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바꿔놓는 2017년 대한민국

등록 2017-04-18 0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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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권현구 기자 = 수도권 지역의 미세먼지 수준이 나쁨을 나타내고 있는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남산공원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이 뿌옇게 보이고 있다. 2017.03.2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1. 주부 장연희(35·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은 지난 3월 생활비가 부쩍 늘었다. 생필품 물가가 오른 것도 오른 것이지만,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안 들어가도 될 '지출'이 급증한 탓이다.

 바로 다섯 살과 일곱 살 두 아들의 키즈카페 이용료다.

 예년에는 주말이나 평일 어린이집이 끝난 뒤 어쩌다 가는 것이었는데 요즘은 수시로 찾게 된다. 일기예보에서 "미세먼지를 주의해야 한다"고 한 날에는 꼭 찾는다,

 공기가 더러운 것을 뻔히 아는데 아이들을 아파트 놀이터에 내보낼 수도 없는 데다 층간소음 걱정하며 집에서 놀게 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인근 쇼핑몰에 있는 키즈카페로 데려간다.

 쇼핑몰까지는 차로 이동하고, 바로 키즈카페로 들어갈 수 있어 편리하다. 키즈카페 안에는 공기청정 시설도 잘 갖춰져 안심된다. 아이들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어 더욱 즐거워한다.

 문제는 이용료다. 어린이 두 명과 엄마 한 명이면 3시간에 3만원 넘게 드는 것. 게다가 아이들이 한번 놀기 시작하면 절대로 집에 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하루에 10만원 정도는 그냥 나가버린다.

 장씨는 "부담이 크죠.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요. 중국발 미세먼지에 우리 아이들 건강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을 뻔히 아는데"라면서 "다만 성장기에 햇빛을 충분히 쐬어야 건강하게 잘 자라는데 걱정이네요"라고 털어놓았다.

 #2. 직장인 최영철(32·서울 송파구 잠실동)씨에게는 요즘 새로운 쇼핑 아이템이 생겼다. 바로 '미세먼지 차단 상품'이다.

 그는 지난 3월 20만원을 들여 인터넷에서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를 구입했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면 바로 미세먼지 수치를 검색할 수 있지만, 서울 지역이 나오는 것이지 자기 주변의 미세먼지 수치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 중국산인 휴대용 측정기의 품질이 조악해 측정 수치가 전문 장비로 측정한 것보다 훨씬 낮게 나온다는 사실도 언론 보도를 통해 알고 있다. 그래서 측정 수치보다 좀 더 높이는 보수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자주 사는 것도 있다. 자동차용 에어필터다. 차 안으로 들어오는 유해물질들을 걸러주는 역할을 하는 이 에어필터를 그는 차가 아닌 집 창문 틈에 붙인다. 아침에 붙였다 저녁에 떼어낼 때 새카매진 것을 보면서 안도한다. 집안에서 공기청정기를 아무리 돌려대도 미세먼지기 유입하는 것을 막지 못하면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는 집 안 곳곳 가급적 높은 곳에 가습기를 설치했다. 수분이 많아지면 미세먼지가 수분을 머금고 무게가 무거워져 땅에 떨어진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최씨는 "대대로 호흡기가 약한 집안이라 미세먼지에 대한 두려움이 남보다 크다"며 "얼마 전 인터넷 쇼핑을 하다 보니 방충망에 붙이는 에어필터도 출시돼 다음에는 그것을 구입해보려고 한다. 돈 쓸 곳도 많은데 이런 데까지 돈을 들여야 하니 걱정이다"고 토로했다.

 4월이 돼도 미세먼지가 한반도에 자욱한 날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다.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다. 

 이제는 일반 국민에게도 익숙한 단어인 미세먼지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가늘고 작은, 직경10㎛이하의 먼지 입자를 뜻한다.

 이는 우리가 숨을 쉴 때 우리의 호흡기관을 통해 들어가 폐 속으로 침투해 그 기능을 떨어뜨린다. 또한 면역 기능을 약화해 질병에 대한 저항력까지 저하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미세먼지는 중국이 석탄 난방을 하는 겨울철에 주로 발생해 북풍을 타고 날아오다 봄이 되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봄에는 중국이나 몽골의 사막 지대에서 황사가 발생할 때 서풍을 타고 중국 내 중금속이 함께 날아오는 경우를 걱정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중국 동부 지방이 나날이 산업화하고 도시화하면서 상황이 악화했다. 석탄 화력발전소, 공장, 자동차 등이 대기 중으로 배출된한 유해 물질이 봄에도 서풍을 타고 한반도로 날아오게 돼 이제는 동풍이나 남풍이 주로 부는 늦봄부터 초가을을 제외하고는 1년 12개월 중 8개월 넘게 중국발 미세먼지를 걱정하는 지경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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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전국적으로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져 공기청정기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28일 서울 성동구 이마트 왕십리점에서 점원이 고객에게 공기청정기를 설명하고 있다. 2017.03.28. [email protected]
 문제는 최근 기후 온난화 영향으로 편서풍이 약해졌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입자가 크고 무거운 황사는 날아오지 못 하고 미세먼지만 서해를 건너 날아오게 되는데 바람 세기가 약해진 탓에 한반도를 지나 동해로 빠져나갈 힘까지 부족해져 한반도 서부 지역에 미세먼지가 정체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국내에서도 차량 운행, 석탄 화력 발전 등으로 발생한 많은 대기 중 유해물질이 합세하면서 더욱 큰 문제를 낳고 있다.  

 미세먼지가 이처럼 사실상 '만성'이 돼버리자 여러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직장인, 대학생 등 성인 중에는 특별히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한 날이 아니라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경우가 10명 중 1~2명에 불과할 정도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일종의 '안전 불감증' 탓일 수도 있지만, 이미 자포자기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을 정도다.

 이와 달리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미세먼지에 맞서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주로 어린이를 키우는 가정이나 선천적으로 호흡기가 약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미세먼지 수치가 치솟는 날이면 아예 집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를 꺼린다.

 집에서도 그냥 머무는 것이 아니다. 창문을 꼭 닫고 헤파(HEPA) 필터를 탑재한 공기청정기로 집안에 침투한 극소량의 미세먼지까지 정화하려 애쓴다. 헤파 필터는 1950~1960년대 미국 원자력 연구기관에서 연구원 건강에 위협을 줄 수 있는 공기 중의 방사성 미립자를 정화하기 위해 개발된 공기 정화 장치다. 이후 의학 실험실 등으로 사용해왔는데 이것까지 가정에서 쓰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런 상태로 살아야 건강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정인데 어린 자녀가 있어 층간소음이 두려운 경우에는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면 장씨처럼 키즈카페를 가는 경우가 많다. 실제 서울 시내에서 키즈카페 체인을 운영하는 한 업체에 따르면, 미세먼지 창궐 영향으로 3월 이용객이 전년보다 20% 이상 늘어났을 정도다.

 '국민생선'으로 불리던 고등어 판매량이 최근 급감하면서 관련 업체 중 폐업이 속출한 배후에도 미세먼지가 있다.

 지난 2016년 5월 환경부가 내놓은 '주방 요리 시 실내 공기 관리 가이드'에서 "고등어를 조리하는 과정에서 ‘매우 나쁨’ 기준(공기 1㎥당 100㎍)을 초과하는 초미세먼지가 배출된다"고 지적한 뒤 가정 내 고등어 소비가 급감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 여파가 여전한 것이다.

 요즘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상황이다. 굽는 것보다 삶거나 쪄먹는 것이 건강에 더 좋다는 연구 결과까지 더해지면서 굽는 조리법은 이제는 구시대적인 조리법으로 전락해버렸다. 덩달아 가스레인지 판매량은 줄고,전자레인지, 인덕션 등의 판매량이 늘고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대도시, 특히 한반도 서부 지역 대도시에서 미세먼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동쪽으로 이주하는 경우다.

 최근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제주도를 대신해 강원도가 힐링 이주지로 각광받는 데도 미세먼지로 인한 서부 대도시 엑소더스 행렬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공해추방네트워크 김진만 소장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하면서 국민이 각자도생하는 상황까지 촉발하게 됐다"면서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이 문제를 풀지 못 하면 우리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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