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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편되는 세계 질서…'트럼프식 딜'에 서방 균열[우크라戰 3년②]

등록 2025-02-23 05:01:00   최종수정 2025-02-24 10:4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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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4주만에 美주도 세계화 종식 예고"

美, 유럽 '안보 비용' 줄이고 중국 집중할 듯

유럽, 방위력 증강해 러 견제…美 설득 총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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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비치=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을 배제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에 나서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미국 주도 세계 질서가 재편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 시간) 플로리다주 팜배치의 마러라고 자택에서 행정명령 서명식을 개최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2025.02.19.
[서울=뉴시스] 김승민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에서 유럽이 사실상 배제됐다.

미국이 러시아와 직거래에 나서면서 냉전기 소련의 확장에 맞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깃발 아래 뭉쳐왔던 미국과 유럽이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유럽 정상들이 트럼프 대통령 설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트럼프식 딜'이 관철될 경우 세계 질서가 근본적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은 단 4주 만에 미국 외교정책을 극적으로 전환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종식을 예고했다"고 평가했다.

◆美, 유럽 집단방위 이탈 수순…'80년 전후질서' 재편?
'24시간 내 종전'을 공약으로 걸고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90분간 통화하고 종전 협상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곧이어 지난 18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고위급 회담을 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배제하고 속도전에 나선 배경에는 미국의 비용 지출을 빠르게 정리해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2기 임기를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이 미국의 안보 보장에 '무임승차'해왔다고 본다. 3년간 이어진 전쟁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온 것 역시 유럽의 문제를 부당하게 떠안았던 것이라는 인식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를 압박해 전쟁을 최대한 빠르게 끝낸 뒤 전후 관리 책임은 유럽에 직접 맡긴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 계획이다. 미군 파병에도 선을 긋고 있다.

나아가 유럽 주둔 미군도 줄일 계획이다. 그는 당선 직후인 지난해 12월 "유럽은 미국의 자동차와 식품을 사가지 않는데 미국은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1기 행정부 때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했던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차 세계대전 후 80여년간 미국이 주도해온 나토 집단방위체제까지 전면 재검토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 나이젤 굴드-데이비스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즈에 "미국은 종전 협상을 단독으로 벌이겠다면서 협상에서 배제된 유럽이 돈을 내고 합의 이행을 담당하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이미 예산 감축에 들어갔다. 미 국방부는 향후 5년간 매년 8%씩 예산을 삭감하기로 했고, 20일 WSJ에 따르면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최근 유럽 각국에 주유럽 미군 감축 가능성을 언급했다.

경제적 요인 이외에, 트럼프 대통령의 정세 인식이 미국의 전통적 입장과 다르다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유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라는 러시아 주장에 힘을 실었다. 미국은 주요 7개국(G7) 전쟁 3주년 결의안의 '러시아 침공(aggression)' 문구에도 반대하며 별도 결의안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냉전기 소련 영향권에 있던 동유럽 국가들이 탈냉전 후 나토에 가입하고 나토군을 주둔시키는 것을 러시아 안보를 위협하는 부당한 현상 변경으로 보고 반발해왔다.

바이든 행정부까지의 미국은 러시아의 주장을 일축하고 나토의 일원으로서 유럽을 지지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거스르고 러시아 주장에 동의한다고 밝힌 것이다.

러시아가 미국에 나토군을 뒤로 물릴 것을 요구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루마니아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러시아는 최근 미국에 동유럽 주둔 나토군 철수를 요구했으나 미국이 거부했다. 다만 러시아는 보도를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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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벨기에)=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을 배제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을 추진하며 유럽의 자체 방위력 증강을 압박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중 단체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2025.02.16.
◆유럽, 자체 방위력 증강…트럼프 설득에도 총력
트럼프 대통령 계획대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이 이뤄지면 서방이 러시아의 서진을 막아서는 '신냉전' 질서는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1기 안보부(副)보좌관을 지낸 빅토리아 코츠 헤리티지재단 안보·외교 부회장은 WSJ에 "트럼프 대통령이 2차대전 이후 질서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면서도 "지정학적 지형이 바뀌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배제하면서까지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에 힘을 쏟는 배경에는 패권 경쟁국인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1970년대 미국이 중국과 '데탕트' 외교를 펼치면서 소련을 고립시킨 것이 탈냉전을 앞당겼다는 시각의 연장선으로, 미러 관계를 회복해 중국 포위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냉전기 미국과 소련이 맺었던 핵 군축 체제를 중국을 포함시켜 재편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러시아와 직접 대치하는 유럽은 상황이 다르다. 유럽은 러시아가 동유럽에서 세력을 회복하려고 한다고 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러시아는 제국주의자가 된 위험한 군사대국"이라며 "러시아가 계속해서 약탈적이라면 유럽에 위협"이라고 했다.

유럽은 자체 방위력 증강에 나섰다. 미국 지원이 없다면, 유럽 군사력이 러시아에 확실한 우위를 점한다고 보기 어렵다. IISS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유럽 나토 회원국 전체 국방비는 4570억 달러로 러시아(4620억 달러)보다 적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이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로 쓸 것을 압박하고 있다. 5%는 아니더라도, 현재 1.7~1.9% 수준보다는 올려야 한다는 것이 유럽 인식이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3.7%까지 높여야 한다"고 했다.

유럽연합(EU) 순회의장국 폴란드의 도날트 투스크 총리는 "유럽이 지금 국방비를 크게 늘리지 않으면 전쟁이 닥칠 때 10배 이상을 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영국은 현재 GDP의 2.33%인 국방비를 2.65%까지 올린다는 계획이다.

러시아 재침공을 직접 억제할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유럽은 전후 우크라이나에 3만명 규모의 '보장군(Reassurance Force)'을 배치할 계획이다. EU는 200억 유로 규모의 우크라이나 추가 군사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유럽으로서는 여전히 미국의 관여 유지가 최상책이다. 미국이 집단방위체제를 이탈하지 않는다면 유럽의 방위 부담은 현저히 줄어든다. 러시아 재침공 억제 역시 미국의 관여 여부가 핵심 변수다.

유럽은 트럼프 대통령 설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정상은 내주 미국을 찾아 유럽의 방위비 지출 인상 노력을 설명하고 동유럽 주둔 미군의 역할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러-북 군사 밀착으로 고도화된 북한 핵 위협에 맞서는 한미동맹 차원의 대응도 차후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종전 협상에서 배제된 것처럼 '한국 패싱'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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