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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중년도 싫어, 40대의 반란①]"젊게 더 젊게" 달라지는 40대 남성들

등록 2017-04-04 16:50:00   최종수정 2017-04-04 16: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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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중년’의 대명사인 대한민국 40대 남성이 달라졌다. 일부이긴 해도 외모나 차림새만 보면 30대와 헷갈릴 정도로 젊어 보이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외모만 그런 것이 아니다. 활동도 30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인 사람이 많아졌다. 지난 2012년 꽃중년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한 장면.

 (뉴시스DB)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동양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 공자(BC 551~479)는 40대를 일컬어 "불혹(不惑)"이라고 일컬었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흔들림이 없다"는 의미다.

 과연 그럴까.

 요즘 40대 남성을 보면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마구 흔들린다. 페이스북의 연령대 타킷팅 광고에서 30대보다 40대에게 성(性) 관련 광고가 급증하는 것이 그렇게 변화한 세태를 방증한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의 평균 연령은 50세도 안 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자가 50세를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知天命)'으로, 60세를 '무슨 말도 웃어넘길 수 있는' 이순(耳順)으로 일컬으면서 70세를 두고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40대가 그만큼 인생 후반기였다는 사실을 가늠하게 한다.

 그러나 요즘 40대는 인생 후반기가 전혀 아니다. 40~50대를 묶어 여전히 '중년'이라고 해도 요즘 40대 남성은 최소한 10년 전의 40대, 그러니까 현재의 50대가 살던 모습과 아주 다르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꽃중년'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거부한다. '꽃'이 싫은 것이 아니라 '중년'이 싫어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상투적인 표현이나 "지금은 100세 시대이니 중년은 50대부터"라는 새로운 논리까지 동원해 자신들을 '50대 형님'들과 함께 묶으려는 시도에 대해 정면으로 항변한다.

 2017년을 살아가는 40대 남성들의 모습과 그들이 달라지려는 이유 등을 짚어본다.

◇파마하고 화장하고, 배낭여행까지…

 #1. 한 공기업 김모(46) 부장은 올해 초 미용실에서 처음 파마를 했다.

 대학 시절부터 미용실을 다녔기에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것은 그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파마는 그야말로 도전이었다. 보수적인 사내 분위기와 관리자라는 위치 등으로 인해 한 마디로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초등학교 동창회에 갔다 친구들에게 머리숱이 적어져 나이보다 훨씬 들어 보인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김 부장은 마침내 '변신'을 도모했다.

 처음에는 꼬불거리는 머리가 어색해 신경이 많이 쓰였으나 시간이 흐르자 익숙해져서인지, 여러 번 샴푸를 해 파마기가 다소 빠져서인지 헤어 스타일에 점점 만족하게 됐다.

 김 부장은 "머리 손질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데다 주위에서 '파마했네'라고 놀리면서도 '열 살은 젊어졌다' '공유 닮았다' 등 좋게 평가해줘 기분이 좋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그는 지난달 말 파마를 한 번 더했다.

 #2. 서울 모 대학 박모(46) 교수는 지난 겨울 고교 동창생 2명과 15일간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 서유럽 5개국 여행을 떠났다.

 교수·로펌 변호사·중견기업 오너 등 모두 자기 영역에서 성공한 사람들이지만, 럭셔리한 여행이 아니라 대학생처럼 배낭여행을 선택했다.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갈 때는 유레일 패스로 기차를 탔고, 도시 안에서는 지하철이나 우버 택시를 이용했다. 숙소는 럭셔리한 호텔 대신 숙박 공유 사이트 '에어비앤비'를 통해 민박을 구해 묵었다.

 빠듯한 일정이었으나 다들 해외 유학 경험이 있고 영어도 유창해 크게 힘들지 않았다.

 다만 여행을 떠나기 전 다소 걸림돌은 있었다. 주변에서 "다 늙어서 애들처럼 배낭여행이냐" "그냥 5성급 호텔에서 편하게 쉬엄쉬엄 놀러 다녀라" 등 만류와 반대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하고, 몇 해 뒤인 1992년 대학 3학년인 '삼총사'가 함께했던 유럽 배낭여행의 추억을 되살려 보자는 뜻으로 '사서 고생'을 자처하고 뭉친 것이어서 나이나 사회적 지위는 아무런 상관없었다.

 박 교수는 "25년 전 유럽 배낭여행을 할 때는 두꺼운 여행 가이드북과 카메라를 들고 다녔지만, 이번에는 스마트폰 하나로 충분했다"며 "세상이 확 달라져 그때보다 체력적으로는 벅찼으나 여전히 즐거웠다"고 전했다.  

 '중년'의 대명사인 대한민국 40대 남성이 달라졌다. 일부이긴 해도 외모나 차림새만 보면 30대와 헷갈릴 정도로 젊어 보이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외모만 그런 것이 아니다. 활동도 30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인 사람이 많아졌다.

 실제 한 이커머스 업체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0대 남성의 뷰티 관련 상품 구매 비중은 지난 5년 새 두 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구매하는 상품도 과거 스킨·로션 등에서 이제는 BB크림, 에센스는 물론 색조 화장품까지 다양해지고 고급화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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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요즘 40대 남성을 보면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마구 흔들린다. 페이스북의 연령대 타킷팅 광고에서 30대보다 40대에게 성(性) 관련 광고가 급증하는 것이 그렇게 변화한 세태를 방증한다. 지난 2013년 10월14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열린 ‘F/W 비즈니스 캐주얼 제안 패션쇼’에서 본사 팀장들이 캐주얼 착장을 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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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포털사이트 자전거 동호회에도 근래 40대 남성 회원이 최근 급증했다. 이 동호회 회원은 대부분 20~30대 남녀로 200만~300만원 대 영국산 접이식 자전거 '브롬톤'을 주로 탄다. 요즘 한창 방송 중인 LG전자 프리미엄 스마트폰 'G6' CF에서 20대 여성 모델들이 유럽을 여행하면서 타고 나온 그 자전거다.

 몇 해 전만 해도 40대 남성은 주로 MTB(산악자전거)를 많이 탔으나 근래 들어 디자인이 고급스럽고 활용성이 뛰어난 이런 수입 자전거를 타는 40대 남성이 늘어났고 그중 일부는 좀 더 적극적으로 라이딩을 즐기기 위해 동호회까지 참여하고 있디.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인 롯데시네마가 집계한 결과를 보면 연간 40대 남성 관객 수는 지난 2007년 10만74명, 2008년 11만6919명에 불과했으나 2009년 16만2756명, 2010년 18만8608명으로 늘어나더니 2011년 22만5826명으로 급증했다. 이어 2012년 27만8735명, 2013년 32만4121명, 2014년 38만5831명으로 점점 늘어난 뒤 2015년 40만3183명을 기록해 마침내 40만 명을 넘겼다.

 롯데시네마 한 관계자는 "40대 남성은 과거 극장의 주요 타깃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지만, 이제는 이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프로그래밍해야 할 정도로 주요 고객층이 됐다"고 전했다.  

 이처럼 요즘 40대 남성은 잘 꾸미고 잘 논다.

 온라인상은 물론 직접 얼굴을 마주쳐야 하는 오프라인 모임에서도 이를 주도하는 20대 남녀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다. 과거 각종 인터넷 동호회의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한 40대 남성들이 쭈뼛쭈뼛하며 변방을 맴돌다 이내 사라지거나 극히 일부가 밥 사주고 술 사주는 '모임 물주' 역할에 그쳤던 것과 달리 이들은 10년 전 자신들이 거친 30대들이 그랬던 것처럼 모임의 중추로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불과 몇 년 사이에 무슨 혁명 같은 변화가 일어나 지금의 40대 남성들이 불과 몇 해 전 40대로 살았던 앞 세대와 확연히 달라진 것일까.

 이들을 분석하기 위해선 이들이 20대를 산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대학을 다니고 직장 생활을 시작한 시기인 만큼 그들의 '정신세계'를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시기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국내외 미디어는 20대 초반 젊은이들을 'X세대'라고 불렀다.

 X세대는 1991년 출간한 캐나다 작가 더글러스 커플랜드의 소설 'X세대(Generation X)'에서 유래했다.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지는 못 했으나 글로벌 기업들에는 좋은 마케팅 수단이 돼줬다.

 이전 베이비붐 세대와는 왠지 다른, 그러나 그 차이가 무엇인지 모호했던 신세대를 규정짓는 데 X세대는 최적이어서 기업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업들이 앞다퉈 채택해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전파하며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등의 힙합 음악을 사랑하던 20대 초반 젊은이들을 X세대라고 규정지었다. 이들이 바로 요즘 40대 초반이다.

 그럼 40대 중반 이상은 또 어떤 사람들일까.

 19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 로데오 거리나 마포구 상수동 홍대 앞 피카소 거리에 '오렌지족'이라는 20대 초·중반 젊은이들이 출몰했다.

 주로 서울 강남 지역 부유층 집안의 아들인 그들은 당시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한 해외 명품을 소비하고 승용차, 특히 수입이 막 허용된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녔다. 특히, 이들 중 일부가 미모의 20대 여성들에게 당시 고급 과일이던 '오렌지'를 선물하며 유혹했다고 알려지면서 그렇게 명명됐다.

 이들과 대비되는 또래도 곧 등장했다. '깡깡족'이다. 오렌지족을 동경해 경제 수준 격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태를 따라 하려 하던 이들을 비꼬기 위해 대중은 너무 작아 보잘것없는 낑깡(금귤)에 이들을 비유했다.

 이후 '귤족' '레몬족' 등 비슷한 듯이 차이가 있는 다른 '족'들도 등장했다. 이들은 그렇게 20여 년을 지나 현재 40대 중·후반에 포진했다.

◇'산업화·민주화' 혜택 다 누린 세대

 이처럼 현재의 40대 남성은 70~80년대 산업화가 안겨준 경제적 풍요에다 80~90년대 민주화가 선물한 정신적인 자유로움까지, 다른 세대와 달리 모든 것을 다 누렸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그들은 20대에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봤지만, '금 모으기 운동'으로 대표되는 국민적 단합과 정부의 과감한 개혁으로 2년도 안 돼 이를 극복해내는 과정을 통해 자부심을 키웠다.

 비록 '일장춘몽'으로 그쳤으나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이 평양에서 가진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며 통일의 꿈도 꿔봤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에는 붉은 악마 티셔츠를 차려입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한국 축구가 세계 4강에 오르는 기적을 만끽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이 현재의 40대 남성이 이전 세대와 달라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조수씨는 "사람의 정서를 형성하는 20대 시기에 좋든 싫든 많은 것을 경험한 요즘 40대가 이전 세대와 다른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40대는 과거처럼 인생 중반기가 아니라 초반기가 끝나가는 시기가 됐다"며 "변화는 이들이 시작했을 뿐이고, 앞으로 지금의 30대, 20대가 40대가 되면 40대는 더욱 젊어져 청년기나 다름없어질 것이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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