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 이끈 시민들…6주 간의 '촛불 대장정'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9일 서울 광화문 광장은 축제의 장이 됐다. 시민들은 “우리가 해냈다”고 외치며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축하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심판대에 올린 건 정치권이 아닌 국민이었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은 매주 전국 각지에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 시민들이 “박근혜는 하야하라”고 외친지 6주 만에 국회는 마침내 민심을 받들었다. ◇‘선언’으로 시작된 ‘촛불 대장정’ 촛불 민심은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으로 시작됐다.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재학 중이던 이화여대 총학생회의 10월26일 시국선언에 이어 박 대통령의 모교 서강대에서도 이날 오후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후 한양대, 건국대, 경희대 등 전국 대학 총학생회가 잇따라 시국선언을 선포했고, 지난달 25일부턴 동맹휴업까지 전개했다. 대학가에 이어 노동계, 종교계, 여성계, 문화계에까지 퍼졌다. 교복 입은 청소년들도 거리로 나와 한목소리로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다. 시국선언은 전국단위 촛불집회로 확산됐다. 10월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1차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탄핵 가결 전까지 매주 토요일 전국 각지에서 6차례 촛불집회가 열렸다. 주최 측 추산 기준으로 참가인원은 1차 2만 명에서 2차 20만 명→3차 100만 명→4차 95만 명(서울 60만 명)→5차 190만 명(서울 150만 명)→6차 232만 명(서울 170만 명)으로 급속도로 늘어났다. 역대 가장 많은 시민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1987년 ‘6월 항쟁’(140만~180만 명 추산) 기록을 훌쩍 넘은 수치다. 집회 장소도 청와대 인근으로 점차 확장됐다. 1차 청계광장과 2차 광화문 광장에 이어 11월12일 3차 촛불집회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청와대에서 800m 떨어진 율곡로까지 행진이 허용됐다. 이어 일주일 뒤 열린 4차 촛불집회에는 청와대와 직선거리 400m 떨어진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까지 집회 및 행진이 허용됐다. 5차 집회에는 200m 떨어진 청운동 주민센터 앞까지 집회 및 행진이 가능해졌으며, 6차 집회에는 청와대 ‘코앞’인 100m 거리 효자치안센터 앞에까지 시민들이 모여 촛불을 밝힐 수 있게 됐다.
사상 최초 청와대 100m 앞 지점까지 벌이는 대규모 행진에도 불법시위에 따른 연행자는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부상자 역시 없었다. 일부 시민과 경찰관이 탈진 증상 등으로 병원에 이송된 정도였다. 시민들은 차벽 앞에서도 경찰과의 충돌을 자제하며 평화롭게 ‘박근혜는 하야하라’ ‘지금 당장 퇴진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아리랑목동을 개사한 ‘하야가’와 ‘이게 나라냐’ 등을 부르며 흥겨워하기도 했다. 일부 참가자가 차벽 위에 오르거나 경찰을 밀치는 등 돌발행동을 할 때면 ‘비폭력’을 외치며 진정시켰다. 대오 선두에 선 시민들은 대치 중인 의경들에게 ‘고생한다’며 격려하고 손뼉을 쳐주기도 했다. 시민들은 비폭력 저항의 상징으로 차벽과 경찰차 등에 꽃모양 스티커를 붙여 ‘꽃벽’을 만들었다. 집회가 끝나갈 무렵이면 일부 시민들은 “나중에 의경들이 다 떼야 한다”며 스티커를 직접 제거하기도 했다. 각종 풍자와 패러디도 만발했다. 분노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유머로 승화시킴으로 ‘웃으면서 분노하는 법’을 터득한 셈이다. 광장에는 ‘순시릴 땐 닭근닭근’ ‘닭잡아야 새벽온다’ ‘박근혜 그만두유(豆乳)’ 등 박 대통령을 풍자하는 팻말이 등장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발언을 풍자하며 발광다이오드(LED) 촛불을 ‘꺼지지 않는 촛불’이라고 판매하는 상인도 있었다. 생계문제로 촛불집회에 참여하지 못하는 시민들은 일상에서 저항했다. 일부 지역에선 ‘집 앞에 박근혜 퇴진 현수막 걸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 사진 바꾸기’ ‘퇴진 시 00하겠다 등 공약 만들기’ 등을 진행했다. 촛불집회 주최 측인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도 주말 촛불집회 본집회에서 ‘1분 소등 및 경적 울리기’ 등으로 광장에 나오지 못한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신촌 일대 노점상 모임인 ‘서부지역노점상연합’은 탄핵안 가결 다음 날인 10일 오후 홍대·신촌·이대 지역에서 시민들에게 떡볶이를 무료로 나눠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상인들은 “매 주말 촛불집회에 가는 시민들을 보면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생업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며 탄핵 가결을 환영하는 마음을 시민들과 함께 나눴다. ◇시민들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퇴진행동에 따르면 지난 10일 열린 주말 7차 촛불집회 참여 인원은 주최 측 추산으로 서울 80만 명, 지방 24만 명 등 총 104만 명으로 나타났다. 6차 촛불집회 때보다 절반 이하로 줄어든 규모로, 탄핵안 가결과 함께 쌀쌀한 날씨 탓에 시민들의 참여율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퇴진행동은 “박 대통령 즉각 퇴진 때까지 촛불집회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방침이지만 시민들이 100만 명 안팎씩 참여하는 종전의 대규모 촛불집회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탄핵소추안 가결과 추위, 연말 분위기 등이 겹치는 탓이다. 서울 중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박모(32)씨는 “일 년 중 토요일 저녁을 집에서 보내는 날이 손에 꼽힐 정도로 술자리를 자주 갖는 편이지만 근 두 달간은 웬만하면 모임을 잡지 않았다”며 “주변에서도 ‘토요일=촛불집회’ 공식이 생겨, 되도록 그 시간을 피해 약속을 잡았다”고 전했다. 박씨는 “촛불집회도 사실상 끝나가고 이제 연말인 만큼 여러 송년회 약속을 잡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4·5·6차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김모(26·여)씨는 “거의 한 달간 토요일엔 광화문에 있었다. 원래 소개팅을 할 계획도 있었지만 취소했다”며 “집회 때마다 아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탄핵이 안 되면 송년회를 광화문에서 해야 하나 생각도 들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탄핵안도 가결됐으니 이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며 “당장 오는 토요일과 다음 주말 소개팅과 미팅, 송년회 등을 할 예정”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상인들도 달라진 주말 풍경을 체감하고 있다. 서울 종로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촛불집회가 열린 날엔 손님들 손에 피켓이 들려 있었다. 집회 때문인지 밥만 얼른 먹고 가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면서 “지난 토요일엔 거리나 가게에 일반 손님들 비율이 더 높아진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전통주점을 운영하는 상인도 “지난주엔 친구들과 놀러 나온 손님들이 많았다”며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민심에 반하는 일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촛불을 들고 다시 거리로 나갈 준비가 돼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남자친구와 ‘촛불집회 데이트’를 해왔다는 김모(27·여)씨는 “매주 토요일 집회에 나갔지만 이번 주엔 연말 및 휴가 계획을 짤 예정”이라면서도 “탄핵이 됐으니 일단 첫 번째 목적은 이뤘다고 생각하지만 차후 경과를 보고 언제라도 다시 광화문으로 갈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향후 열리는 집회는 종전의 규모를 유지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연말이기도 하고 일단 탄핵까지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다만 “헌재 재판을 둘러싸고 정치판이 요동치고 있는 만큼 민심에 반하는 일이 발생하면 시민들이 의사 표현을 위해 다시 재결집할 소지가 있다”면서 “‘구질서’라고 불리는 사회 문제들에 대한 시민의 분노는 지금도 용암처럼 끓고 있다”고 분석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