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조업' 중국어선과 전쟁]①4~6월 하루 300여 척…강경대응 시급
지난 1일 오후 7시, 인천시 옹진군 소청도 남서방 해역에서 우리 해양경찰이 불법으로 조업하는 중국 어선을 향해 M60 기관총 600여 발을 쏟아부었다. 중국 어선을 나포하는 도중 다른 중국 어선 30여 척이 몰려들어 위협을 가하자 기관총을 꺼내 든 것이다. 해경이 불법조업 중국어선 단속현장에서 소총 등 개인화기를 사용한 적인 있지만, 공용화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공용화기 사용은 정부가 불법 조업 중국어선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힌 지 21일 만이다. 그러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은 여전하다. 다음 날 서해 북방한계선 인근 해상에는 중국어선 100여 척이 나타났을 정도다. 이처럼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의 중국 어선 불법조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전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중국과의 외교와 국방, 남북 관계, 환경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쉽지 않다. 중국과 마주 보고 있는 인천의 경우 불법 조업 문제는 어민들의 생계는 물론, 안전과 안보의 문제까지 확장하고 있다. 중국 어선은 그동안 우리 어선들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경 고속정까지 침몰시키기도 했다. 중국어선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해경이 순직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자원고갈이나 어구 파괴 등 중국어선 불법조업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지원근거가 없어 제대로 된 피해대책이 없을 뿐 아니라 가해자가 외국 선박이라는 이유로 효과적인 제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불법조업 피해 현황과 피해지원을 위한 입법적 대안을 고민하고 서해평화협력지대 조성 등 보다 근본적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쇠파이프·손도끼까지…갈수록 흉포화 “마음 같아서는 외국처럼 폭파해버리고 싶죠.”
불법조업을 일삼는 중국 어선들이 갈수록 흉포해지고 있다. 우리 해경이 배에 쉽게 올라타지 못하도록 어선 양옆에 길이 1~2m의 쇠창살과 철망을 두르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 쇠파이프나 손도끼, 칼 등도 챙긴다. 수십 척이 떼를 지어 우리 측 경비함과 충돌도 불사한다. 이 때문에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지난달 7일에는 서해에서 단속하던 인천 해양경비안전본부 소속 고속단정이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의 공격을 받아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해경 고속단정이 뒤집히면서 해상특수기동대장 A(50) 경위가 바다에 빠졌으나 다행히 다른 고속단정이 구조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중국 선원에게 목숨을 잃은 해경 대원도 둘이나 된다. 박경조 경위와 이청호 경사다. 박 경위는 2008년 9월 15일 전남 신안군 소흑산도 서쪽 73㎞ 해상에서 불법 조업 중인 중국어선을 검문하다 중국 선원이 내리친 삽에 머리를 맞아 숨졌다. 이청호 경사는 2011년 12월 12일 인천시 옹진군 소청도 남서쪽 87㎞ 해상에서 불법으로 조업하던 중국어선 조타실에 진입했다가 중국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순직했다. 해경의 한 관계자는 “불법 조업하는 중국 어선에 대한 대응 수위는 높였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며 “단순히 대응 수위를 높이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외교적, 제도적인 대안이 우선”이라고 했다. ◇서울 면적의 28배…인력·장비 태부족 우리 정부의 지속적인 단속에서도 중국어선들의 불법 조업은 해마다 증가세다.
4∼6월 봄철 성어기의 불법조업 중국어선의 증가세는 더욱 가파르다. 해양수산부가 지난 6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3∼2015년 4∼6월 서해5도 해상에 출몰한 중국어선은 2013년 하루 평균 173척, 2014년 212척, 지난해 329척으로 2년 만에 2배가량 급증했다. 그러나 경비함과 단속 인원은 부족한 실정이다. 인천 해경의 경우 대형함정 3척, 중형급 6척을 보유하고 있다. 대형함정에는 50여 명이 탑승, 7박 8일을 바다에서 보내야 한다. 단속에 나서는 고속단정은 대형에 두 척, 중형에는 1~2척이 붙는다. 고속단정에는 9명 정도가 탑승한다. 이들은 평소 3교대로 일하다가 성어기나 특별경계 기간에는 2교대로 근무한다. 이들이 책임지는 해역은 1만7000여㎢로 서울 면적(605.3㎢)의 28배가 넘는다. 해경의 한 관계자는 “교대 이후에도 하는 일이 많아 집에는 거의 못 들어갈 정도”라며 “함정과 장비, 인원 보강 등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해경의 중국 불법 어선 단속에 대한 대응이 강화됐다. 정부는 ‘고속단정 침몰’ 이후 함포 등 공용화기 사용도 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바꿨다. 이후 지난 1일 불법조업 중국어선을 단속하던 중 처음으로 공용화기를 사용했다. 중부해양경비안전본부 기동전단은 이날 인천시 옹진군 소청도 남서방 해역에서 중국어선 2척을 나포하는 과정에서 M60 기관총 600여 발을 발사했다. 해경은 앞으로도 불법으로 저항하는 중국어선에는 공용화기 사용 등 강력히 대응할 방침이다. ◇목소리 높아지는 ‘해경 부활론’ 최근 우리 고속단정이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의 공격을 받아 침몰하는 사건 발생 이후 ‘해양경찰청 부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은 최근 해양경찰청의 부활을 주장했다. 그는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 해양주권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을 지킬 독립된 해양경찰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의 대응체계는 한계에 봉착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백지상태에서 해양경찰청의 부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해양경찰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로 흡수 통합되면서 수사권 약화 등으로 위상과 역량이 예전 같지 않다는 주장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 이춘재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조정관은 해경 해체 이후 중국 선원들이 우리 해경을 경찰 신분이 아닌 ‘경비대원’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해경 해체와 해경본부 이전 탓에 중국어선 퇴치 시 가까운 거리에서 진두지휘할 수 있는 의사결정 체계가 깨진 것도 불법조업 중국어선이 활개 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김송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인천 사무처장은 “중국어선이 우리를 볼 때 해양 경찰이 없는 경비대 수준으로 대응해 함포를 아무리 쏘더라도 우습게 볼 수밖에 없다. 인천에 있던 해경본부를 세종시로 이전해서 현장 대응능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반면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해경 부활’을 반대했다. “정부기관을 부침개 부치듯 이리 엎고 저리 엎고 하는 것은 오히려 조직의 안정을 해치는 것이므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해경 부활론에 앞서 지휘부의 현장 대응 능력에 대해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남춘 의원은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해경 간부들은 여전히 함정 근무, 파출소 근무 등 현장 근무 경력이 부족해 현장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며 “해경 지휘부의 현장 대응 능력에 대해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경무관 이상 지휘부 14명 중 함정근무 경력이 없거나 1년 미만인 자가 7명(50%)이었다. 총경급 중간간부 54명 중 함정근무 경험이 없거나 1년 미만인 자는 10명(18.5%), 파출소(안전센터) 근무 경력이 없거나 1년 미만인 자는 52명으로 96.3%에 달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