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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떳떳하다"…'목탄화 끝판왕' 이재삼 자부심[박현주 아트클럽]

등록 2025-02-19 01:01:00   최종수정 2025-03-04 09: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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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나미술관서 '달빛 녹취록' 대규모 개인전

예술적 여정 집약된 '달빛 연작' 완결판 전시

가로 22m 검은 왕버들나무 극대화 최초 공개

목탄, 죽음과 재생, 생성과 소멸 상징 몰입감 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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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삼 자화상, 〈저 너머(Beyond There)〉_ 1998_캔버스에 목탄_아크릴릭_91 × 65,5cm. 사진=사비나미술관 제공. 2025.02.18.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저도 고흐를 빙자해 먹고 사는 사람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의 답은 의외였다. "고흐가 그 수많은 사람을 제치고 왜 고흐를 이야기하는가. 이전 종교나 귀족, 황제들에 기생하는 게 서양의 미술이었다면 개인의 역사를 이야기 한 처절한 화가다."

'검은 그림' 목탄 작업을 하면서 깨달았다. "학교 다닐 때 봤던 건 예술의 역사가 아니구나. 예술은 한 인간의, 자기 삶에 대한 절박한 절실함이 묻어나느냐, 아니냐에 따른 것이다. 그걸 알면 행해야지."

'목탄 회화''선구자 이재삼(65)은 수행자다. 음지에서도 마디 마디 쑥 크는 대나무처럼 반듯하고 흑과 백이 분명한 그림처럼 예술 신념이 확고했다. 

주로 소묘나 밑그림에 사용되는 목탄을 회화의 경지에 이르게 한 '밤의 시인'으로도 불리는 그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어떻게 그렸는지 모를 정도로 불가사의한 '검은 그림' 앞에서 그의 비범한 열정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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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밤의 시인' 이재삼 작가.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달빛' 연작의 완결판을 전시한다. 2025.02.18. [email protected]


"과연 나는 재능이 있는가?"


이 화두는 깨우침으로 나아갔다. "대학 졸업 후에 그림은 배우거나 가르쳐서 작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미술계 화단에도 정치판, 사회판이 존재하므로 이 울타리를 넘어서서 초연해야 하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 땅에 작가처럼이 아닌 작가로서 산다는 게 무엇인가?"

37세에 혼란스럽게 시작된 고민은 그를 다시, 그림 앞에 앉혔다. "아이들은 유치원 다니고 작업실도 유지해야 하는데…" 그를 치열하게 몰아세웠다. "어떻게 작업을 해야 잊혀지지 않는 작가가 되는 것일까?"

직업의 사춘기가 왔다. "로컬(지역)작가라고 인식하는 시간이 있었다. 세상은 컨템포러리 아트를 만들어 스타를 양성시키고 자국 문화에 대해 현대성을 이야기한다. 어느 날 그것이 내 옷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초등학교때 크레파스, 중학교때 수채화, 고등학교 때 석고데생, 대학 때 개념미술, 대학원 때는 컨템포러리 아트의 말로 작업을 대변하기 바빴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한국 사람이 그리는 한국 회화는 어떨까. 동양화가 아니라…" 그렇게 나이 마흔 줄 '목탄 회화'로 이재삼을 갈아 넣었다.

왜 '목탄 회화'인가.

"나무는 목탄의 근원이고, 목탄은 나무의 변형된 형상이며, 숲의 육신이 마지막으로 남긴 숲의 영혼이다. 과거에 존재했던 나무는 소멸과 재생의 과정을 거쳐 목탄으로 다시 태어나고, 그 목탄은 다시 나무의 형상으로 되돌아간다. 이는 자연이 품고 있는 시간과 기억, 존재의 흔적을 새로운 형태로 환생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목탄 회화를 시작하기 이전 5년 간 큐빅 공간을 해석하는 설치미술을 했었다. 당시 버려진 나뭇가지, 썩은 나무에 드로잉을 하는 작업을 했다. 그때 블랙의 미학에 천착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젊은모색전에 전시도 했지만 내 것이 아니었다. 말빨이 더 필요했다. 논리와 협업 도 해야 했다. 조수를 써야 하고 기획자, 평론가가 공유되어야 했다. 헤게모니에서 발을 빼니 미술이 보이더라. 내가 해야 할 일이."

명분은 따로 있었다. 한국 화가 자존심이다. "영국 프랑스 미술관 박물관에서 본 오일 페인팅에 질리고 의기소침해졌다. 르네상스 이전까지 물감이 문화이고 중국은 먹이 문화였다."

따지고 보니 "물감도 먹도 재능이나 재주를 보여주기 위한 매체였다." 그는 자유를 택했다. 모든 자연에서 탈출할 수 있는 재료를 탐구했다. 온갖 검정색을 위한 흑연, 갈탄, 그렇게 목탄이 다가왔다. "목탄은 일반적인 미술재료가 아니라, 숲의 영혼을 환생시키는 신성한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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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나미술관 5m 층고를 덮은 이재상 '달빛녹취록 Vol.5 (Transcript of the Moonlit Vol.5)〉' 2022_2024_캔버스에 목탄_546 × 2270cm  *재판매 및 DB 금지


'목탄 회화'는 인간 초월의 경지다
. 목탄은 바르는 순간 날리는 분진 가루이면서 둔탁한 재료다.

"제가 태생이 끙끙 앓느니 아예 죽지 뭐 스타일이다." 목탄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3년을 칩거하면서 목탄을 회화의 세계로 끌어올렸다. 인물을 표면에 내세우는 목탄의 기법을 승화 시켰다.

왜 '검은 그림'인가.

"어느 날, 자연에 대한 것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아 왜? 나무를 그리고 싶어하지?"

모든 것은 안에 있다. "제가 강원도 영월 출신이다. 그냥 살아온 게 아니더라. 내 심장, 가슴 밑바닥에 숨어 있던 나무, 숲 병풍이 각인 된 것이 솟구쳐 올라와서 그림으로 나타난 거다."

1960년생으로, 어린 시절은 가로등도 없는 시대였다. "외갓집이 영월에 살았다. 부모님은 이모집이 농사지을 때면 초등학생인 나를 항상 데리고 다녔다. 그땐 버스가 없으니 10리, 20리를 걸어 다녔다. 일을 마치고 땅거미 지을 무렵에 나와 다시 집으로 가는 길은 깜깜한 밤, 달밤을 걸었다. 제 어린 시절 그 기억, 그것이 튀어나왔다."

검은 그림 '달빛 녹취록'은 극도의 쾌감이다. "이재삼의 몸에서, 인식의 두께가, 그림의 상상의 두께가 나타났다. 저한테는 운명이고 필연적 목탄의 달빛 정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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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녹취록 Vol.4〉_2022, 캔버스에 목탄, 194 × 1813cm  *재판매 및 DB 금지


편리하고 가벼운 시대에 이토록 어렵게 미치도록 작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성향과 내 유전자에 대한 추적이다. 결국은 세상에 보이기 위한 게 아니라 던져 놓았을 때 세상이 알아주든 아니든 상관없다. 작가는 최소한의 소명 의식이 없다면 세상이 먼저 안다. 잔머리는 필요없다. 작가는 작가끼리 사짜인지 아닌지 알아본다.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 어쩌면 작은 종교 같은 예술 속에서 떳떳하고 싶다."
그는 "형식적인 칭찬이 오가는 전시는 비극적"이라고 했다. "예술은 해야만 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사람이 작가다. 그림은 직업인이 아니다. 업보다."

작가로서 예술이라는 단어 자체가 싫다고 했다. 뒤에 '술'자가 붙는다는 것. "술책, 기술. 그런 부분 보다는 자기의 그 모습에 '끝판왕'으로 가는 사람. 그리고 세상에서 한발 짝 물러나는 사람이 예술가"라는 입장이 단호했다.

"작가에게 성공은 없다. 성취만 있을 뿐"이라는 그는 화가로서 자부심이 넘쳤다. "예술가는 세상을 향해 활을 당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속 안에 활을 당기는 사람이다. 나는 육체의 주름보다 영혼의 주름에 민감한 작가다."
"세상에 다가가려고 하면 세상이 외면한다. 시대의 유행 트렌드는 지나면 잊혀진다. 물러나서 일하는 거는 세상이 다 본다. 예술은 즉발적이지 않다. 기다림이 필요하다. 예술가란 거친 폭우 속에서도 춤출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 그게 예술이다."
2018년 제3회 박수근미술상을 수상했다. 칩거와 몰두, 온전히 그림에 내 맡긴 삶. 하지만 그도 흔들린다.

"1년에 몇 번 주기가 온다. 암시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로컬리티하다고 (미국)모마 미술관을 가지 말란 법 없지 않나? (그곳에서 전시할 것이라는)그 암시가 없으면 못 산다."

유언 같은 말도 남겼다. "자식한테 부끄럽지 않고 싶다. 내 작품이 쓰레기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 화가로서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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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Moonscape)〉_2019_캔버스에 목탄_130 × 194c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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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밤의 시인' 이재삼 작가가 18일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연 개인전 '달빛녹취록 2020-2024' 전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2025.02.18. [email protected]


"쨍쨍한 태양을 거부하고 칠흑 같은 밤을, 밤의 감성 향수를 화면에 그리는 작가 이재삼입니다."


19일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이재삼 '달빛녹취록 2020-2024'세계가 열렸다.

작가가 지난 4년 간 작업한 결과물을 최초로 공개하는 전시다. 20여 년간 달빛에 매료되어 밤의 풍경을 탐구해 온 그의 예술적 여정이 집약된 '달빛' 연작의 완결판이다.

거대하고 압도적인 몰입감에 말문이 막힌다. '오십 줄에 작정하고 시작한 도전, '구차한 말이 필요 없는 그림'은 웅장함과 동시에 화가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특히 2층에 선보인 달빛과 물안개에 젖은 왕버들나무는 압권이다. 높이 5.4m, 가로 22.7m 캔버스 21개의 압도적인 규모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김제 종덕리의 왕버들나무(수령 약 300살)는 달빛과 물빛에 일렁이며 숭고함을 드러낸다. 수백 년 동안 호수나 물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왕버들나무는 자연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집념의 작가 모습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3층까지 개방된 미술관 공간을 활용해 5미터 높이에서도 달을 볼 수 있어 전시장 전체를 달빛으로 감싸는 분위기로 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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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이재삼 작가가 18일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개인전 '달빛녹취록 2020-2024' 기자간담회를 갖고 주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5.02.18. [email protected]


이재삼은 목탄화의 예술적 가치를 새롭게 정립한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1998년부터 2025년 현재까지 목탄의 정밀성과 내구성이 부족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재료와 기법을 부단히 실험하고 연구했다.숲에서 수확한 나무를 태워 만든 목탄과 조화를 이루는 광목천을 사용하여 캔버스를 직접 제작하고, 송진과 아교로 목탄 층을 고정하며, UV 코팅으로 내구성을 확보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목탄의 물성을 회화적으로 확장했다.
"손으로 만져봐도 된다. (목탄이)떨어지거나 묻지 않는다"며 그는 캔버스 검은 화면을 탕탕 쳤다.

전시는 ‘수중월(水中月)’, ‘심중월(心中月)’, ‘검묵의 탄생’ 3가지 섹션으로 선보인다. 각 섹션은 달빛이 머무는 물, 달빛이 비추는 내면, 목탄을 통해 구현된 검은색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정으로 연결된다.

드로잉도 없이 즉흥적 재즈처럼 나온, 헌신의 노동집약적 화면은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돈다.

예술은 말이 필요없다. 오로지 목탄으로만 풀어낸 '달빛 녹취록'은 '검묵'의 신비함을 오감으로 느끼게 한다.  물보라가 치는 듯한 폭포의 입체감과 빽빽한 이파리 속 팔색조가 머리를 내밀고, 대나무 숲 속 고양이가 빼꼼 얼굴을 내민 '숨은그림찾기' 같은 재미도 선사한다. 서울 시내에서도 1시간 가량 걸리는 외진 미술관이지만 시간이 아깝지 않게 한다. 압도적인 대규모 회화와 공간적 연출로 몰입도를 극대화한 '진심의 미술관' 경험도 할 수 있다. 전시는 4월 2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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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사비나 미술관에서 열린  이재삼 작가의 개인전 '달빛녹취록 2020-2024'작품에는 검은 화면 속에 숨은그림찾기 같은 묘미가 있다. 고양이, 새 가 화면에서 살짝 보인다. 2025.02.18.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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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탄을 인물 표현으로 실험한 초기작. 〈저 너머(Beyond There)〉_ 2001_캔버스에 목탄_181 × 454cm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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