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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강해서 슬펐다' 지친영웅 '로건'

등록 2017-03-07 09:22:28   최종수정 2017-11-15 15: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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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버린, 영화
【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울버린'은 다쳐야 싸울 수 있다. 그의 무기는 살을 뚫고 나온다. 싸우기 위해서 그는 반드시 자신의 피를 먼저 흘려야 한다. 그래서 그의 주먹은 언제나 피에 젖어 있다. 재생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과 같지 않다. 그도 똑같이 아픔을 느낀다. 다만 남보다 빠르게 회복될 뿐이다. '나의 무기가 곧 나의 고통'인 비극적 영웅은 울버린 말고 없다. '프로페서X'가 자신의 뇌를 활용한다고 해서 고통을 받는 것을, '매그니토'가 그 가공할 힘을 쓰며 괴로워하는 것도 우리는 본 적이 없다.

 울버린은 단 한 번도 스스로 영웅이 되고 싶어 한 적이 없다.'찰스 자비에'(프로페서X)는 엑스맨들을 모으려고 할 때마다 울버린, 그러니까 '로건'을 찾았다. 바에서 시가를 피우며 술을 마시고 있는 그에게 찰스가 말을 붙이면 항상 똑같이 말했다. "꺼져버려(Fuck off)." 로건은 자신의 능력 때문에 아버지를 잃었다. 이후 유능한 군인으로 살았으나 그 능력이 눈에 띄어 이번엔 연인을 먼저 보내야 했다. 로건의 힘은 그를 더 외롭게 했고,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외톨이가 됐다. 로건은 캐나다 시골에서 조용히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강해서, 슬펐다.

 영화 '로건'(감독 제임스 맨골드)의 배경은 2029년. 로건이 1832년생이니까, 그는 200년 가까이 살았다. 그에게 삶은 대부분 고통이었으리라. 그가 영웅으로 불린 시간은 짧았을테고, 그와 같은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은 모두 죽었다. 그는 그가 사랑했던 어떤 것도 지키지 못했고, 원하던 세상도 만들지 못했다. 로건은 이제 도망자 신세다. 이때, 그가 그의 뼈를 대신한 최강 금속 아다만티움 중독 증세로 능력이 퇴화해 늙어가는 건 어쩌면 축복이다. 그도 이제 죽을 수 있다. 이 지긋지긋한 삶을 끝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죽으면 그만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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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버린, 영화
그때 소녀 '로라'가 등장한다. 그는 울버린의 유전자로 만들어져 울버린과 같은 능력을 가졌다. 로라는 살인 기계로 길러졌지만, 버려졌다. 로라와 같은 방식으로 태어난 돌연변이들을 사랑해 불쌍히 여긴 간호사들이 목숨을 걸고 이들을 빼돌렸고, 로라는 가까스로 울버린 앞에 섰다. 로라는 병원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이, 엄마와 다름 없던 간호사들이 죽는 걸 봤다. 그러니까 로라는 로건의 과거를 그대로 밟고 있는 중이다. 극중 로라가 로건의 딸이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무의미하다. 로라의 과거를 안 로건이 그의 보호자가 되는 건 부성애 때문이 아니다. 로라가 곧 로건이라서다.

 그러니까 이건 로건이 로라를 통해 '지독히도 불운한 돌연변이 울버린'을 구원하러 가는 여정이다. 이 여행은 단순히 로라를 돌연변이에 대한 차별이 없다는 캐나다의 '에덴'이라는 곳으로 데려가는 것만 뜻하지 않는다. 로건은 로라를 '다르지 않은 인간'으로 살게 하려 한다. 로건은 로라를 교육한다. 로라가 물건을 훔칠 때, 로라가 음식을 손으로 먹을 때, 그리고 로라가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때다. 로라는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로건은 이에 대해, "그래도 사람을 죽인 건 마찬가지"라며 로라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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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버린, 영화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고,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고, 세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로건은 사람을 죽여왔다. 그 일은 그의 표현대로 악몽이었다. 남들과 다르게 너무 강해서 평범한 사람은 평생 한 번도 하지 않을 살인을 반복했다. 그는 여전히 악몽에 시달린다. 그러니까 200년 동안 이어진 이 고통을 자신과 닮았고, 이미 유사한 경험을 공유 중인 '리틀 울버린' 로라가 겪지 않게 하는 건 로건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 로건이 울버린이라는 이름의 엑스맨이 되게 해 '정당한 살인'을 하게 한 프로페서X가, 로건에게 한 가족과의 따뜻한 저녁 식사를 강권한 건 조용히 숨어서 살려고 했던 로건을 세상으로 기어코 불러낸 죄책감 때문이다.

 로라를 에덴으로 보내기만하면 로건의 임무는 끝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에게는 한 가지 임무가 더 있다. '살인 기계'였던 그의 과거와 완전히 절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기꺼이 원작에 없던 설정을 가져왔다. 바로 울버린의 젊은 시절 모습을 한, 그러나 감정은 전혀 없는 살인기계 'X-24'('로라'는 X-23이며, 감정을 가졌다는 이유로 실패작 취급받는다). 다시 말해, 울버린의 마지막 살인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X-24)이다. 그래야만 그는 진정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 최소한 악몽에서만큼은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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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버린, 영화
영화 '로건'의 비애는 우리가 알던 그 울버린이 예전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쇠락해 가는 것, 더이상 영원한 젊음을 갖지 못하고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가 자신의 삶을 온통 부정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라서다. 그리고 이 비애가 감동으로 전환하는 건 로건이, 울버린이, 그 일을 용기있게 해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로건은 '윌리엄 빌 머니'('용서받지 못한 자')가 되고, '오스카 쉰들러'('쉰들러 리스트')가 돼 진짜 영웅으로 다시 태어난다.

 20세기폭스와 맨골드 감독은 17년 동안 9편의 영화에서 활약한 우리의 울버린을 떠나보내며, 최대한 예의를 갖춰 장사(葬事)지냈다. 울버린이라는 캐릭터를 흥행을 위해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그 캐릭터의 삶을 느끼게 해 결국 관객을 울린다. 이것은 배우 휴 잭맨(48)에 대한 감사 인사이기도 할 것이다. 31살에 울버린이 된 이 근육질 스타는 배우로서 전성기를 엑스맨을 위해 바쳤고, 이제 5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4년 전부터는 피부암 투병 중인 그는 로건처럼 나이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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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버린, 영화
현재 세계 영화계가 '슈퍼 히어로 시대'를 지나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수많은 영웅이 끊임없이 탄생한다. 겨우 캐릭터에 불과할지 모르나 이들은 영화 속에서 나름의 삶을 살고 있다. 그들도 나이 들어갈 것이고, 패배할 것이다. 이때 이 지친 영웅을 우리는 어떻게 보내줘야 하는가. 영화 '로건'이 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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