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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면 걸리는 '후보자 비방'…표현의 자유 위축 논란

등록 2017-04-23 15:01:59   최종수정 2017-05-02 08: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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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제19대 대통령선거를 36일 앞둔 3일 오후 송파구 서울시 송파구선관위로 관계자가 투표함을 옮기고 있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부터 6일까지 경기도 연천 집중창고에서 투표함과 기표대를 각 구선관위로 배부한다. 2017.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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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규제 광범위…"유권자 권리 위축 우려"
 SNS에 단순 의견 올려도 '후보자 비방' 될 수 있어
 반상회 못 열고 후보자 찬반 내용 담긴 문서 배부 위법
 "외국에 비해 제한 많고 불명확한 선거법 개선 필요"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환수복지당 학생 당원 이모(27)씨와 최모(26)씨가 경찰에 연행됐다.

 이씨 등은 촛불집회에 참석해 '세월호학살 진상규명 책임자엄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 반대' 문구와 함께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 등 대선 후보들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를 바닥에 붙이고 있었다.

 같은 날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는 안철수, 심상정, 문재인, 김선동 등 대선 후보 4명의 얼굴과 이름이 담긴 '청소년인권시험 치른 대선 후보들'이라는 자료를 시민들에게 돌리려다가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제재를 받았다.

 수능 문제 형식으로 구성된 자료에는 10가지 학생 인권 의제 등에 대한 후보들의 입장을 평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경찰이 환수복지당원들을 연행하고 선관위에서 자료 배포를 제재한 근거는 공직선거법이었다.

 ◇선거법 기준 모호하고 규제 복잡…"유권자 권리 위축" 주장

 대선 국면이 본격화한 가운데 유권자들의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억눌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직선거법 규제가 엄격하게 적용되면서다.

 유권자들의 선거 관련 의견 개진, 정책 또는 후보자 정보를 공유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모호한 위법 기준과 복잡한 규제로 인해 제한받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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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대선 후보들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를 붙이던 환수복지당원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2017.04.21 (사진 = 환수복지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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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거법에서 허용하는 선거운동과 의정활동, 일반시민들의 선거 관련 단순 의견 표시와 정치적 의사 표시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는 불분명한 문제"라며 "선거법은 명확해야 시비의 소지가 줄어들고 유권자들의 표현이 위축되는 일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공직선거법은 지난 1994년 통합선거법으로 개정된 이후 최근까지 약 65차례 개정되면서 변모해왔다. 이 과정에서 선거 관련 규제도 함께 늘어났다. 규제가 늘어나면 일반적인 선거의 자유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규제가 많아지면 어느 때 법에 저촉되는지를 이해하기가 어려워져 논의와 정보공유 자체가 위축될 우려가 생긴다. 처벌 대상에 해당하는 선거운동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인 계획성과 능동성, 적극성, 시간적 근접성 등을 일관되게 해석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일반 시민은 주로 후보자비방과 관련해 선거법에 저촉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의견을 내거나 게시물을 공유하다가 의도하지 않게 후보자비방, 허위사실공표 등을 이유로 처벌 받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후보자비방에 관해서는 '비방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반론도 상당하다. 그러나 욕설과 비난이 아닌 풍자 또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제기하는 비판도 비방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정 교수는 "우리 선거법은 복잡·애매하고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예측가능성도 떨어진다"며 "선거법이 복잡할수록 집행당국이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할 위험성도 커진다"고 지적했다.

 선거운동의 방식 규제가 과도한 편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행 선거법 조항 가운데 약 4분의 1은 선거운동의 방법을 나열하는 내용이다.

 현행법은 선거운동 기간에 화환이나 풍선, 간판, 현수막 등 시설을 설치하거나 진열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표찰 또는 표시물을 착용하거나 배부하는 것도 막고 있다.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선거기간에 반상회 개최를 금지하고 있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향우회나 동창회, 야유회 등을 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문제 되고 있는 것은 선거운동기간 특정 광고나 사진, 문서, 인쇄물 배부 또는 게시를 제한하는 부분이다.

 배포 게시물 등에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추천 또는 반대하는 내용이 담겼거나 정당명, 후보자 이름 등이 나타나면 법에 저촉된다. 다른 유권자에게 선거운동을 하도록 권유하거나 약속할 목적으로 문서 등 인쇄물을 나눠주는 경우에도 선거법에 어긋난 행위를 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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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민의를 반영하는 선거법개혁 공동행동’ 관계자들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선거법 개혁 국민선언대회를 하고 있다.

 이들은 “18세 투표권 및 유권자 표현의 자유 보장,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대통령·지방자치단체장 결선투표제 도입을 요구하며 오는 29일까지 집중행동주간을 선포, 행동에 들어간다”고 전했다. 201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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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된 환수복지당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지난해 낙선운동을 하다가 활동가 20여명이 무더기로 불구속 기소된 2016 총선네트워크에 가해진 제재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이뤄졌다.

 ◇전문가들 "선거 규제 전제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 보장"

 전문가들도 불법을 방지하기 위한 선거운동 등의 방식 제한은 필요하다고 본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후보자 등에게 심각한 인격적 모독이 될 수 있는 소위 '가짜 뉴스' 등이 횡행할 경우 선거 결과를 왜곡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한국 선거법이 외국 대비 선거운동방식에 많은 제한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개선 필요성도 제언된다.

 한국 선거법은 선거운동을 선거법으로 정의하고 사전선거운동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는 일본을 제외한 미국과 유럽 다른 나라의 입법태도와 거리가 있는 것이다.

 미국은 선거운동의 개념을 정의하면서도 선거운동 기간을 별도로 정하고 있지 않다. 사전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규정도 없다. 영국과 이탈리아, 프랑스에서는 선거운동 기간은 존재하나 전후에 불가능한 행위를 정해서 규제하지는 않는다.

 김재선 한경대 법학과 교수는 "선거운동 규제를 위해서는 구성요건이 법률에서 명확하게 규정돼야 한다"며 "중앙선관위 규정이 있지만 유권자들에게 명확하게 인지되지 못해 사전선거운동을 하게 되거나 선거기간 중 선거운동의 행위제한을 넘는 위법행위를 하게 될 가능성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시설 인쇄물의 경우에 규제목적이 인정된다면 적어도 주관적 구성요건인 '당선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는 행위'를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며 "선거기간을 별도로 두지 않거나 선거운동기간을 전후로 금지, 처벌 규정 등을 따로 두고 있지 않은 외국 입법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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