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 한 미술관 스페이스 K, 핫 한 화가 에디 마티네즈[박현주 아트클럽]
미국 브르클린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구상과 추상 넘나드는 드로잉 에너지 넘쳐2005년부터 현재까지 시기별 작품 34점 공개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작업하는 게 즐거워요. 즐겁게 봐주세요." 13일 스페이스K에서 만난 미국 화가 에디 마티네즈(47)는 화려하고 발랄한 그림과는 달리 묵직하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작업 세계에 관한 질문에 뜸을 들이며 느릿하게 말했지만 '한 방'이 있었다. 자신은 맥시멀리스트로서 빠르고 속도감 있게 작업하는 스타일로 드로잉을 선택했을 뿐이고,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실제로 작가는 항상 펜과 종이를 들고 다니며 드로잉을 한다. 이날도 작은 종이에 낙서처럼 그려낸 그림을 보여주기도 했다. 에디 마티네즈의 작품은 속도감 넘치는 선과 대담한 색상이 돋보인다. 화면 안에는 작가가 일상에서 영감 받은 나비, 꽃병, 테니스공, 블록헤드(Blockhead) 등 다양한 모티프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같은 작업 방식에 대해 그는 ‘같은 그림이지만 다르게 그리기 위한 연구’라고 부른다. "이미지를 다르게 이해하기 위해 대상에 대한 선입견을 벗겨내는 시도"라고 했다. 미술 정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독학으로 그림 세계에 들어온 그는 모든 일상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했다. 작업할 때 발생하는 쓰레기, 물티슈, 껌, 캔버스 천 조각 같은 일상 속 물건들을 화면에 콜라주 하며 독특한 질감의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드로잉은 회화와 조각, 그리고 제가 하는 모든 작업의 원동력입니다. 30년, 35년, 어쩌면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제 삶에서 항상 변함없는 것이었고, 드로잉 하는 것은 일종의 도피처로서 주변 환경 속에서 나와 연결되는 방법이었습니다."
드로잉과 색감이 폭발하듯 에너지가 넘치는 그림은 동시대 현대인들을 홀리고 있다. 미국에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는 세계에서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유명세답게 전속 갤러리는 4곳(티모시 테일러(영국), 미첼이네즈 네시(미국), 블룸(미국-일본), 막스헤츨러(독일))으로 컬렉터와 작품 수요를 관리하고 있다. 이번 한국 전시에도 이 갤러리 디렉터들이 직접 내한 작가를 챙기고 있다. '요즘 시대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으로 뜨고 있는 작품값은 100호 크기 3억5000만 원 선에 거래된다. 2018년 뉴욕 브롱스 미술관(The Bronx Museum), 2019년 디트로이트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Detroit)과 상하이 유즈 미술관(Yuz Museum), 등에서 개인전을 열며 스타작가로 떠올랐다.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이탈리아의 내륙국인 산마리노 공화국 전시관의 대표 작가로 선정됐다. 동시대 미술계에서 존재감을 보이는 그가 베니스비엔날레 전시 전 서울로 왔다. 강서구 마곡동 코오롱 문화예술 나눔공간 ‘스페이스K 서울'에서 한국 미술관 첫 전시를 개최한다.
◆ ‘스페이스K 서울'서 한국 미술관 첫 전시 14일 스페이스K에서 개막하는 전시는 '투 비 컨티뉴드(To Be Continued)'를 주제로 구상과 추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시기 및 주제별로 전시했다. 천장고 3m~10m 200평 규모의 전시장에 대결하듯 걸린 에디의 작품도 힘이 만만치 않다. 우선 색과 선으로 밀어붙인 작품은 발길을 끌어들인다. 2m, 3m, 6m가 넘는 압도적인 크기로 거대한 공간을 누르고 있다. 한국 전시를 위해 공개한 ‘만다라(Mandala)’ 연작은 오래된 것을 참조해 재탄생시키는 작가의 성향이 담겼다. 그의 드로잉 기법과 함께 어우러져 역동성이 돋보인다. 원판(圓板) 혹은 원륜(圓輪)이라는 뜻을 가진 만다라(mandala, 曼茶羅)는 불교와 힌두교에서 우주의 진리를 표현하는 그림이다.
그는 오랫동안 동양 철학과 종교, 특히 다양한 불교 종파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항상 티베트 불교의 모래 만다라 수행을 좋아했다"면서 "티베트 불교에서 3주 또는 1달 동안 모래 만다라를 만들고 작업이 끝나면 바로 지워버리는데, 이 점이 정말 흥미롭다"고 했다. "수행은 덧없음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깨달은 그가 그려낸 만다라 시리즈는 음식이 있는 둥근 그릇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만다라 시리즈는 탁자 시리즈나 부플라이 시리즈처럼 일종의 수단입니다. 여러가지 모양과 색을 넣을 수 있는 구조물 같기도 하고, 그냥 마음에 들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만다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다라가 그릇의 역할을 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가로 6.7m 세로 3m가 넘는 크기의 화이트 색으로 덮은 듯한 그림으로, 나뭇잎, 버섯, 꽃, 눈 등 익숙한 형태가 시각적 불협화음 속에 뒤섞여 있다. 에디는 이 작업은 반려견 때문에 시작된 작업이라고 했다. "강아지 프란시스가 죽던 날 많은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프란시스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리다보니 색을 다양하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흰색으로 덮었고 다시 그릴 수 있었죠. 프란시스는 서서히 가려졌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그려져 있습니다. 며칠 연속으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어느새 완성됐습니다."
흰색으로 지우는 일명 '화이트 아웃'기법이 탄생된 배경으로 이번 개인전에 내놓은 신작 '은하계 같은 풍경'은 화이트아웃 시리즈의 일부로 제작됐다. "LA에 있는 갤러리 ‘BLUM’의 야외 정원을 모티브로 한 작품입니다. 몇 년 전 그곳에 하루종일 앉아서 그곳에 있는 모든 식물을 그렸는데, 그것이 이 작품의 시작이었죠." '화이트 아웃'기법은 선에 집중하는 작업인데, 선을 억제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더하기와 빼기, 정의하기와 지우기를 반복한 작품은 '재생 화법'이기도 하다. '화이트 아웃'시리즈에서 사용한 기법을 다른 형식의 작품에도 적용해 지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드러남‘에 대한 연구로 다시 시작된다.
화가이면서 아트핸들러(운송)로도 활동하며 생의 의지와 활기를 온 몸으로 각인하는 에디 마티네즈는 일상적인 사물들에 관심을 가지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시각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비슷하지만 또 다른 그림들을 지속적으로 그려오고 있는 그는 이번 전시 제목 'To be Continued'과 닮은 모습이다. 그는 "모든 것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렸던 것을 다시 가져와 그리는 데 관심이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은 계속 발전하고 진화하며 왔다 갔다 하죠. 그림도 마찬가지 같아요. 모든 것에 완성이란 없으니까요." 한국 관람객들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쿨 하게 답했다. "저는 그림으로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하하" 그럼에도 한국에서의 전시 의미에 대해 그는 '기쁨'의 마음을 전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제 아들 아서가 태어난 이후로는 작업에 많은 ‘기쁨’이 있어요. 이 기운은 스튜디오 밖에서도 계속되는 삶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제 작품은 원하는 대로 해석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볼 수 있어요. 관람객들도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무언가를 찾기를 바랍니다."
한편 스페이스K는 최근 몇년간 '강서의 최고 미술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2021년 헤르난 바스 전시에 2만7000명이 관람해 화제를 모은 이후 네오 라우흐·로사 로이 부부 전시, 다니엘 리히터 전시까지 히트하면서 국내 핫 한 전시장으로 입소문이 나고 있다. 올해 첫 전시로 기획한 ‘에디 마티네즈’ 개인전도 새 봄을 맞아 활기 넘치는 작품으로 관람객들의 발길을 모을 것으로 전망된다. 선과 색이 꿈틀거려 자유분방함과 에너지가 넘친다. 사진 찍기 딱 좋은 그림이다. 전시는 6월16일까지. 관람료 5000원~8000원.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