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고 좋으면 ‘좋은 작품’ 아닌가[이한빛의 미술관 정원]
반스 파운데이션①
[서울=뉴시스] 이한빛 미술칼럼니스트 = “미술사학자가 좋다고 하면 뭐? 그럼 다 좋은 건가? 내가 보고 내가 느끼고 내가 좋으면 그러면 된 거 아냐?” ‘소리 없는 아우성’은 바람 부는 날 펄럭이는 깃발에만 있는 게 아니다. 미술작품을 만나는 내 마음속에도 있다. 난해한 작품 앞에서 혹은 남들은 별로라 하지만 내 눈길을 빼앗은 작품 앞에서 어색한 웃음으로 가려야 했던 마음속 외침을 ‘사이다’처럼 쏟아낸 컬렉터가 있다. 바로 앨버트 C. 반스(Albert C. Barnes, 1872~1951)다. 누가 뭐래도, 내 갈 길 간다는 그의 ‘마이 웨이’는 이제 수천억원을 헤아리는 컬렉션이 됐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대표적 사립 미술관인 ‘반스 파운데이션’(Barnes foundation)이다. 필라델피아는 미국 민주주의의 주요 장소이자 미술계에서도 중요한 곳이다. ‘록키 계단’으로 더 유명한, 공립 미술관의 대표 주자인 필라델피아 미술관(Philadelphia Museum of Art)을 비롯해 반스 파운데이션, 로댕 뮤지엄이 벤자민 프랭클린 파크웨이를 따라 모여 있다. 올해 안엔 헤르초크 드 뫼롱이 건축한 칼더 정원(Calder Garden)도 문을 연다. 하루를 종일 투자해야 다 돌아볼 수 있는 규모다. 관람객들은 일반적으로 오전에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보고 점심식사를 한 뒤, 반스 파운데이션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반스 파운데이션을 와봤다면, 두번째부터는 일정을 거꾸로 잡기 마련이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르누아르 컬렉션(181점)을 비롯해 세잔(69점), 앙리 마티스(59점), 파블로 피카소(46점), 모딜리아니(16점), 앙리 루소, 쇠라, 고흐의 유화까지 20세기 초반 유럽 거장들의 작업이 모여 있다. 호레이스 포핀 같은 미국 흑인 작가 컬렉션, 아프리카 조각품, 가면, 가구, 동양화, 이집트 조각, 그리스·로마 예술품도 전체 소장품 중 상당한 부분을 점한다. 방대한 규모와 퀄리티에 앞서 들렀던 미술관에서 본 작품들은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부푼 기대를 가지고 반스 파운데이션에 방문하면, 처음엔 혼란에 빠진다. 건물은 무척이나 모던한 회색 콘크리트로 사각 반듯하게 지었는데,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가정집과 같은 분위기로 바뀐다. 기둥과 천정까지 이어지는 아치 모양의 창문부터 연식이 굉장히 오래돼 보이는 나무문까지. 무엇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은 본격적인 전시 관람 때 더 심해진다. 작은 방에 작품이 빽빽하게 걸려있다. 연대나 사이즈도 제각각이다. 르누아르의 대형 회화 옆에 중국 회화가 걸려 있고, 심지어 아프리카 조각과 유럽풍의 고가구는 물론 문의 경첩 따위도 뒤죽박죽 섞여있다. 전시를 기획한 관람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심히 의심스러운 상황이 펼쳐진다.
굉장히 혼돈스러운 큐레이션 속에서도 거장의 작품은 빛을 발한다. 1층 메인 홀엔 조르주 쇠라의 ‘모델’(Les Poseuses, 1886~1888)이 걸려있다. 가로 249.4㎝, 세로 200㎝에 달하는 대작이다. 2023년 단일 컬렉션 경매로는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폴 앨런 컬렉션에 포함됐던 작품과 같은 시리즈다. 당시 폴 앨런의 소장 작품은 1억4940만달러(약 2000억원)에 낙찰됐는데, 사이즈는 가로 50㎝, 세로 39.3㎝다. 감히 시가를 짐작하기 어렵다.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앙리 마티스의 1906년작 ‘삶의 행복’(Le bonheur de vivre)이다. 가로 240.7㎝, 세로 176.5㎝에 달하는 대작으로, 2층 전시장 메인에 걸려있다. 마티스가 1906년 앙데팡당전에 출품한 것을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이 첫눈에 반해 사들였고, 오랜 기간 거트루드와 레오 스타인(Leo Stein)의 대표 컬렉션으로 걸려 있다가 반스의 손에 넘어왔다. 거트루드가 “그 시대의 모든 화가에게 흔적을 남길 새로운 색상 공식을 만들었다”고 평했을 정도로 이 작품은 파격적이다. 당시 자연 속에서 사람들이 춤추고 음악을 연주하며 어울리는 아카디아 소재는 일반적이었지만 색상이나 사이즈, 인체의 왜곡은 새로운 시도였다. 제작된 지 100년이 훌쩍 넘었기에 전반적으로 색이 많이 바랬으나 보존 컨디션이 좋은 편이라 노란 카나리아색, 형광에 가까운 초록 등 생생한 색감을 짐작해보기엔 충분하다. 이외에도 반 고흐의 ‘우체부’, 폴 세잔의 ‘벨 뷰에서 본 생빅투아르 산’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앙리 루소의 ‘호랑이에게 공격받는 정찰병’, 피카소의 ‘곡예사와 어린 할리퀸’ 등도 이 방 저 방에 흩어져 관객을 맞는다. ‘의도가 무엇일까, 숨은 그림 찾기도 아니고…’를 고민케 하는 큐레이션은 사실 반스가 주창한 감상법이다. (다음 주 2편이 이어집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