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100세 화가' 김병기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백세청풍: 바람이 일어나다' 개인전 北로켓발사보며 그린 '공간반응'등 50점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서 25일 개막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백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가요 '100세 인생' 노래가 뜬 건 '100세 시대'이기 때문이다. 노래 가사처럼 '팔십세에 저 세상에서 데리로 오거든 자존심 상해서 못간다고 전해라'는 세상이 됐다. 지난해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소설로 영화로 나와 웃음폭탄을 선사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소설같은 일이 국내 미술판에 벌어졌다. 만으로 100살된 노인이다. 아직도 그림을 그리고 개인전을 여는 화가다. 이 '100세 화가'도 '창문넘어~100세 노인' 알란 같다. 세상 밖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 인생의 참맛을 겪은 알란처럼 그도 그렇게 세상밖을 떠돌며 살다, 50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일어나게 될일은 일어날 일, 미리 쓸데없이 걱정해봐야 소용없다" 는 알란 처럼 과거나 현재의 불행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나는 오늘의 세한도를 그리는 사람이야." 1916년생. 올해로 만 100세가 된 김병기 화백은 "난 100세 노인이 아니야. 그렇게 쓰면 안돼~." 라며 "난 오늘을 그리는 작가"라고 강조했다. 18일 만난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 햄이 든 샌드위치를 베어 물고 붉은 와인을 마셨다. "주스같아서 요즘 자주 먹는데 맛이 있다"며 한잔을 권했다. 100세를 살면서 기쁨과 슬픔, 환희, 고독등 힘든 일을 겪고 지나왔지만 그는 젊은이 못지 않다. '살아있는 20세기의 역사'라고나 할까. 100세에도 붓을 놓지 않은 화백으로 기록될 국내 화단의 최고령 화백이다. 인터뷰가 길어지자 매니저가 나와 "어젯밤도 샜는데, 피곤하시지 않냐"고 물었다. 개인전을 위해 아직 못다한 그림을 그리는 중이라고 했다. 김 화백은 "생각이 젊은 사람과 이야기하니 즐겁다"며 "새로운 생각을 하면 늙지않는다"며 말을 이었다. 노란 넥타이, 조끼까지 갖춘 검은 양복을 입은 그는 화가보다 지식인같다. "옛날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손사래를 쳤지만, 100세 노인의 인생 역정이 궁금했다.
열여섯살, 어머니가 사준 물감과 화구를 들고 그림을 그렸고, 열여덟살인 1933년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석고상 데생수업은 지루했다. 2년후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에 다시 입소했다. 피카소 등과 어울려 전위 미술을 하다 귀국한 미술계 총아 후치타 쓰쿠하루가 선생이라는 이유였다. 거기서 김환기를 만났고, 이중섭 유영국등과 함께 새로운 미술세계를 접했다. 1948년 월남해 한국 추상미술의 정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월남 전에는 북조선문화예술총동맹 산하 미술동맹 서기장을, 후에는 한국문화연구소 선전국장과 종군화가단 부단장 등을 지냈다. 서울대 강사, 서울예고 설립 초기 미술과장으로도 일했다. 인생 변화는 1965년 한국미술협회 3대 이사장일때 왔다. 당시 한국 최초 국제전 심사위원이자 상파울루 비엔날레 커미셔너로 김창열, 정청섭, 박서보 작품을 들고 나가 한국의 모노크롬을 세계에 알렸다. 이후 귀국하지 않고 미국행을 택했다. "서구 모더니즘 미술의 실체를 본바닥에서 체험하고 싶었다" 뉴욕을 거쳐 사라토가에 정착했다. 한국인은 커녕, 미국인도 많지않은 미국의 동서부 시골에 틀어박혀 외로움과 고독감에 직면했다. 그렇게 대자연을 그리면서 선과 선의 엇갈림으로 표상되는 추상화 작업을 50여년간 펼쳐왔다. 고독함은 그리움이었다. "잠시도 한국인이 라는 생각 떠난 적 없었다. 그리움 이상으로, 내게 정신적인 문제의 초점은 동양적 사고에 와 있다"는 걸 직감했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후 "한국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싶었다."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이 나섰다. 지난 3월 평창동 주택 겸 작업실을 김화백에게 마련해줬다. 이날 인터뷰중에도 들라클르와, 세잔, 피카소, 앤디워홀, 김정희의 그림세계를 넘나들었다. 또 가장 좋아한다는 블란서 시인 폴 발레리와 아폴리네르의 시를 또박 또박 외우기도 했다. 특히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를 암송한 그는 이 시 때문에 파리를 가고 싶어했는데, 80세에 꿈을 이뤘다고 했다. 1996년 파리에 있는 가나화랑 레지던시 '씨테'에 1년간 머물며 작업했다. "미술이야기, 작품이야기만 하고 싶다니까." 하루에 작업량은 얼마나 될까.
피카소를 불러왔다. "피카소는 밤에 그린다고 하더라. 영감이 떠올랐다고. 나도 젊어서는 피카소처럼 밤에 그렸어. 낮에는 잘 수 밖에 없었지." 김 화백은 "그런데 그거 다 옛날 이야기야. 지금은 '무의'하지 않는 노자 철학에 흥미를 느껴. 뒤샹은 그림은 안그리고 채스만 뒀다고 해. 그게 그림을 하는 것이야. 삶을 편하게 하는게 일을 안하는 것이 아니거든. '무의의 철학' 난 뒤샹의 사고에 공감하는 것이 있어" 다시 노자 이야기로 갔다. "나는 뒤샹과 달리 노자의 '도가도비상도 (道可道非常道)'에 감동을 받아. 현재의 미술이 어떤 양식에 빠져있거든. '말할 수 있는 도(道)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라'는, 도(진리)는 말로써 한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에 관심이 있어." "나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환경에 살고 있다"면서 그는 "망치로 두드리는 과정, 즉 극한 상황을 반영할 줄 알아야 새로운 무엇이 나온다. 그림도 그렇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세계에서 화가로 가장 유명한 피카소도 93세에 생을 다했다. 백푸더퓨처 영화처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기억력은 물론 자신의 작품을 하는 이유를 논리적인 사고로 풀어낸다. 일반적인 우리나라 할아버지 모습이 아니다. 놀라움과 신기함이 교차해 건강비결을 물었다. "부정 의식을 오래 가지고 있지 않는 거지." "부정 의식을 오래 두지 말고 긍정으로 바꿔야해. 부정적인 생각을 오래하면 병이 된다고." "건강에 대해서는 묻지 마라. 작품이야기를 하자."
예민하고 날카롭게 등장하는 선들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형태들, 빠른 붓자국이 반복된다. 그는 "덧칠한 선이 아니라 순결하게 내려 긋는 선"이라고 했다. 물감의 색면이 만들어낸 평면성은 입체적으로 보인다.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선과 선사이로 인물들이 보이기도 한다. 최근작 '공간 반응'이 눈에 들어왔다. 양쪽에 직각으로 내려진 빨간 선이 화면을 강렬하게 분할시키고, 날카로운 선들은 검은 화면을 리듬감 있게 연출하고 있다. "이 그림?.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하는 거야." 작품 '공간 반응'은 "북한의 상태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 디아스포라(이산 유대인)로 살아온 또 분단 국가에 살고 있는 현실감이 다가왔다. "나는 평양사람이야. 북한이 다 굶어죽지않고 그런것하고 있어서 놀라움이 있지." 그는 북한이 수소폭탄을 만들고 로켓을 쏘는 것을 보며 이 작품을 그렸다고 했다. "싸움나면 다 죽는다. 한미연합군사훈련도 평화유지를 하려고 하는거지. 북한을 칠수도 없어. 북한이 좋다고는 할수 없지만, 생명에 위협을 주는 일을 누구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린거야." 16세부터 그리기 시작한 그림. 횟수로 84년간 화가로 살아오고 있다. '그림이 무엇이냐'고 묻자 "허허~내 질문이 바로 그 질문"이라고 했다. "아직도 모르겠다"는 것.
그는 '살아있는자의 위엄'을 보였다. "나는 사는 시간, 현실하고 관계있어.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그걸 그리고 있지." 그러면서 "예술은 인간을 진화시킨다"고 했다. "인간의 정신적인 작용이 진화로 만들고 있다"는 김 화백은 "예술이 학문과 더불어 인간을 진화시키는 건 하나의 '팩트'"라고 했다. '진화'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물건을 여기로 옮긴다는게 아니야. 그건 진화하고는 직접 관계는 없어. 무역업자가 여기 물건을 저기로 옮기는 건 진화하고는 관계가 없지. '방법에 대한 연구', 그게 진화와 관계있다고. 학문과 과학이 진화했지. 연구하면 그 다음 학설을 만들고 박사가 되고 그게 진화화는거야." 하지만 "예술은 진화하는게 아니야. 변화하는거지. 그리스의 작품이 르네상스보다 낡은건가?. 낡은게 아니라 변화한거잖아," 2년전인 99세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며 “순간을 뜨뜻미지근하게 보내면 안 되고 적극적으로 뜨겁게 살아가야 한다”는 그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그때는 '나이많은 사람이 늘 하는 소리거니…'했다. '동시대, 오늘을 살고 있는' 김 화백은 뜨겁게 살아왔다. 오는 25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백세청풍(百世淸風): 바람이 일어나다' 개인전을 연다. 전시 타이틀은 '항상 새로운 것을 일으킨다'는 의미로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 첫 구절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에서 따왔다. 1947년 죽음을 각오하고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끝없이 되뇌였던 시 구절이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김 화백의 구작과 신작 50여점을 전시한다. "바다가 세로로 보인다고~. 또 산을 그리다보면 뚱딴지가 되기도 하지. 우리 시대는 무한히 많은 메타포에 살고 있어. 뭐가 보이네, 안보이네, 내 그림을 유치하게 보면 안돼. 더 이상 손댈수 없어 미완성채로 두려고 해. 미완성이 완성이야." 전시는 25~5월 1일까지. 02-720-1020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