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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지경과 무아지경…'시인의 울음'

등록 2016-11-11 10:34:12   최종수정 2016-12-28 17: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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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한시(漢詩)는 중국의 옛 시다. 언어가 다른 현대 한국인이 한시를 소리 내어 읽기도 어렵거니와, 설사 읽는다 해도 그 맛과 멋을 알기엔 어려운 장르일 수밖에 없다. 우리말로 번역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이제껏 '한시'는 시어가 주는 감각적인 표현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다룬 전고(典故)와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 책은 중국의 옛 시를 소리 내어 읽게 만든다. '시인의 울음'을 쓴 안희진은 중국의 옛 시를 우리말로 맛깔나게 녹여냈다. 현대시만큼이나 새롭고 감각적이다.

 청나라 말기의 학자 왕국유는, "시에는 유아지경(有我之境)이 있고 무아지경(無我之境)이 있다"고 했다. 이 두 용어를 곧바로 번역하면 '내가 있는 정경'과 '내가 없는 정경'이다. 즉, '유아지경'은 시에 시인의 감정이 배어 있는 정경이고, '무아지경'은 시인의 감정이 안 보이는 정경이다.

 왕국유의 이 말을 기준으로 중국의 시를 살펴보면, 중국의 옛 시는 크게 유아지경의 시에서 무아지경의 시로 유행이 바뀌었다. 물론 유아지경의 시와 무아지경의 시를 동시에 구사한 소식과 같은 시인도 있지만 대체로 중국의 옛 시는 유아지경에서 무아지경으로 넘어왔다.  

 "눈물진 채 물어도 꽃은 말 없고, 그네 위로 날리네, 지는 저 꽃잎"이라고 읊은 구양수의 시 '접련화'는 왕국유의 기준으로 보면 유아지경의 시다. 시어 속에 눈물을 흘리며 꽃을 바라보는 시인이 고스란히 보인다.

 "잔잔히 이는 물결, 유유히 내리는 새" 금나라 시인 원호문이 읊은 '영정에서 작별하다'의 한 구절이다. 시인은 친구를 두고 떠나는 길이 아쉬워 강가에 말을 매고 함께 앉았다. 한 잔 술을 들고 얘기를 나누며 주변의 경치를 본다. 시인이 바라본 이 경치 속에 시인의 심경이 녹아 있다. 무심하게 시인의 눈에 들어온 정경, 이는 사실 시인이 자신의 심경과 같은 정경을 포착한 것이다. 이것이 무아지경의 시이다. 또 있다. 무아지경의 가장 대표적인 시. 바로 도연명의 '음주'다. "울 밑에서 국화 따다, 우두커니 남산 보네"  

 굴원 이후 대부분의 시들은 인생의 무상함이나 삶의 고단함, 사회적 좌절 등을 그렸고, 이별의 슬픔, 사랑의 갈망, 소외의 시름 등 감정을 표출한 유아지경의 시를 써왔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시가 있었다. 강엄이나 사공도, 원호문의 시 같은 것은 잔잔하기 그지없다. 감정의 물결이 잦아든 것이다. 잦아들어 마치 무미한 것처럼 보인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담백해서 시인에게 감정이 없는 듯하다. 사실 가만히 보면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정경 속에 녹아 버린 것이다. 이는 아마 시인 자신의 내적 조화로움에서 출발하는 시선일 것이다. 이런 노래는 왕국유의 말대로 '무아지경'이라는 시적 경지를 열어 보인다.  

 '시인의 울음'에서는 유아지경의 시를 '1부 시인의 노래'에서 다루고, 무아지경의 시를 '2부 어부의 노래'에서 다룬다. 384쪽, 1만8000원,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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