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공화국①]'대통령도 맞았다'…씁쓸한 주사 열풍, 강남 피부과 직접 가보니
최근 청와대가 지난 2년간 각종 영양주사제를 무려 300개 넘게 산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탓입니다. 연일 영양주사제와 관련된 보도가 쏟아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영양주사를 신봉했다"는 이야기도 세인의 입방에 오르내릴 정도입니다. 심지어 '박 대통령이 먼저 태반주사 등 영양주사제를 놔달라 했다'는 대통령 전 주치의의 진술까지 나왔으니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니 인터넷은 오죽하겠습니까. 뜨겁다 못해 따가울 정도입니다. 사실인지 우스갯소리인지는 모르지만 '박 대통령이 오히려 젊어졌다'는 말도 들릴 정도입니다.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이 젊어졌다는 얘기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애매합니다. 선뜻 이해가 안 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왜 국내 최고 권위의 의료인이라 할 수 있는 주치의를 놔두고 비선 치료를 받았는지, 효과가 명확히 입증되지도 않은 주사제를 대체 누구의 지시로 청와대까지 반입했는지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갑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진시황제도 '불로장생(不老長生)'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결국 BC 210년, 오십의 나이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제아무리 효과가 뛰어난 영양주사제라도 흐르는 시간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누구나 똑같이 겪습니다. 우리 나이로 65세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박 대통령의 매끈하고 탱탱한 피부는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필자의 혼이 비정상인가요. 눈이 비정상인가요. 국민이 원하고 기다리는 대통령은 20대도 울고 갈 탱탱한 피부를 자랑하는 '특별한' 분이 아닙니다. 베일이 쌓인 신비주의는 더더욱 아닙니다. 헛헛한 민초들 깊게 팬 주름살을 조금이라도 펴주는, '우주'가 아닌 '세상'을 품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우리네 고단한 삶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그런 대통령을 원합니다. 피부 탄력도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국정 파탄의 모든 책임을 현직 대통령 탓으로 돌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래도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옛말은 사실인가 봅니다. 이번 청와대의 영양 주사제 구입 사태에 약삭빠른 일부 병원이 쾌재를 부르고 있습니다. 절호의 기회를 놓칠세라 장사치의 셈법에만 몰두합니다. 의사 면허만 있다면 진료과목 따위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내과, 피부과, 성형외과 등 가릴 것 없이 앞다퉈 '대통령이 맞은 주사'라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국가적 악재'일 수도 있는 일을 돈벌이 기회로 삼는 병원이 적지 않아 씁쓸한 뒷맛을 남깁니다. 인터넷 검색창을 다시 띄웠습니다. '영양 주사제'를 검색하자 "피부를 투명하게 해준다"는 백옥주사부터 "기미를 제거하고 회춘시켜준다"는 태반주사까지 온갖 영양주사제를 홍보하는 병원 광고 문구들이 쏟아집니다. 그만큼 영양주사제를 맞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죠. 이쯤에서 궁금증이 일 법합니다. 그래서 각종 영양주사제를 놔준다는 서울 강남의 한 피부과를 직접 다녀왔습니다. 주사 공화국의 실태, 암담할 뿐입니다. ◇준비된 상담실장 설명 들으니 '만병통치' "백옥주사가 얼마나 좋으면 대통령도 맞았겠어요. 피부도 좋아지고, 노화 방지에도 좋고. 피로 회복에도 백옥주사만 한 것이 없어요." 지난 4일 오후 2시 서울 강남의 한 피부과. 피로를 호소하며 영양주사에 관심을 보인 기자에게 실 핀을 촘촘히 꽂아 고정한 올림머리의 안내 직원이 "잠시 대기해달라"며 작은 수첩 크기의 초진 진료서를 건넸다. 안내 직원의 친절한 설명에 따라 별다른 고민 없이 진료서 빈칸을 채웠다. 개인 신상정보를 비롯해 알레르기 여부, 복용 약물 등 간단한 사항들을 체크했다. 물론 기자인 사실을 감추고 대기업 사원 행세를 했다. 예약한 시간이 이미 지났지만, 진료실에서 호출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쭈뼛쭈뼛 다시 안내데스크에서 "언제 진료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잠시 고개를 돌린 간호사가 "의사 선생님 진료받기 전에 상담실장님과 상담을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불투명 유리 너머 상담실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대화하는 모습이 힐끗 보였다. 환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것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진료 대기실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다 지쳐 상담실 주위를 한참이나 서성거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불투명 유리문이 열리자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말끔한 정장 차림을 한 여성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자 이름을 호출했다. 자신을 상담실장이라고 소개한 그는 불투명한 유리문을 붙잡고 고개만 까딱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이곳 상담실장들의 외모가 유독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피부가 탱탱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1평(3.3㎡) 남짓한 상담실에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향긋한 커피 향도 진동했다. 밖에서 보면 영락없는 커피숍이지만, 이곳은 분명 피부과 상담실이었다. 상담실 주위를 둘러보다 한쪽 벽에 걸린 피부 시술 전후 비교 사진과 알 수 없는 영문이 빼곡하게 적힌 인증서들에 시선이 멈췄다. 맞은편 벽면에는 환율을 실시간 반영하는 환율거래표가 나부꼈다. 상담실장은 행색을 살피는 듯 잠시 기자를 위아래로 훑었다. 기자가 자리에 앉자마자 각종 영양주사제 이름과 효능을 빼곡히 모아놓은 안내 책자를 건넨 뒤 조목조목, 거침없이 설명을 쏟아냈다. 질문을 하나 하면 이미 준비를 마쳐놓은 듯 막힘없이 척척 답변을 내놓았다. "만성피로나 노화 방지에는 백옥주사가 가장 효과가 뛰어난데, 태반(주사)이랑 각종 비타민과 마그네슘까지 섞은 칵테일 주사를 맞으면 피로회복뿐만 아니라 피부도 좋아지고, 탄력도 생겨요." ◇효과 보려면 10회는 맞아야… 상담실장은 또 정기적으로 맞아야 효과가 크다며 투약 횟수를 늘릴 것을 추천했다. "한두 번 맞으면 효과가 크지 않아요. 꾸준히 맞아야 눈에 띄는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죠. 저희 병원에는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으러 오는 회사원들이 꽤 많답니다." 기자가 잠시 머뭇거리자 '총 10회 정기권을 끊고, 현금으로 결제하면 20% 저렴하다'는 친절한 설명이 뒤따랐다. 또 근무하는 회사 내 게시판에 관련 글을 게재하면 원하는 주사제를 1회 무료로 놓아준다고도 했다. 안내 책자에 찍힌 각종 영양주사제들의 가격은 7만~20만원 선. 이는 보통 수액주사의 두세 배 수준으로 주사제를 종류, 투약 횟수 등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패키지 정액권의 경우 30만~70만 원인데 여러 주사제를 혼합하거나 투약횟수가 많으면 가격이 점점 올라간다. 그의 설명은 계속됐다. 검사를 통해 자신에게 꼭 필요한 영양주사 처방도 가능하다고 했다. "피 검사나 다른 검사를 하고 나서 자신에게 꼭 맞는 맞춤형 영양주사 처방도 가능해요. 오죽 좋으면 대통령도 수시로 맞았겠어요? 저도 가끔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칵테일(주사) 해서 맞기도합니다." 상담실장은 20여 분 가까이 진행된 상담이 끝날 때까지 '대통령도 맞았다'는 말을 수시로 내뱉었다. 기자가 상담실장에게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다'고 요구했으나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정액권이나 맞춤형 주사 처방을 받을 것도 아닌데 굳이 의사 진료까지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되물었다. 기자가 재차 요구하자 마지못해 진료실로 안내했다. 의사에게 "오남용이나 부작용이 있지 않으냐"고 묻자 "특별히 약물을 복용하거나 지병이 없으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거듭 부작용에 관해 언급하자 의사는 잠시 침묵하더니 "문제가 있으면 대통령도 맞았겠느냐. 부작용 없고, 효과도 좋다"고 자신했다. 진료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의사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진료실을 나오자 상담실장이 다시 한번 "효과가 좋으니 언제든지 오라"고 당부했다. 병원 문을 나설 때까지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피부과에서 영양주사제는 이미 '만병통치약'이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