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가 견제했던 베르나르 뷔페, 5년 만에 다시 보는 강렬함
'천재의 빛 : 광대의 그림자’ 120여점 전시4m가 넘는 단테의 ‘신곡’과 ‘잔다르크’등 주목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9월까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가늘고 긴 몸, 거친 선이 매력적인 프랑스 화가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1928-1999)가 다시 서울에 왔다. 2019년 '나는 광대다 : 천재의 캔버스' 전시 이후 5년 만에 열린 이 전시는 '천재의 빛 : 광대의 그림자’ 제목을 달고 120여점을 선보인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1층에서 9월 10일까지 열린다. 5년 전에도 뷔페의 전시를 주최한 한솔비비케이가 이번 전시를 7개 공간으로 선보인다. 프랑스 베르나르 뷔페 재단과 공동 기획해 뷔페가 작업한 동세기의 예술가 장 콕토의 문학 앨범을 포함해 2019년 전시에서 볼 수 없었던 미공개 작품들이 대거 공개됐다. 4m가 넘는 단테의 ‘신곡’과 ‘잔다르크’등의 대형 작품들과 삽화, 판화, 잉크 드로잉, 수채화 등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넘나든 뷔페의 작업 세계관을 만나볼 수 있다.
주최측은 “첫번째 회고전이 작품이 그려진 시간 순서대로 선보였다면, 이번 전시에선 뷔페가 일생동안 다뤄온 주요 주제별로 나눠 전시를 구성했다. 단 1점을 제외하고는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품들"이라고 소개했다. 정물화, 인물화와 자화상, 광대, 풍경화, 문학과 종교 신화, 아내 아나벨, 죽음 등으로 이어진다. 초점 없는 눈, 마르고 길쭉한 신체, 뻣뻣한 형태의 인물화와 자화상,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인간 내면의 불안, 고통, 공허함 등의 감정을 광대의 얼굴로 담아낸 그림은 뷔페가 가장 오랜 기간 작업해 온 주제 중 하나다. 특히 뷔페의 아내이자 평생의 뮤즈였던 ‘아나벨’의 초상화와 음반 표지들과 함께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서는 죽음을 앞두고 6개월간 작업한 ‘죽음’ 연작 24점을 통해 뷔페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감정의 변화를 읽어볼 수 있다. "나는 영감을 믿지 않는다. 나는 단지 그릴 뿐이다."라고 했던 그는 혼돈의 시대에 태어나 일찍이 천재로 인정받은 화가다. 18세에 파리의 보자르 화랑에서 열린 ‘30세 미만의 살롱전’에 자화상을 출품했고 라틴식당들이 모여있는 캬르티에 라탱의 작은 서점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후벼내는 듯한 직선적이고 공격적인 선으로 그의 명성은 순식간에 유럽에 알려졌고 이탈리아 로마와 밀라노, 스위스의 바젤, 영국의 런던, 암스테르담 등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27세인 1955년 프랑스의 미술잡지‘ 꼬네상스 데쟈르’가 기획한 전후의 화가 10인 중 1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 절정의 화가였고, 28살에는 프랑스의 최고 작가로 베니스비엔날레에 참가했다.
30대 청년 뷔페는 당시 70대었던 거장 피카소의 '대항마'로 불리기도 했다. 30세에 뉴욕 타임즈가 뷔페를 이브 생 로랑, 프랑수아주 사강 등과 함께 ‘프랑스의 가장 뛰어난 젊은 재능 5인’에 꼽기도 했다. '꼬네상스 데자르 매거진(Connaissance des Arts magazine)'에서 프랑스인이 제일 좋아하는 작가 1위, 레지옹 도뇌르 문화훈장을 2번이나 수여 받은 프랑스의 20세기 최고이자 마지막 구상 회화 작가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뷔페는 "모든 것이 파괴되고 공포 속에서 살았다. 그 시절에는 먹을 것과 그릴 것만 찾아 다녀야 했다"라고 말하며 삭막하고 쓸쓸한 풍경, 메마른 사람들과 좌절의 초상을 그려냈다.
인간의 불안과 격분, 공포에 대한 거부의 세계를 강렬하게 간결하고 날카로운 선으로 드러냈던 베르나르 뷔페는 "삶에 지쳤다"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99년 그의 나이 71세, 프랑스 투르 자택에서 비닐봉지를 얼굴에 덮어쓴 채였다. “어떤 의미에서 내 그림은 내 인생의 모든 단계를 관통하는 실과 같아서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왔다. 만약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없으면 나는 차라리 죽을 것이다." 추상화가 대세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유지했지만 파킨슨병으로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게 되자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진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작품 활동에 매진, 그가 남긴 작품은 8000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대가 되어버린 천재, '광대의 그림자' 전시 타이틀은 생전 한 인터뷰에서 답한 그의 말이 이어지고 있다. 베르나르 뷔페는 '나중에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 지'에 묻자 "모르겠어요…아마도 광대일 것 같아요"라고 했다. 베르나르 뷔페는 50년이라는 작업 활동 기간 자신의 초상을 광대처럼 캔버스에 담아냈다. 인간의 모든 감정과 경험을 잔인한 칼날같은 날카롭고 뽀족한 선으로 담아낸 그림은 강렬하게 감성을 관통한다. 20세기 프랑스의 마지막 구상 회화 작가의 전시는 다시 구상 회화의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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