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 3640일, 세월호가 바꾼 것과 남긴 것들[세월호10년①]
선박 규제 풀었다 '대형 참사'…제도 강화'승객 구조 실패' 정부 책임자 처벌은 1명특조위→선조위→사참위…침몰 원인 '미궁'
열 번째로 맞는 4월을 노란 슬픔이 덮는다. 304명이 우리 곁을 떠난 뒤 10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바꿨는가. 법과 제도가 바뀌었다. 아이들은 생존 수영을 배운다. 세 차례에 걸쳐 특별위원회를 꾸려 진상규명에 나섰다. 그 사이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공주사대부고 사설 해병대캠프 사고, 이태원 참사, 오송지하차도 참사가 이어졌다. 무엇이 달라졌나. 진상규명은 세월호 참사부터 미완의 과제다. 책임자 처벌 과정은 여전히 지난하다. 유가족과 생존자에 대한 혐오와 조롱도 10년 전과 다를 바 없다. 이태원 참사 159번째 희생자는 2차 가해의 피해자다. 사회적 참사로 가족을 잃은 이들이 거리에 나서고 그 곁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선다. 이런 이들이 늘수록 '달라진 게 있느냐'는 물음도 커졌다. '공감언론' 뉴시스는 우리 사회가 보낸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유가족·민간잠수사·활동가의 시각에서 바라본 10년을 들여다보고 이전과는 다른 10년을 모색해보려 7편에 걸쳐 기획 기사를 내보낸다. <편집자주> [서울=뉴시스] 김남희 기자 = 3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640일째 되는 날이다. 단원고 학생 250명 등 승객 304명이 사망했고 이 중 5명은 아직도 실종 상태다. 국회와 정부는 법과 제도 정비에 나섰고 많은 변화를 끌어냈다. 하지만 세 차례에 이은 위원회의 '진상규명' 시도에도 정확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책임자 처벌이 민간에만 집중됐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선박 규제 풀었다 '대형 참사'…제도 강화 참사 6년 전인 2008년, 정부는 고가의 선박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명목으로 20년이었던 선령 제한을 30년으로 완화했다. 이로 인해 2012년 이미 선령이 18년에 달했던 일본 퇴역 여객선이 세월호로 취항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이른바 '해피아'(해수부+마피아)들이 해운업계와 유착해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하고 뒷돈을 받아 챙기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는 화물을 과다하게 싣고 고박 여부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는 등 '총체적 안전불감증'도 드러났다. 우선 여객·화물 겸용 여객선의 선령 기준 규제가 최대 30년에서 25년으로 다시 강화됐다. 300톤급 이상 연안여객선은 선박항해기록장치(VDR) 설치를 의무화했다. 정부는 내항운항을 관리하는 운항관리자를 해운조합 소속에서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으로 옮기고 숫자도 세월호 당시 73명에서 현재 151명까지 두 배가량 늘렸다. 해사안전 분야 전문가인 해사안전감독관도 신설했다. 여객선 사업자의 안전 규정 위반에 대한 과징금도 최대 3000만원에서 10억원으로 대폭 인상했다. 재난 현장 '컨트롤타워'도 명확히 했다. 대규모 재난 발생 시 특별재난지역 선포에 관한 사항은 국무총리가 책임지도록 하고, 재난 대응과 복구 총괄·조정 기능은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맡는 기본 틀이 2014년 재난안전법 개정을 통해 정립됐다. ◆'승객 구조 실패' 정부 측 책임자 처벌은 1명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10년째 풀지 못한 의문이다. 세월호는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49분 전라남도 진도 앞바다에서 기울기 시작했다. 3분 후 첫 119 신고가 접수됐고 9시25분 서해해경청 소속 헬기 511호와 해경 123정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해경구조대는 조류로 인해 선내에 진입하지 못했고, 10시30분 세월호는 배 바닥을 보이며 뒤집혔다. 법원 판단에 따르면 헬기 도착 이후 최소 45분, 123정 도착 이후 25분간 승객을 탈출시킬 시간이 있었지만 구조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세월호가 완전 침몰하는 4월18일까지 국민들은 생중계로 배가 가라앉는 장면을 지켜봤다. 긴 시간 동안 제대로 구조 작업을 하지 않은 해경에 대한 책임론이 들끓었다. 2014년 수사를 맡은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참사의 직·간접적인 책임을 물어 38명을 기소했지만 해경 지휘부는 수사선상에서 빠졌다.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의 재수사 끝에 2020년 해경 지휘부 11명이 재판에 넘겨졌지만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재판부는 이들이 보호조치에 미흡했던 상황은 인정하면서도 이는 해경 차원의 문제이고, 김 전 청장 등에게 형사 책임을 묻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지금까지 해경에서 구조 부실 책임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건 징역 3년이 확정된 김경일 전 123정장이 유일하다. 선장과 선원들만 구조하고 승객들에 대한 퇴선 안내는 하지 않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됐다. 현장을 지휘한 윗선은 무죄인데, 지시에 따라 현장에 출동한 실무진만 유죄를 받았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특조위→선조위→사참위…침몰 원인 '미궁' 세월호 참사 직후 박근혜 정부는 검찰 수사, 국회 국정조사, 감사원 감사 등 5번의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자료 제출 거부와 전 국군기무사령부(현 안보지원사령부)의 유가족 불법 사찰 의혹으로 신뢰를 잃었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둘러싼 다양한 '음모론'이 제기되고 검찰과 법원의 결론이 엇갈리면서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당초 대검찰청은 2014년 10월 세월호가 무리한 증축과 과적으로 복원성이 약화된 점을 침몰 원인으로 밝혔다. 그러나 광주고법은 이듬해 4월 조타 미숙이 아닌 기관 고장으로 세월호가 침몰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후 2015년부터 세 차례의 특별위원회 조사가 이어졌다. 2015년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구성됐으나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한 채 2016년 9월 강제 종료됐다. 정부·여당의 반대로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상태에서 진실을 밝히기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남았다. 특조위는 시작부터 예산 삭감과 사찰 논란에 시달렸다. 2016년도 예산으로 73억5000만원을 정부에 요청했으나 정부는 9% 수준인 6억7300만원만 편성했다. 박근혜 정부의 조직적인 방해가 있었던 점이 이후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 일부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문재인 정부인 2017년 4월 진상 규명을 위해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가 출범했다. 당시는 2017년 3월 세월호 선체가 인양된 직후로, 침몰 원인을 명확히 하는 것이 선조위의 목표였다.
결국 2018년 12월, 2기 특조위로 불리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재출범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제정된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법'에 따라 구성될 수 있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2022년 6월 침몰의 직접적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채 활동을 마무리했다.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사참위는 "외력이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종합 결론을 내렸다. 3개월 후 발표한 종합보고서에서는 "외력 충돌 외의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정도에 이르지 못했으며 외력이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최종 결론에 이르렀다"는 애매한 표현을 썼다. 수년간 이어진 '잠수함 침몰설'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놓지 못한 셈이다. 다만 ▲정부의 공식 사과 ▲피해자 사찰 및 세월호특조위 조사 방해 행위에 대한 조사 및 감사 실시 ▲세월호 참사 피해자 지원 개선 등을 권고했다. 유가족들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세월호참사 10주기위원회는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 조사를 해도 제대로 된 조사가 아니었다"며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상설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가가 책임을 공식 인정하고 사과하고, 사참위의 권고를 이행해야 한다고도 촉구했다. 비공개된 자료를 전면 공개해 추가적인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고도 요구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