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 IT

방송 정상화? 장악? 실종된 이용자보호 정책…"차라리 방송위로 돌아가자"

등록 2024-07-27 11:01:00   최종수정 2024-07-29 11:48:40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긴급진단-식물 방통위 ②] 방송 장악? 정상화? 이슈만 남은 방통위

여야 합의정신 살린 기구지만…여야 3대 2 구도로 '무늬만 합의제' 시각도

플랫폼·통신·이용자 보호 등 ICT 현안 산적…방송 현안 분리 목소리 힘 실려

associate_pic
[과천=뉴시스] 홍효식 기자 = 김홍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이 28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KBS, MBC, EBS 임원 선임 계획에 관한 건 등 제32차 방통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4.06.2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심지혜 최은수 기자 = 방송 정상화? 방송 장악 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역할을 두고 매번 논란이 돼왔던 쟁점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여전히 지상파 방송을 대선에서 승리한 정권의 전리품으로 여기고 있는 까닭이다. 집권당은 '방송 정상화'를 명분으로 KBS, MBC, EBS 등 지상파 방송사 이사진과 경영진을 교체하는 걸 방통위 1순위 정책 과제로 삼는다. 반대로 야권은 '방송 장악 시도'라며 반발하는 일이 정권 교체기마다 되풀이돼왔다. 이 과정을 으레 '정치적 관례'쯤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여야가 바뀌더라도 정도를 넘진 않았다. 현안 별로 갈등은 있었지만 방통위 업무 기능이 올스톱 되는 일은 없었다.

스텝이 너무 꼬인 탓일까. 현 정부 들어선 방통위가 파행에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2008년 위원회 출범 이후 현직 방통위원이 한명도 없는 초유의 사태가 터졌다. 야당의 탄핵 소추안 발의로 이동관·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이 불과 6개월 사이에 줄줄이 자진 사퇴했고, 이번에는 위원장 대행을 맡던 부위원장마저 스스로 물러났다.  어떤 정책적 심의나 의결을 할 수 없는 '식물 방통위'로 무력화된 셈이다.

물론 현재의 방통위 업무 공백이 장기화되진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국회 인사청문 결과와 상관없이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이 강행되고 부위원장 후임 조기 인선이 이뤄진다면 예전처럼 방통위 주요 의결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방송 정책을 둘러싼 여야간 극단 대치가 풀리지 않는 한, '탄핵 추진→자진 사퇴→새로운 인사 임명'이라는 악순환 굴레가 현 정권 내내 반복될 것이라는 게 방송통신계의 우려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 공영방송 이사 선임 갈등이 화 불렀다…결국 '식물 방통위'

현재 여야가 극단 대립하는 명목상의 이유는 공영방송 이사회 선임 일정 때문이다. 당장 다음달 말부터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원(이하 방문진) 현 이사진과 KBS 이사진 임기가 차례로 끝난다. KBS 사장은 이미 바꿨다. 문제는 MBC. 현 MBC 경영진을 교체하려면 현재 야권 우위인 방문진 이사진을 바꿔야 한다.

여야간 입장차이는 확연하다. KBS 사장 교체 이후를 경험한 야당은 MBC를 '최후의 보루'로 여기고, 정부여당은 '반드시 장악해야 할 고지'로 본다.

야당은 방송법 개정 이전에 방문진 신규 임원 선임 일정을 늦추기 위해 '탄핵 소추' 카드를 남발했고, 정부는 자진사퇴→재임명 수순을 되풀이하면서라도 일정 강행에 나서는 모양새다. 한치 물러섬 없는 샅바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여야간 끝없는 대치 속에 방통위는 조직 기능을 아예 잃었고, 구글·애플 앱스토어 갑질 조사·단말기유통법 폐지·방송통신 이용자보호 등 주요 현안 업무는 사실상 올스톱됐다.

방송통신계는 지금에라도 방통위를 정상화하려면 출범 취지 대로 여야 합의제 기구로 되돌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방통위는 2008년 이명박(MB) 정부 시절 5명의 방통위원들이 주요 현안을 의결하는 합의제 기구로 출범했다.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대통령 직속 기관이지만 야당에서 2명의 추천을 받는 이유다.

방통위 안건 의결은 재적 위원 과반 찬성이면 가능하다. 5인 위원회 구조에서 3인이 찬성하면 통과된다. 이 때문에 공영방송 이사 선임 등 민감한 현안의 경우 야권 위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정권 의지대로 가결됐다. 대신 방통위 의결 구조 내부에서 야권 상임위원들을 통해 야당의 입장을 대변하고 때론 이를 빌밀로 대국민 여론전도 벌였다.

방통위가 지금처럼 파행이 거듭된 데는 5인으로 구성된 정상적인 방통위 출범 없이 2인 의결 체제가 고착화된 걸 발단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현행법에는 2인 이상 위원의 요구가 있거나 위원장 단독으로 회의 소집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 안건 의결은 재적 위원 과반 찬성이면 가능하다.

앞서 야당이 국회 추천 몫으로 방통위 상임위원(현 최민희 의원)을 추천했지만,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았다. 당시는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했던 한상혁 전 위원장을 면직 처분할 때다. 대통령 추천 몫 1인(이상인 전 위원)과 국회 여당 추천 1인(김효재 전 위원)과 국회 야당 추천(김현 전 위원) 1인이 남은 상황이었는데, 여기에서 야당 몫이 추가되면 2대 2 구조가 돼 정부·여당 주도의 방송 정책 추진이 쉽지 않은 구조가 된다.

그러다 국회 여당과 야당이 추천한 위원들이 모두 임기 만료로 물러났고, 방통위는 대통령 추천 상임위원 1인만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동관 전 위원장이 임명됐다. 자연스럽게 2인 의결 체제가 됐다. 이 때만 해도 정부·여당은 물론 야당 역시 5인 방통위 구성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YTN 민영화, KBS 사장 추천 등 주요 방송 현안들이 이 때 처리됐다. 야당은 대통령이 임명한 2인이 체제에서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는 것이 위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합의제’ 취지에 맞지 않다는 얘기다. 2인 의결 체제를 깨뜨릴 수단으로 야당이 탄핵소추 카드를 빼들었다. 방통위가 국회의 협조 없이 의결을 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의도에서다. 

급기야 26일 진행된 국회 본 회의에선 방통위 개의·의결 정족수를 현행 위원 2인에서 4인 이상으로 늘린 방통위 설치법 개정안이 야당 단독으로 의결 처리됐다.

이 법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대통령이 임명한 2명의 상임위원만으로는 방통위 주요 의안을 심의·의결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여당의 반발과 퇴장 속에 통과된 법안이라 현재로선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여권에선 2인 체제가 아니라 정권 교체 이후에도 스스로 물러나지 않았던 방통위원장과 공영방송 이사회를 여야 대치의 근원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방송통신계에서는 방송위 파행을 끝내기 위해선 여야 합의로 방통위를 5인 의결 체제로 조속히 되돌려 놓는 게 급선무라고 말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파행적 구조 속 의결 강행은 여야 갈등을 확산하면서 '탄핵'과 '사퇴-재임명'의 사이클에 메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합의제 정신에 따라 5인 의결 체제라면 집권당이 공영방송 다수 이사의 선임권을 가져간다면 나머지 이사들의 선임에 야당이 개입할 수 여지가 생긴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6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상정된 후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를 시작하자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2024.07.26. [email protected]

◆"ICT 업무 별도 분리하거나 과기부 이관해야" 목소리도
 
기존 5인 의사 결정 체제로 정상화한다 해도 다수결에 따른 의사결정 체제인 방통위의 근본적인 한계를 넘어서기에는 어렵다는 시각도 공존한다. 여3, 야2 구도가 바뀌지 않는 한 다수를 차지한 여당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는 상황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또 위원장과 상임위원의 임기를 보장해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적 의결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했지만 대통령 소속기구로서 대통령과 각각 추천한 당에 대한 입김에서는 자유롭기가 어렵다. 또 이번처럼 탄핵이 추진된다면 보장된 임기도 무색하게 된다.

이 때문에 차기 정부 구조개편에서 방통위 관할 업무 영역을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실제 방통위는 정권 교체기 때마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 등 방송 현안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번번이 처리가 시급한 통신·플랫폼·이용자 보호 현안들이 뒷전으로 밀리는 일이 반복돼왔다.

그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산업계와 이용자들이 입고 있다. 실제 ICT 현안은 제 때 처리되지 못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구글과 애플 인앱결제에 대한 과징금은 방통위 사무처가 거의 마무리 했음에도 의결이 이뤄지지 못했다. 검색 알고리즘 관련 사실조사 등 플랫폼 현안과 인공지능(AI) 이용자 보호 정책 등 처리해야 할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공영방송 규제와 통신·플랫폼 정책 현안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적어도 방송 이권을 위해 통신·플랫폼 관련 입법·심의 현안들을 볼모로 잡히는 일이 반복돼선 안된다는 논리다.

방통위 전직 관료 출신 인사는 "당장은 5인 체제를 회복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 확립을 위해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편이 필요하다"며 "이를 포함해 방송 규제와 현안은 독립된 의결기관으로 두고, ICT 관련 현안은 독임제 로 이관하거나 통신위원회와 같은 별도 위원회로 분리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업계 관계자는 “정치적 진영 대립이 강화되다 보니 합의제 기구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칫하다가는 ‘탄핵안 발의, 자진 사퇴, 인사 청문회'라는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방통위 업무가 마비되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돼 행정력을 낭비하는 상황이 계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