)씨, 이강(24)씨다. 세월호 참사 당시 중3~고3이었던 이들은 대학에 진학한 뒤 코로나19를 겪었고, 작년에는 이태원 참사에서 또래들이 생명을 잃는 비극을 경험했다.

뉴시스는 지난해 11월3일 이들을 만나 재난과 안전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보도참고: [재난세대]③"이태원 핼러윈 참사는 각자도생하라는 메시지"(인터뷰)). 이태원 참사 이후 이번엔 이상동기 범죄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지금, 네 사람이 약 1년 만에 다시 모였다.

◆"도망쳐야 산다"

(이) "한동안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빠르게 뛰어야지. 지하철에서도 모자를 눌러쓴 사람을 마주치면 이어폰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꺼두는 게 습관이 됐다. 처음 느껴봤다. 남성으로서 그런 위협을 느끼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하고 살아왔었는데. '그러면 여성들은 여태껏 계속 이런 세상을 살아왔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유) "'살인예고글'이 올라오면서 범행이 예고된 장소를 보여주는 사이트가 만들어졌더라. 들어가봤더니 내가 다니던 곳들은 죄다 예고 장소로 지목돼 있더라. 그리고 진짜 범죄자라면 구태여 예고하지 않고 흉기를 휘두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예방이란 게 사실상 무의미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문) "저도 마찬가지로 한동안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누가 다가오면 이렇게 배를 감싸거나 하는 게 몸에 배게 되더라. 그렇지만 사실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상동기 흉기난동은 개인의 일탈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회 불평등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더더욱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재난에 노출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믿을 수 없어서 도울 수도 없다"

(유) "이태원 참사 땐 비판할 대상이 명확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던 그 참사를 계기로 국가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면, 이번에는 약간 사회가 사회 전체에 대한 신뢰를 서로 잃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문) "최근 길거리에서 어떤 사람이 뒤따라 오는 것 같아 벽 쪽으로 붙어서 천천히 걸었다. 그랬더니 그분이 제가 무서워하는 걸 알았는지 빨리 지나가 주더라. 서로 피해를 주지 않고 마주치지도 않는 게 친절과 예의인 것처럼 돼버린 느낌이다."

(이) "흉기난동 사건들 이후 홍대에서 호신용 스프레이를 나눠주더라. 근데 그걸 본 사람들이 '거기엔 뭐가 들었을 줄 알고 나눠주느냐'라면서 욕하는 걸 들었다. (서로를) 믿을 수 없어서 도움을 줄 수도 없게 된 것 같다."

(김) "예전엔 타인에게 친절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이제 더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타인도 저에게, 저도 타인에게 잘 해줄 필요가 없게 됐다.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거나 아픔에 공감해주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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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뉴시스 취재진은 지난 25일 이른바 '재난 세대'라고 부를 수 있는 20대 청년 4명을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은 발언을 듣고 있는 김건수(27)씨. 2023.09.25. f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신경쇠약·무기력…건들면 터지는 시한폭탄 같아"

(문) "이대 앞에서 흉기난동을 예고한 온라인 글이 게시된 날,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했다. 그날 학교에서 '오늘 이대역 이용하지 말라'는 문자가 왔다. 제가 다니는 여성 전용 헬스장에선 '오늘은 오지 않아도 수업일수를 차감하지 않겠다'는 문자도 왔다. 위험한 곳은 그냥 가지 않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아 다시 또 무기력해졌다."

(김) "누구든지 건들기만 하면 폭발하는 시한폭탄 사회를 사는 것 같다. 참사가 반복될수록 안전에 대한 감각이 길러져야 할텐데, 전혀 해결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신경쇠약 상태가 된 것 같다. 언제 터질지 모르고 그냥 버티고 버티는 법만 익숙해지는 식으로."
 
(김) "매일 공포에 떨고 힘들어 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재난이 일상이 됐다. 내가 언제든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게 더는 놀랍지가 않은 거다. 이렇게 무뎌질수록 우리 사회가 재난에 대처하는 역량이 더 낮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재난을 넘으려면

(이) "유튜브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른바 '사적 제재'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이초 교사 극단선택 사건에서 가해자 학부모 신상을 유포하고 그런 것들 말이다. 사적 제재가 자꾸 나오는 건 어찌보면 그만큼 국가를 믿지 못하겠다는 방증 아닐까. 이태원 참사 이후 1년간 정부에 대한 신뢰가 꾸준히 계속 떨어져 왔던 것 같다. 점점 '날 지키는 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문) "근본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정치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 같다. '그동안 범죄자 인권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사형제를 부활시키자' 이런 담론에 끌려가고 있지 않나. 고립, 은둔 청년들도 차별 없이, 불평등하지 않게 일상을 지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등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 그래서 더 무기력했던 것 같다."

(유) "결국 국가가 책임을 질 수 있느냐의 문제 아닐까. 단순한 법적 책임을 묻거나 누군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넘어서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진단하고 어떻게든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자세. 그게 국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흉기난동 범죄가 터지면 길거리에 장갑차를 세워놨다가, 시간이 지나면 또 흐지부지 넘어가지 않을까 두렵다. 그런 국가의 태도를 목격하는 개인들은 남은 희망마저 잃어버릴 것 같다. 끝까지 기억하고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up@newsis.com, fe@newsis.com, ra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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