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핫이슈]트럼프 반이민 행정명령 일파만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7일(현지시간) 이라크와 시리아, 이란, 수단, 리비아, 소말리아, 예멘 등 7개 이슬람국가 국민의 입국을 90일간 금지하고 비자 발급을 중단하는 반(反) 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모든 난민 유입도 120일간 중단했고, 특히 시리아 난민은 무기한 미국 입국을 금지했다. 행정명령의 내용은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천명해온 반무슬림·대테러 공약의 일환이지만, 행정명령이 실제로 발효된 현재 미국 사회와 정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시위행렬에 합류했고,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한 다수의 정치인들은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규탄하고 나섰다. 전 세계 각국 수장과 관료들도 이번 행정명령에 대한 유감을 밝혔다. 테리사 메이 영국총리는 트럼프의 입국금지 행정명령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앞으로 영국 국적의 국민이 이로 인해 불이익을 받게 되면 미국 정부와 담판할 것이라고 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특히 입국금지 대상이 된 국가들은 이번 행정명령이 자국에 대한 '모욕'이라고 격분했다.이란 외무부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모욕적이며,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선물"이라고 규탄했다. 이란은 또 "미국 정부가 이란 국민에게 부과한 모욕적인 제한을 없애기 전까지 상호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보복정책을 시사했다. 이라크 외무부도 이번 행정명령에 대해 "유감스럽고 불운한 결정에 크게 놀랐다"고 밝혔다. 이라크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대테러 부분에서 미국과 이라크가 전략적으로 협력해 상호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미국 신임 행정부가 잘못된 이 결정을 재고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대한 불만과 갈등은 단연 미국 내에서 가장 거세게 벌어지고 있다. CNN과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미국 언론들은 이번 행정명령이 보수와 진보, 백익과 비백인으로 나눠진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백악관과 의회,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균열과 부조화를 극명히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자유의 여신상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 난민 행정명령이 "후진적이고 역겹다"고 비판했다.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민주) 상원의원과 카말라 해리스(캘리포니아·민주) 상원의원은 트럼프의 반 난민 행정명령은 "무슬림 입국 금지"가 주요 내용이라며 "미국 가치의 배반"이라고 비판했다. 또 트럼프의 행정명령으로 수백명이 미국에 입국하지 못하고 억류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법적 소송도 급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토안보부 관계자를 인용해 행정명령이 발효된지 첫 23시간동안 미국에 도착한 후 입국하지 못하고 억류상태에 있는 상태에 있는 사람, 출발지나 환승지에서 미국행 비행기 탑승을 거부 당한 사람이 375명이라고 보도했다. 이 가운데 미국 영주권자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워싱턴 주 밥 퍼거슨 주 법무장관은 30일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발동하면서 헌법을 위반했다"며 트럼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워싱턴주의 이번 법적 소송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첫 법적 조치다. NBC방송 등에 따르면 퍼거슨 주 법무장관을 포함해 16개 주 법무장관들이 트럼프의 이번 행정명령이 헌법을 위반한다는 내용의 공동서명을 낸 바 있다. 뉴욕 법학대학의 도니 게위르츠먼 교수는 대통령이 해당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특정 종교를 차별하는 것은 미국에서 불법이기 때문에 법적 충돌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정 행동이 합헌적이라고 해서 합법은 아니다"라며 "대통령은 헌법상으로 허용되는 것을 할 수 있지만, 그 같은 행동이 다른 헌법이나 연방 법령, 국제법에 어긋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법적 충돌이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백악관과 법무부간의 충돌도 벌어졌다. 지난 30일 샐리 예이츠 전 법무장관 대행이 입국금지 행정명령에 관한 소송에서 정부와 행정명령을 변호하지 말라고 법무부 소속 법조인들에게 지시한 것이다. 그는 "나의 의무는 법무부의 입장이 정의를 추구하고 모든 사실을 감안해 올바른 것을 대변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라며 "이번 행정명령이 합법적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를 변호하는 것은 (법무부의) 책임에 일치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이츠 전 법무장관 대행의 반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변호 거부 소식이 나온지 3시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신속히 경질했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미국 시민을 지켜야할 법적 의무를 거부해 법무부를 배신했다"며 "오바마 정권이 임명한 그는 국경정책과 불법이민에 대해 나약한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예이츠의 전 법무장관 단명한 반란은 애초부터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트럼프가 지명한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내정자가 임명되는 순간 그의 업무는 종료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NYT와 WSJ는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징적 갈등은 미국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실제로 미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그것에 대한 인식은 별도의 것"이라며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과 이로 인한 혼란은 지난 70년간 이룩해온 미국에 대한 외교안보 인식을 뒤집었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이번 행정명령에 대한 불만이 민주당과 오바마 정권 인사들 가운데서만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공화당 측은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이 공화당 의원들과 아무런 사전 논의를 하지 않았다고 푸념하고 있다.
상원 법사위 위원장 척 그래슬리 상원의원(아이오와·공화)도 "백악관이 우리와 논의를 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내가 개인적으로 이번 행정명령에 대해 들은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상원 공화당 원내총무인 존 코닌 상원의원 역시 이번 행정명령 초안에 대해 상담 요청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없었다"라고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일각에서는 공화당 장악 의회의 반발을 예상한 트럼프 행정부가 의도적으로 의회와 논의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익명을 요청한 한 법사위 소식통은 "백악관이 법사위 일부 위원들만 이번 행정명령에 대한 전문지식을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됐다"고 밝혔다. 반면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옹호하는 세력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화당 소속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이날 성명에서 "미국에 정확히 어떤 사람들이 들어오는지 확인하려고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옳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29일 성명을 통해 "미국은 언제나 자유의 땅"이라며 "이번 행정명령은 무슬림 입국금지가 아닌 우리나라를 테러로부터 안전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상당수의 미국 국민도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로이터통신은 3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 국민 49%가 문제의 행정명령에 대해 '강하게 지지' 또는 '어느정도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41%는 '강하게 반대' 또는 '어느정도 지지'한다고 밝혔고, 10%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31%는 행정명령으로 '더 안전해진 느낌'이라고 답했고, 26%는 '덜 안전해진 느낌'이라고 답했다. 또 민주당 지지자 다수(53%)가 행정명령에 반대했고, 공화당 지지자 다수(51%)는 찬성해 당파적 분열 양상을 뚜렷하게 나타냈다. 조사는 지난 1월 30~31일 이뤄졌다. 이번 조사 결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반 미국 국민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대한 지지도가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백악관은 민주당과 언론이 행정명령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과장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