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변성현 "시대를 향한 짜증과 냉소가 있어요"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 연출·각본 맡아1970년 요도호 사건 모티브 블랙코미디"매일 짜증나는 뉴스…그 지겨움 담았다""권위·권력 아무 것도 아니라는 풍자도"스타일리쉬 평가 "난 클래식하게 찍는다"10년 간 장편 4편 "보기와 달리 성실해""은퇴에 대한 불안감이 영화 만들게 해"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변성현(45) 감독에게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10월17일 공개)를 만들기까지 영향을 준 사건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 작품은 1970년 요도호 사건에서 출발했기에 당연히 해당 사건 사실 관계의 큰 얼개를 성실히 따라간다. 문제는 이 영화의 목표가 역사를 재연하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굿뉴스'는 블랙코미디. 변 감독은 요도호 사건을 활용해 정치와 언론과 대중을 비꼬는 건 물론 지금 이 시대에 사실이라는 게 무엇인지 또 진실이라는 건 무엇인지에 관해 고민한다. 그래서 요도호 사건이 이같은 풍자극으로 발전하는 데 역할을 한 사건이 있었느냐 물은 것이다. 그는 "어떤 사건이 아니라 매일 매일이 그랬다"고 했다. "전 아침에 주로 라디오 뉴스를 듣습니다. 거의 다 짜증나는 뉴스 뿐이죠. 거의 매일이 그래요. 가장 대표적인 게 지금 같은 탈이념 시대에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이념 대립입니다. 지겨워요. 이렇게 제가 느끼는 짜증과 지겨움 그리고 냉소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굿뉴스'는 일본 공산주의 무장 단체 적군파가 일본 여객기를 납치해 평양으로 향하자 일본 정부는 물론 한국 정부까지 나서 이를 막으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름도, 출신도 베일에 싸인 정체불명의 해결사 아무개(설경구)는 여객기를 무조건 남한에 착륙시키라는 중앙정보부장 박상현(류승범)의 명령을 받고 비밀 작전을 세운다. 얼떨결에 비밀 작전에 동원된 서고명(홍경)은 교신을 통해 납치범들을 속여 여객기를 남한으로 다시 하이재킹 하라는 절체절명의 임무를 맡게 된다.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 '굿뉴스'는 트루먼 셰이디의 명언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 명언, 진짜가 아니다. 변 감독이 그럴싸하게 지어낸 말이다. 트루먼 셰이디라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역시 변 감독이 창조한 가상의 인물이다. 이 말이 가짜 명언이라는 걸 관객은 극 후반부에 가서야 알 수 있다. 그는 "권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고, 실은 권위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는 걸 그 명언으로 보여주며 시작하고 싶었다"고 했다. "어떤 큰 결정이 있을 때 우린 보통 그것이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일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의문이 드는 겁니다. 역사를 봐도 엄청난 결정이 권력자 사이에서 벌어진 허무맹랑한 사건 하나 때문에 이뤄지기도 하니까요. 박상현은 책상 위에 볼펜을 세웁니다.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죠. 그런데 영화에선 그 요도호 사건이 그 볼펜 하나 때문에 발생합니다." 관제사 서고명은 납치된 여객기를 남한에 착륙시키면 그 이름처럼 이름을 드높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미션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오히려 역사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냥 박상현이 그렇게 결정했으니까 말이다.
'굿뉴스'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형식 면에서도 전에 한국영화에 없던 시도를 여럿 한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아무개가 카메라를 보고 관객에게 직접 해설을 한다든지, 일본 애니메이션 '내일의 죠' 일부 장면이 삽입된다든지, 주인공들이 본격 등장해 극을 이끌어가기까지 초반 러닝 타임 15분 이상 걸린다는 점 등 흔치 않은 연출로 가득하다. 2017년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을 시작으로 '킹메이커'(2022) '길복순'(2023) 등으로 국내에서 가장 스타일리쉬한 영화를 만든다는 평가를 받아온 변 감독은 이번에도 역시 때깔 좋은 그림들로 관객을 매혹한다. 다만 그는 자신의 영화를 스타일리쉬하다고 말하는 데 온전히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는데 스타일리쉬를 얘기하려면 이명세 감독님 정도는 돼야 해요. 글쎄요. 저는 이야기에 가장 잘 맞는 장면을 구성하려고 하는 것 뿐입니다. 칭찬해주시는 건 좋지만 멋지게 찍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오히려 제 영화엔 클래식한 쇼트가 많습니다. 컷 수 역시 다른 한국영화보다 적을 거고요. 다만 그런 건 있습니다. 교과서적인 연출은 좋지만 뻔하게 찍고 싶진 않아요. 그래서 촬영 전에 스필버그 영화를 보는 편입니다." 새로운 시도를 추구하는 변 감독이 시도하지 않는 게 딱 하나 있다. 배우다. 그는 '불한당'부터 '굿뉴스'까지 작품 4개를 모두 설경구와 함께했다. 특정 감독이 특정 배우를 선호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긴 해도 영화 4편을 연속해서 한 배우와 작업하는 건 흔치 않다. 변 감독은 "관성적인 면도 있긴 하다"고 말하며 미소를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길복순'을 설경구와 하기로 한 뒤 들었던 얘기를 꺼내놨다. "이제 저와 경구 선배님 조합이 지겹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제가 청개구리 같아요. 원래 '길복순'까지만 하고 그만 하려고 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까 선배님과 한 번 더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겁니다. 경구 선배님은 제 최애 배우이기도 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전도연·한석규·설경구입니다. 이 순서대로 좋아해요." 이마와 귀를 덮은 파마 머리, 밴드티와 가죽 재킷, 청바지와 부츠. 평소 스타일리쉬한 패션으로 잘 알려진 변 감독은 인터뷰가 있는 날에도 특유의 감각을 드러낸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분명 다른 감독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가 감독으로서 일반적이지 않는 부분이 한 가지 더 있다. 10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장편영화 4편을 쓰고 찍으면서 각각의 작품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를 인정 받아왔다는 점이다. 변 감독은 "내가 성실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런데 보기와 달리 난 은근히 성실하다"고 말했다. "전 술 먹는 거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합니다. 영화 한 편 하고 나면 오래 놀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 두 달 놀다보면 불안합니다. 이렇게 놀다가 아무것도 못 만들어내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는 거죠. 그 불안 때문에 뭐라도 생각해내고 뭐라도 쓰게 되는 겁니다. 지금 당장 안 만들어내면 못 만들 것 같다는 강박이 있어요. 이 직업은 은퇴를 당하는 직업이잖아요. 전 빨리 은퇴당하고 싶진 않아요." 변 감독은 차기작에 대한 구상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아이템도 없다고 했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굿뉴스' 관련 일이 모두 끝나면 그때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건 바이 건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제가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라서 불안감이 크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봐요. 전 그 스트레스를 술로 풀고 있습니다.(웃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