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이어 '최순실 국정농단'까지…유통가 우울한 연말
유통업계는 이미 한달 전부터 가을세일과 창립기념세일 등이 마무리되면서 외관을 대형 장식으로 단장하는 등 본격적인 '성탄 특수' 준비가 한창이다. 롯데백화점은 이미 지난달 28일부터 서울 소공동 본점을 시작으로 점포 외관과 출입문을 꾸미고, 팝업스토어에서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등 ‘가스파드와 리사’를 활용한 다양한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백화점도 ‘산타’를 주제로 백화점 내·외부를 꾸미고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할 계획이며, 신세계백화점은 중구 소공로 본점 앞에 20m짜리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하며 크리스마스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나는 시즌 한정음료와 내년도 다이어리 등을 출시하며 다가올 연말 시즌을 준비하는 식음료업계 및 크리스마스트리, 미니어처 장식물, 워터볼 등 크리스마스 소품 기획전을 준비하는 생활용품 업계 등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경기침체와 함께 국내 각종 리스크요인이 겹치면서 유통가 연말 특수에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특히 유통 대기업의 경우 그룹 오너들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크고 작게 연루되거나 피해를 본 사실이 드러나면서 또다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은 당장 ‘발등의 불’을 끄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기 때문에 연말인사나 내년도 경영 계획에 집중할 여력이 없다. 특히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손경식 CJ 회장 등은 이미 검찰 수사를 거쳐 향후 특검을 앞두고 있어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롯데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매킨지에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 롯데정책본부에 대해 조직 개편, 또 롯데쇼핑은 미국의 로펌 ‘아널드 앤드 포터’에, 롯데케미칼은 ‘김앤장’에 각각 조직 개편안을 의뢰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당시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연출될 것이란 점을 변수에 두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른바 ‘전시엔 장수를 교체하지 않는 법’이라는 불문율 아닌 불문율이 더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롯데는 그룹비리에 대한 대대적 수사가 마무리되고 재판에 들어가자마자 또 ‘최순실 사태’에 연루되면서 사실상 올 한해를 검찰수사와 함께 보낸 셈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아무래도 지금 상황이 어렵다보니 내년도 사업계획과 인사방향 모두 불투명하다”며 “인사는 아직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고, 총수의 결정이 있어야 하는 부분인데 국정조사도 출석해야 되고...어려운 시기를 만났다”고 전했다. 이는 CJ그룹도 크게 다르지 않다. CJ그룹은 지난 8월 이재현 회장의 사면·복권 이후 재도약 의지를 다졌지만 불과 석 달도 채 안 돼 또다시 터진 대형 악재에 초긴장하고 있다. CJ그룹이 1조4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K-컬처밸리’ 사업에 대한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데다 청와대에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을 사임하라고 압박한 내용이 공개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게다가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지난 4월 박 대통령을 독대한 자리에서 당시 수감 중이던 이재현 회장의 사면을 기대하고 재단출연금을 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특검의 고강도 수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CJ그룹 관계자는 “내년도 사업계획은 일정에 따라 진행 중인데, 큰 규모의 투자 같은 경우는 상황을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신세계그룹도 직접적으로 ‘최순실 게이트’와 연루된 것은 없지만 일각에선 근거가 부족한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이에 대한 대응으로 분주하다. 현대백화점그룹도 사태에서 벗어나 있긴 하지만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숙원사업인 면세점 사업권 도전과 관련해 여러 변수가 생기면서 답답해하고 있다.
실제로 백화점 3사의 경우 국가 차원의 대규모 세일축제와 창립 사은 행사, 점포별 가을세일 등으로 전통적 비수기를 극복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예기치 않은 사태로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고 있는 실정이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10월 전체 매출 신장률은 전년 대비 4%대로 부진했으며, 올 들어 지난해에 비해 통상적으로 7~8% 신장률을 보이던 매출 신장률도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주말이면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대규모 집회로 해외 브랜드 시즌오프 행사 및 연말 맞이 마지막 세일에 돌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식음료 및 외식업계 사정은 더 좋지 않다. 9월말부터 시행된 ‘김영란법’으로 고기 집과 한정식집, 횟집 등의 매출이 20~30% 줄어들었다. 특히 관공서 근처에 자리 잡고 있던 한정식집 등의 경우 업종을 바꾸거나 폐업을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으며, 고객 수가 줄어 영업을 계속하기 힘들다는 주인들의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피자·치킨·제과점 등 인기 프랜차이즈 업체와 패밀리레스토랑, 호프집도 이달 들어 매출이 10~20% 감소했다. 패션·뷰티·생활용품 기업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국민의 모든 관심이 '대통령·최순실·촛불집회' 등 정치 이슈에 쏠려 광고나 이벤트 등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 뷰티 업체는 지난달 31일 할로윈 데이를 전후해 대규모 분장 축제를 준비했지만 행사를 취소했으며, 또 다른 아웃도어 업체는 신제품 홍보 전략을 세웠다가 전면 백지화했다. 주말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이벤트성 행사를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다고 판단해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연말이 되면 크리스마스에 송년회 등으로 경기가 풀리기 마련인데 최근에는 소비심리 위축에 경기불황, 설상가상으로 촛불집회 등으로 걱정”이라며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비상적인 시국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주말마다 이어지는 촛불집회 등으로 연말 분위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며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크리스마스, 연말 분위기도 실종돼 소비심리에도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