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사법리스크' 10년…강산도 변했다[삼성, 다시 뛸까①]
2017년 국정농단 연루…560여일 구속재판만 4년 5개월…해외 활동 제약"삼성 어려워…소명 집중 기회 달라"
검찰이 상고를 했지만 재계에서는 1·2심에서 나온 19개 무죄 판단이 대법원에서 뒤집어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본다. 이로써 지난 10년간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의 발목을 잡아 온 사법리스크가 사실상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8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삼성그룹 부회장을 맡을 당시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위법하게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는 2017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뇌물을 건넨 혐의로 처음 구속됐다. 삼성물산 주주들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반대하자 삼성물산 지분 11.9%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청와대에 청탁을 했다는 혐의다. 당시 특별검사팀은 이 회장의 승계와 86억원의 뇌물이 맞교환됐다고 봤다. 이 혐의에 대해선 재판부 판결이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징역 5년을 선고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해 2018년 2월5일 이 회장을 석방했다. 수감된 지 354일 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 사건을 다시 서울고법에 돌려보내며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는 끝간데 없는 장기전으로 치닫는다. 삼성전자는 당시 대법원 선고가 난 뒤 진정성 있는 반성과 재발 방지를 다짐하며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도움과 성원을 부탁하는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측은 이 입장문에서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저희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이 경영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기대했던 삼성전자는 그러나 대법원 파기환송이 나오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참담한 분위기가 됐다. 이 회장도 이 회장대로 공개적으로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회장은 2020년 5월 경영권 승계 문제가 원만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이 회장은 당시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논란이 없도록 하겠다"며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 받을 일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오로지 회사 가치를 높이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다짐도 내놓았다. 이 회장은 이전까지 외부에 밝히기를 주저했던 폭탄 선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식들에게 삼성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그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직접 언급했다.
이 회장은 그러나 이 같은 파격적 수준의 대국민 사과에도 불구,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2021년 1월18일 실형을 선고하면서 또다시 수감됐다.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하고, 경영권 승계도 하지 않겠다며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강조한 '재발 방지 시스템' 마련에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통하지 않았다. 이 회장은 207일 동안 수감된 이후에야 2021년 8월13일 광복절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이 두 번의 구속으로 560여일을 감옥에서 지냈다. 이 회장은 출소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께 너무 큰 걱정을 끼쳐 정말 죄송하다"며 "저에 대한 걱정, 비난, 우려 그리고 큰 기대를 잘 듣고 있다.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그는 자택이 아닌 회사를 찾아 경영 복귀 의지도 드러냈다. 하지만 사법리스크는 여전히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밟고 있었다. 이 회장에게는 또 다른 사법리스크인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과 삼성바이오리직스 회계부정 혐의 재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회장은 이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된 이후 3년 넘게 재판을 받은 끝에 2024년 2월 1심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리고 지난 3일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받으며 4년 5개월의 기나긴 사법리스크를 견뎌야 했다. 장장 10년에 걸친 재판과 재판의 연속은 이 회장 개인 뿐 아니라 삼성의 글로벌 경영에도 실제하는 타격을 줬다. 이 회장은 재판 출석으로만 100차례 이상(1심 96회·항소심 6회) 법원을 방문해야 했다. 글로벌 경제 상황이 갈수록 엄중하게 바뀌었지만 이 회장은 글로벌 현장보다는 법정을 먼저 찾아야 했다. 이 회장이 해외 경영 현장에서 보낸 시간보다 법정에 출석한 시간이 더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 장기화로 삼성전자 위기는 더이상 우려가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10년간의 위기는 강산 뿐 아니라 삼성 위기의 실체까지 변하게 했다. 이 회장은 그룹 차원의 과감한 투자나 혁신에 대한 결정을 신경 쓰기보다 당장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읽어야 할 법적 서류들이 더 많았다. 이러는 사이 대만 TSMC 등 삼성전자의 글로벌 경쟁업체들은 각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AI 시대 주도권을 거머쥐었다. 국내 경쟁업체인 SK하이닉스도 오너 경영이 튼실하게 이어지며 AI 반도체 필수 품목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선두로 치고 나섰다.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25일 항소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최근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삼성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며 "부디 저의 소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허락해달라"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