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커' 김경호, 30주년 사자후…韓 '히어 앤 에이드' 만들다
자신의 4집 실렸던 '포 2000 에이디' 2024년 버전으로 리메이크김종서·윤도현·박완규 등 참여오늘 정규 11집 '더 로커' 발매…데뷔 30주년 기념6월8일 전주 시작으로 전국 투어"예순 넘어 백발 그 모습 그대로 노래했으면"
가수 김경호(53)의 샤우팅은 사자후(獅子吼)다. 록의 정신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시대에 이 장르의 책무에 대한 울부짖음이다. 김경호 4집(1999) 실렸던 '포 2000 에이디'(For 2000 Ad)'는 김경호의 이런 록의 시대정신에 대한 증거다. 지난 13일 공개된 '포 2000 에이디(ver. 2024)'는 펄떡거리며 25년이 지나도 곡의 생명력은 여전하다는 걸 보여준다. 김종서, 윤도현, 박완규, 정홍일, 윤성기, 곽동현 등 동료 선후배 가수들이 피처링한 버전으로 리메이크했다. 글로벌 OTT 넷플릭스 음악 다큐멘터리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The Greatest Night in Pop)(감독 응우옌 바오)(2024)이 조명한 'USA 포 아프리카(for Africa)'의 자선 명곡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1985), 한국연예제작자협회가 외환 위기로 인한 실업자들을 돕기 위해 기획한 컴필레이션 음반 '나우 앤 뉴(Now N New)'에 실려 '한국판 위 아 더 월드'로 불렸던 '하나되어'(1999)를 떠올리게 한다. '위 아 더 월드', '하나되어' 같은 대곡(大曲)은 음악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새로운 선언'이었는데 '포 2000 에이디'는 록 음악 역시 그걸 해낼 수 있는 걸 증험한다. 전 세계 록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로니 제임스 디오를 주축으로 헤비메탈 뮤지션들이 뭉친 자선 프로젝트 '히어 앤 에이드(Hear N' Aid)'의 '스타스(Stars)'(1986)를 연상케 한다. 주다스 프리스트, 아이언 메이든 등 내로라하는 메탈 뮤지션들이 참여한 이 곡은 러닝타임이 7분을 넘는다. '포 2000 에이디'(ver. 2024)의 러닝타임 역시 7분24초다. 웅장함과 드라마틱한 서사는 '스타스' 못지 않다. 최근 충무로에서 만난 김경호는 '포 2000 에이디(ver. 2024)'에 대해 "오래 전부터 고민하고 있었던 꿈"이라고 했다. "25주년 기념 앨범을 만든 이후에 5년 만에 소속사 대표님이 30주년 기념 앨범을 만들 기회를 주셔서 욕심이 좀 났어요. 90년대 후반 우리나라 국민들이 IMF로 굉장히 힘들었잖아요. 그 때 '하나 되어'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대표 가수들만 모아서 부른 노래였죠. 그걸 연상하면 어떨까 싶었죠"라고 설명했다. '하나되어'에 참여했던 김경호는 1994년 1집 '마지막 기도'로 데뷔했다.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금지된 사랑', '나의 사랑 천상에서도' 등의 히트곡을 냈다. '고음 샤우팅'으로 가창력 끝판왕이라 불려왔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성숙하고 안정된 보컬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최근 국내 록 밴드 열풍이 불고 있는데, 그 진원지에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김경호가 똬리를 튼다. 그가 20일 발매한 정규 11집 '더 로커(THE ROCKER)'가 그 심장이다. 김경호의 30주년을 기록하며 써내려간 타이틀곡 '다시, 플라이(Fly)', 김경호가 작사·작곡한 곡으로 대한민국에서 비주류 장르인 록 음악을 지켜낸 팬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심을 담아낸 앨범과 동명의 곡 '더 로커', 김경호가 존경하는 로커 김종서가 쓴 '지나간다' 등 신곡 일곱 곡이 실렸다. 또 다른 국내 대표 로커 김태원의 곡인 록 그룹 '부활'의 '비밀' 등 리메이크 곡도 세 곡이 포함됐다. 다음은 김경호와 나눈 일문일답. -'포 2000 에이디'는 4집(1999)에 실렸던 곡이죠.
-쟁쟁한 가수분들을 모으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아무리 친한 선후배들이라 해도 부탁은 조심스럽고 타이밍도 잘 맞아야 하죠. 그런데 큰 형님인 종서 형님부터 제 동생 완규, 데뷔 동기인 도현이 그리고 '싱어게인'를 통해 협업했던 후배가수 홍일이, 거기에 제가 아끼는 성기·동현이까지 함께 하게 됐죠. 욕심을 부려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었는데, 우선 굵직굵직하면서 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분들을 모았어요." -이렇게 가요계 대단한 선후배 가수들이 모인 것만 해도 의미가 큰데, 이 곡의 노랫말은 지금도 진짜 의미가 커요. 이 시대에도 여전히 필요한 메시지죠. "사실 노래 초반은 희망적이지 못한 문제가 산적된 세기말을 넘어가는 시기에 대한 얘기잖아요. 그런데 마무리는 여섯 명이 다 나와서 희망적인 내용으로 마무리하죠." -이런 대형 프로젝트의 곡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요즘과 같은 싱글·EP 시대에 정규 앨범을 내는 건 역시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사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부담을 느낄 수 있는 작업이죠. 예전처럼 음악계가 CD 시장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사실 저도 부담을 느껴 미니 앨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회사 대표님이 30년이라는 기념비적인 숫자를 기념하고 팬들이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선물로 음반을 제대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해주셨어요." -이번 정규음반에서 가장 힘을 싣고 싶었던 부분은 무엇입니까? "세 곡의 리메이크와 일곱 곡의 신곡인데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고집했어요. 어설프게 요즘 시대 음악을 하려고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임했죠. 이번 앨범 제목 타이틀이 '더 로커'잖아요. 어찌 보면 굉장히 직설적인 표현이죠. 두 곡의 헤비메탈을 담았는데, 한 곡엔 관객 분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제가 생각했던 것들을 담았어요. 또 한 곡엔 30주년을 맞이하는 저의 감회를 담았어요. 젊은 친구들에게 제가 어떻게 도전을 해왔고,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가사에 담았어요. 이 두 가지 메시지를 제가 가장 잘하고 자신 있는 헤비메탈로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타이틀곡 '다시 플라이'는 저와 함께 많이 작업했고 '넥스트'에서 해철이 형과 함께 하며 건반·기타를 담당했던 김동혁이 작업했어요. 앨범엔 빠른 곡들과 느린 곡들이 섞여 있는데 전체적인 모든 테마는 다 록입니다. 요즘의 펑키 록이 아니고 제가 80년대부터 추구해온 하드록, 헤비메탈, 록 발라드로 구성이 돼 있어요."
"음반을 기획하고 생각하는 단계에서 도현이의 한마디가 제게 확고함을 줬어요. '경호야. 우리가 가장 자신 있고 잘하는 걸 하자. 나도 그렇고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라고 얘기했거든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헤비메탈을 하지 않고, 변형된 록을 해요. 정교한 연주보다는 감각과 리듬에 치우치는 록을 많이 추구하죠. 또 가창이 잘 되지 않아도 되는 장르의 록들을 많이 선택해요. 그런 상황에서 저와 도현이, 완규, 종서 형님 같은 뮤지션들이 지금도 활동하는 걸 보여주면서 예전에 저희가 한 음악들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도 될 거 같았어요. 저는 할 수 있다면 소신 있게 예순이 넘어서도 제가 추구해온 록 음악을 계속하고 싶어요." -경호 씨는 국내 '헤비니스 신(Heaviness scene)' 최후의 보루처럼 느껴져요. "여러 가지 우여곡절도 있고 슬럼프도 있었을 건데, 한 장르의 음악을 30년 동안 해온 거잖아요. 또 록이라는 장르가 주류의 음악도 아니고요. 물론 참신하고 열심히 하는 밴드들도 있어요. 그런데 저희가 추구했던, 가창력을 기반으로 하면서 기타 애드리브와 정확하고 정교한 연주를 추구하는 밴드들은 많이 없는 거 같아요. 록 페스티벌을 열어도 2~3일 동안 축제를 이끌어갈 게스트들이 없어요. 사실 록 음악을 시작하고 내공을 갖추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거든요. 해외의 추세만 따라가면, 점점 가벼워지고 깊이가 부족하죠." -경호 씨 말씀을 들으니 정말 대단한 로커들은 자기수양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도를 닦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지금까지도 전성기의 목소리를 유지하고 계시니 얼마나 혹독한 자기관리를 하시겠어요. "스스로에게는 혹독합니다. 왜냐하면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오래 가기 힘들거든요.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가서 1등상을 받으면 기쁘기는 하지만 그 여운이 오래가지 않아요. 하지만 그 많은 시련을 극복하고 30년 동안 음악을 해온 것이 대단하다고 말씀 주실 때면, 가장 행복하거든요." -경호 씨가 정말 더 대단하신 건 데뷔 당시 고음 덕분에 미국의 팝 메탈 밴드 '스트라이퍼(Stryper)'의 마이클 스위트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을 들었는데 바로 경호 씨만의 고유성을 찾은 지점이에요. "특히 흉내만 내서는 들어줄 수가 없는 장르가 록이에요. 흉내만 내면 성대모사 가수가 되죠. 저만의 스타일로 무엇이든 장점을 찾지 않으면 인정 받기가 힘들어요. 제게 언제나 귀감이 되고 멘토가 되시는 분이 김종서 선배님이신데, 선배님도 그러셨거든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인물이 레드 제플린의 로버트 플랜트인데 지금도 플랜트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를 커버하시면서 로버트처럼 절대 부르지 않거든요. 형님 스타일로 부르시는 걸 보면 여전히 깜짝 놀라요." -성대결절을 겪으셨는데 이후 창법을 바꾸시려는 노력을 하신 건가요? "바꿨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해왔던 게 있으니까, 본인 스스로가 알잖아요. 사실 이후에 회개하듯 회복되면서 예전 앨범의 곡들을 젊었을 때랑 똑같이 다시 노래하게 됐죠."
"존 본조비(62)도 어떻게든 지금의 목소리로 계속해서 신보를 발표하고 노래를 해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운만 있다면 노래하는 것이 제가 꿈꾸는 거예요. 예순이 넘어 백발이 돼도 그 모습 그대로 노래했으면 좋겠어요. 해외로 갈 필요 없이 국내에도 조용필 선배님 같은 분이 계시죠." -매년 6월부터 연말까지 투어를 도시는데 올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김경호는 6월8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모악당을 시작으로 같은 달 22일 서울 연세대학교 대강당, 7월13일 창원 KBS홀, 9월7일 목포 시민문화체육센터, 12월7일 청주 예술의전당 대공연장 무대에 오른다. 이밖에 광주, 고양, 부산, 대구, 대전, 인천, 천안 등 총 12개 도시를 돈다. 8인조 밴드가 함께 한다.) "투어는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죠. 저를 단련하고 긴장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무대에 꾸준히 서지 않으면 녹슬어요. 무대에 서지 않으면, 연주자들과 마찬가지로 보컬의 기질도 버려지게 되죠." -무대 위 강력한 카리스마의 모습과 달리 유튜브 등을 통해선 소박한 모습으로 팬들과 소통하십니다. "팬들과 조금 더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건데 진짜 말 그대로 브이로그입니다. 제 일상을 그냥 보여드리는 거라 어설프긴 한데 욕심을 갖고 하는 운영하는 게 아니라 편하게 촬영하고 있어요. 업로드되는 영상을 기다려주시는 팬분들이 계시고 구독자도 점점 늘고 있어 굉장히 재밌더라고요." -경호 씨가 대단하신 건 노래 외 이런 활동이나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같은 TV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전하셔도 고유성을 절대 잃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미지 소비가 되지 않는 아우라를 갖고 계신 거죠. 30년 동안 자기 관리를 이렇게 해오신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십니다. "'불후의 명곡' 제작진 분들이 제 30주년을 기념해서 제 특집을 만들어 주셨어요. 그런데 후배 가수들 또 록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꿈나무들이 '형님은 제 멘토시고 거울 같은 분이시고 형님 따라 음악을 해왔고 인생 속에서 배운 점이 많고 귀감이 돼주셨다'는 얘기들을 하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똑바로 살지 않으면 정말 큰 일 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음악뿐 아니라 삶을 따라하는 거잖아요. 또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후배들이 제 앨범에 담겨 있는 노래들을 모두 알고 있더라고요. 그 정도일 줄 몰랐는데 정말 놀랐어요. 유튜브에 올라온 모든 동영상들을 다 찾아보기도 하고요. 갈수록 정말 열심히 또 조심히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하고 있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