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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 '일무' 연출 정구호 "전통을 현대적 언어로…난 헤리티지 만드는 사람"[문화人터뷰]

등록 2025-08-17 10:00:00   최종수정 2025-08-19 16: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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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공연 전석 매진·호평받은 서울시무용단 '일무' 연출

2013년 국립무용단 '단' 이후 전통·현대 아우른 연출 선봬

美 유학시절 대학 교수가 영감 줘…헤리티지 중요성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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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서울시무용단의 '일무' 연출가 정구호는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명해지는 것보단, 선한 영향력과 함께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저는 지금 세대의 헤리티지(heritage·유산)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해요. 헤리티지는 과거에도 만들어졌지만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거잖아요."

서울시무용단 '일무' 연출가 정구호(63)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명해지는 것보단, 선한 영향력과 함께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구호는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인 종묘제례악의 의식무(儀式舞)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일무' 연출을 맡았다. 오는 21~2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일무'는 일찌감치  전석 매진됐다. 서울시무용단과 안무가 정혜진, 김성훈, 김재덕의 협업으로 2022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초연됐다.

초연 이후 2023년 뉴욕 링컨센터 공연 전회차 매진을 기록했으며, 이후로도 매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르고 있다. 세련된 미장센(무대 위 연출)으로 한국춤의 매력을 극대화하며 세종문화회관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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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서울시무용단의 '일무' 중 1막 일무연구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서울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2023년 8월 뉴욕 링컨센터에 초청돼, 전체 17개 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유료 공연으로 편성됐음에도 전 회차 매진 기록을 세우며 현지에서 호평받았다.

정 연출가는 "제가 봐왔던 춤 중에 종묘제례악의 일무(佾舞·여러 사람이 줄을 지어 추는 한국 전통춤)가 가장 특이했다"며 "64명의 무용수가 움직이는데, 이들이 한 사람이 움직이듯 하는 데 '어떻게 저런 춤을 추지?'라고 생각했다. 굉장히 신기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일무는 저한테는 내게 굉장히 호기심 많은 공연 중에 하나"라면서 "그래서 자꾸 일무를 발전시키려는 마음이 있었다. 이번 일무 공연은 첫 번째 스텝이고, 일무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계속) 현대화하는 작업도 무척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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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서울시무용단의 '일무' 중 2막 궁중무연구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정 연출가는 2013년 국립무용단 '단'으로 처음 한국무용 연출에 데뷔한 이래 '묵향' '향연' '산조' '일무'는 물론 최근엔 전통연희극 '단심'에 이르기까지 전통과 현대를 절묘하게 절충한 무대를 선보였다.

공연예술계 연출가로서 활약 중인 그는 패션 디자이너 출신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 구호(KUHO)를 출시한 이후 제일모직(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휠라코리아, 제이에스티나 등 국내 유명 패션기업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2015~2019년 서울패션위크 총감독을 지냈다. 리움·호암미술관 리뉴얼 총괄, 공예트렌드페어 총감독도 맡았다.

처음엔 주업이 패션 디자이너이고, 무용 연출은 취미와 같은 부업에 불과했지만 점차 무용 연출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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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서울시무용단의 '일무' 중 1막 일무연구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그는 "패션계에 있을 때 일탈을 하기 위해서 했던 게 무용 작업이었다. 그러다 점점 주업으로 넘어왔다"며 "무용 공연 작업할 때가 가장 즐겁다.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여러 가지 것들을 잘 정리해서 무대에 올라가 구현이 됐을 때 제일 즐겁다"고 털어놨다.

평소 작업을 하는데 영감을 줬거나 준 인물 혹은 '멘토'가 있는지 묻자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미국 유학 시절 만났던 한 대학 교수를 소환했다.

정 연출가는 "대학교에 다닐 때 교양 과목으로 조각학을 들었는데 조각과 교수님이 가장 많은 영향을 줬다"며 "어느 날 교수님이 저를 집으로 초대하셔서 놀러 갔는데, 알고보니 열 몇 살에 한국 전쟁에 참전하신 분이었다. 그런데 이 분이 궁중 복식를 비롯한 한국 공예품을 다 보관하고 계셨고, 자신이 죽으면 다 기부하려고 한다고 했다"고 당시 미국인 교수에 대해 떠올렸다.

이어 "젊을 때부터 수집해 온 건데, 이 교수님이 문화를 대하는 모습들이 너무 좋았다. 그 때 헤리티지와 그 중요성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며 "교수님의 부인은 유물 복원하는 일을 하신 분이었는데, 이 부부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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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서울시무용단의 '일무' 연출가 정구호는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명해지는 것보단, 선한 영향력과 함께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정 연출가는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통을 현대적인 언어로 다시 표현하는 작업은 계속해서 할거고 계속 도전해 나가면서 진화를 하지않겠나. 머릿 속에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까지는 계속 하려고 한다"며 '헤리티지'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연출한 여러 작품들 중 '일무'가 50대 50대의 비율로 전통과 현대적 해석이 들어간 작품이라고 했다.

정 연출가는 "전통적인 한국무용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게 목표였다"며 "전통 춤이지만 지루하거나 전혀 어렵지 않다는 것을 보여드리면서 '일무'를 요즘 식으로 재해석한다면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 (고민했다). 아주 천천히 느리게 움직이는 호흡이 지금 시점에 와서는 좀 더 빠른 호흡으로 움직일텐데, 그래서 '일무'에 대한 현대적 해석을 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무는 전통과 현대의 포션이 정확히 반반 들어있다. 전통적인 것을 하면서 조금씩 현대 해석을 늘려가는 것인데, 포션(비율)이 반반으로 구성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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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서울시무용단의 '일무' 연출가 정구호는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명해지는 것보단, 선한 영향력과 함께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일본풍' 혹은 '중국풍' 아니냐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에 대해선 "우리나라는 항상 보색을 대비시켜 옷을 입었다. 그 어떤 나라도 그렇게 입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나라 옷은 위·아래가 나눠져 있다. 중국은 나눠졌다가 합쳐졌고, 일본은 한 벌이다"고 반박했다.

이어 "한복의 보색 대비로 갈라진 옷을 '일무'에서 표현을 했다. 우리나라는 흰색이 너무 중요하고 붉은색과 청색의 보색 대비가 너무 중요해서 세 가지 색을 보통 쓴다"며 "반면 일본 옷은 되게 딱딱하다. 일본 춤은 우리나라 같이 옷이 이렇게 휘날리는 춤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형식이 되게 자연스럽고, 일본은 갖춰진 형식을 따라간다. 중국은 페르시안 춤부터 시작해 다양한 민족들의 춤이 섞여 있다. 이러한 중국과 일본의 딱딱함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것을 가져가느냐에 대한 생각을 한다"며 "화려해지면 중국스러워보이고 깔끔하게 정리된 스타일이면 일본스러워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문화를 오롯이 선점하는게 너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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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서울시무용단의 '일무' 연출가 정구호는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명해지는 것보단, 선한 영향력과 함께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결국 중국과 일본, 한국의 문화가 서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

그는 다만 "관객들이 보고 느끼고 표현하는 평은 관객들의 몫이다. 알고 하는 것도 있고 모르고 하는 것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서 관객들도 다시 알아가는 것이고, 또 발전해 간다"며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제가 없어진 이후 많은 시간이 흘러서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일무'는 21~2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마친 뒤, 강릉(8월 29일 강릉아트센터), 대구(9월 4~5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도 공연할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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