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들은 퇴근하세요"…원격제어 '성큼'[한국의 R&D 전진기지⑦]
실제 선박 구현…HD현대 GRC 원격운항센터선박 제어 및 디지털 제품 실증 이뤄져실증 어렵고, 책임 주체 불분명…상용화 어려움도
[판교(경기)=뉴시스)이다솜 기자 = "제어를 전환하겠습니다". 이 말과 동시에 경기 성남시 판교 소재 HD현대 글로벌R&D센터(GRC)가 대형 선박을 원격 제어하는 권한을 넘겨 받았다. 곧이어 GRC 내 디지털융합센터의 원격운항센터(ROC)에서 선박 방향 변경을 지시하자 400km 떨어져 있는 바다에서 운항 중이던 선박이 우측으로 15도 방향을 틀었다. 이어 선박 속도를 높이기 위해 엔진 RPM(분당 회전수)를 40에서 60으로 높이자 바다 위 이 선박은 더 빠르게 운항했다. 이는 HD한국조선해양이 지난 11월 세계 최초로 진행한 대형상선 자율항해 및 원격제어 실증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당시 실증은 HD현대 GRC에서 울산 해역까지 무려 400km 떨어진 곳의 선박을 원격 조타·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김지수 HD한국조선해양 디지털연구랩 디지털선박연구실 선임연구원은 "자동차에 비유하면 판교에 주차된 차에서 핸들을 돌리고, 엑셀을 밟았는데 울산에 있는 자동차의 방향과 속도가 조절되는 것"이라며 "본선에 있는 선원은 퇴근해도 된다"고 자신했다. ◆200평 공간에 선박 내부 구현…핵심 실증 진행 지난달 19일 방문한 HD현대 글로벌R&D센터 디지털융합센터. 661㎡(약 200평) 규모의 공간에는 선박 내부 구조가 그대로 구현됐다. 선수(배의 앞머리)에 해당하는 버추얼브리지는 55인치 모니터 11개를 이어 붙인 초대형 스크린과 방향 키 등 실제 선박을 조종하는 것처럼 환경을 조성했다. 입력한 데이터를 활용하면 국가, 지역, 기상 환경도 조정할 수 있으며 해상에서 이뤄지는 시운전 기간을 줄여 비용도 최대 30% 절감이 가능하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20여명의 HD한국조선해양 디지털연구랩 산하 디지털선박연구실 연구원들은 자율운항선박 시대를 앞당기기 위한 기술 개발에 한창이었다. 특히 '디지털 R&D 센터'인 이 공간을 활용해 선박 제어와 디지털 제품을 실증하는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연구실은 특히 자율운항선박을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과 함께 스마트십 솔루션과 자율운항선박플랫폼 등을 개발하고 있다. 올해 연말까지 원격 제어를 위한 자율운항플랫폼 기술 고도화와 자율운항을 위한 국제 표준 개발이 목표다. 자율운항선박이란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을 운항시스템에 접목해 선원의 의사 결정을 지원하고 궁극적으로 무(無선원 체제로 운항 가능한 선박을 말한다. 해운업계의 고질적 문제인 '선원 부족'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방안으로 꼽힌다. 해양 사고의 80% 이상이 인적 과실에 의해 발생하는 만큼 자율운항기술은 이를 획기적으로 줄여줄 '게임체인저'로도 통한다. 상용화될 경우 사고 감소, 인건비 감소뿐 아니라 운항 시간과 거리를 최적화해 연비도 절약할 수 있다. 아울러 무인기반 자동화 물류 혁명에서 해상 자율운항 선박이먈로 핵심 축을 맡게 된다.
◆사고·인건비 줄이는 꿈의 기술…상용화 걸림돌 '산적' 그러나 상용화를 위해서는 아직 해결할 걸림돌이 많다. 실증 과정에서 법적·제도적 한계로 인해 안전·기술·보안 측면에서 여전히 제약이 존재한다. 특히 기존 선원법이 선박에 필수적으로 선원이 승선해야 한다는 요건을 명시하고 있어 무인화·원격화 실증에 어려움이 많다. 정부에서도 현행법의 한계를 인식해 '자율운항선박 개발 및 상용화 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지난 3일부터 시행 중이다. 다만 여전히 해양수산부장관이 지정하는 운항 해역에서만 실증이 가능하며, 실제 지정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국제 실증의 경우 여전히 각국의 이해관계가 상충해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 특히 해상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운항 책임 주체가 선원에 맞춰져 있어 자율운항선박의 법적 책임 범위와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꼽힌다. 현재 IMO(국제해사기구)를 중심으로 자율운항 기술이 적용된 선박의 운항 주체와 책임 범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권병훈 HD한국조선해양 디지털연구랩&전동화센터 소장(전무)은 "운항 모드에 따라 책임 범위를 구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예컨대 원격제어 시에는 원격 운항자가, 완전 자율운항 시에는 선박 소유주 또는 시스템 제공자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사이버 보안과 기술적 장애 대응 역시 자율운항선박 상용화를 위해 중요 요소다. 디지털 기술 의존도가 높아지는 만큼 해킹, 랜섬웨어 공격 등 사고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권 소장은 "자율운항선박은 원격 제어 및 실시간 데이터 통신이 핵심이므로 사이버 공격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며 "국제 사이버 보안 기준을 준수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시스템 전반에 '블록체인 기반 신원 인증 기술' 등을 활용한 다중 보안 체계를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운항 중 발생할 수 있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헤 핵심 시스템은 이중화 설계를 해 장애 발생 시 백업 시스템이 곧바로 작동하도록 설계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조선업계에서 화두인 중국 조선사들과의 경쟁에 있어 자율운항기술만큼은 한 발 앞서있다고 강조했다. 권 소장은 "자율운항 기술의 상용화 수준과 실선 적용 실적 측면에서 저희가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며 "HD현대 자회사 아비커스의 자율운항 솔루션 하이나스 컨트롤은 업계에서도 가장 상용화 수준이 높다고 인정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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