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정의 寫讌]장애를 넘어 희망을 노래합니다
장애를 넘어 희망을 노래하고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사람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한 치 앞을 모르는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살면서 예기치 못한 좌절에 긴 시간을 보내야 할 때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사고로 몸과 마음에 상처가 남아 절망할 때도 있습니다. 앞을 내다볼 수 있다한들 삶의 역경이나 예기치 못한 환난을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든 장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안경을 쓴 사람도, 아기를 잉태한 임부도 아기를 낳을 때까지는 일시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이다’라고 합니다. 한 때 왼손잡이를 장애라고 정의한 적도 있었습니다. 장애에 대한 인식과 시선은 시대마다 달라지고 있습니다.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습니다.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문신처럼 깊이 박힌 우리사회의 편견입니다.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마저 장애라는 이유만으로 읍소하거나 외면합니다. ‘장애인은 남다르다’며 아무렇게나 내뱉는 편견이 불행한 씨앗이자 차별의 시작입니다. 아득할 따름입니다.
유별나지도,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환자도, 치료사도 날카로운 편견이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재활병원에서는 있는 그대로 들려주고 싶은, 편견 없는 희망과 마주합니다. #1. 6살 소라(가명·여)가 스노즐렌(Snoezelen) 치료실에서 발달과 적응 행동을 돕기 위해 재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재태 23주째에 580g 미숙아로 태어난 소라에게 미숙아 망막 병증과 선천성 백내장, 청력 이상, 소뇌 이상, 발달 장애 등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소라 어머니는 소라의 돌 무렵 대학병원에서 “소라는 잘 보지도, 듣지도 못하니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듣고 절망감과 죄책감에 펑펑 울었습니다. 아이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서울재활병원을 찾았습니다. 인공와우 이식 등 각종 수술과 검사, 치료 등으로 잦은 병원 생활이 이어지면서 소라는 사람과 장소에 불안이 심합니다. 하지만 지속해서 재활 치료를 받으며 놀라울 정도로 호전하고 있습니다. 김지혜 서울재활병원 재활심리팀장은 “5년 전 처음 만난 소라는 아기 새처럼 작았습니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고, 눈을 맞추지도 못 했던 소라가 스노즐렌 환경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부터 자극에 반응하게 됐고, 친밀감과 신뢰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입 모양을 보고 소리를 내는 등 상호 작용을 하기 시작해 인지, 정서, 언어 및 비언어적 의사소통, 사회성에서 놀라운 변화를 보입니다. 상호작용의 성공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얻어 밝고 적극적인 아이로 바뀌었습니다”고 전합니다.
#2. 16개월 서희(가명·여)는 지난해 5월 엄마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중앙선을 침범한 상대 차량에 정면으로 받히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서희는 시각을 잃었고, 엄마는 신장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서희는 눈이 보이지 않자 신체 인식 능력이 저하하면서 오랫동안 자세 하나만을 취하거나 신체를 잘 사용하지 못 하게 됐습니다. 소아 물리치료를 통해 재활을 받고 있습니다. #3. 발달지연 아동인 5살 승아(가명·여). 볼풀 안에서 놀면서 촉각, 전정감각, 고유 감각 등을 지각하고 조직화해 신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4. 러시아 태생의 16살 소녀 마트료나(가명)는 생후 15개월째에 강직성 양마비성 뇌성마비 진단을 받고 18개월째부터 현지에서 재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생후 30개월 무렵이 되자 강직이 더 심해지고, 고관절까지 탈골돼 10년 넘게 기어 다녀야만 했습니다. 2년 전 민간종교단체 등의 도움으로 국내 대학병원에서 고관절 수술과 인대 수술을 받았지만, 전문적인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없어 서울재활병원을 찾게 됐습니다. 낮 병동에서 1년째 치료 중입니다. 박상덕 청소년치료팀장은 “밝고 긍정적이며 한국말도 곧 잘하는 마트료나는 본인 스스로 열심히 재활 치료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6 태어나자마자 호흡 곤란으로 인큐베이터에서 3개월을 보낸 15살 지훈이(가명·남)는 강직성 뇌성마비로 서울재활병원에서 청소년 재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선을 따라 그리고 색칠합니다. 세밀한 손 사용과 눈·손 협응 기술, 시·지각 기술 향상을 돕는 미술 놀이 등을 활용한 작업 치료를 받는 중입니다. 같은 치료를 받는 친구들과 함께 ‘새싹들의 꿈’ 전시회도 열었습니다. 재활치료는 질병이나 사고로 장애가 생긴 사람이 주어진 조건에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능력과 잠재적 능력을 최대한 발달시켜 가정, 학교, 직장 등에 복귀했을 때 독립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하도록 도움을 주는 모든 치료방법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물리 치료, 작업 치료, 언어 치료, 심리행동 치료 등이 있습니다. 급성장기를 거치며 급격한 신체적, 생리적, 지적 변화를 경험하는 장애 유·소아와 청소년은 신체 급성장기 근골격계 변형을 잘 관리하지 못한 채 성인기를 맞게 되면 신경 근골격계 통증 등이 신체 기능 저하, 사회 활동 중단 등으로 이어져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올해 19살이 되는 서울재활병원은 척박한 재활 의료 환경 가운데에도 소아·청소년 재활 치료 분야를 개척하고, 보급하는 선구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현재 가장 많은 장애 아동이 찾고 치료받는 병원입니다. 소아, 청소년, 성인 재활 치료를 분리해 운영하는데 이중 청소년 재활 치료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분리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울재활병원은 이제 우리나라 재활 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모델을 만들어가기 위해 새 병원 건립을 추진 중입니다. 교과서적인 재활, 소아 재활을 추구해오며 병원 운영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사명감을 갖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해외 재활 전문가들의 연수 기관과 재활 관련 학생의 교육 기관으로 재활 인재를 양성하는 역할까지 맡아 어깨가 더 무겁습니다. 이지선 서울재활병원장은 “‘재활은 당신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 합니다’는 병원의 모토 아래 이웃의 연약함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시대, 연약한 사람이 살아가기에 힘든 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일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동참해 우리 모두의 삶이 새롭게 디자인됐으면 하고 바랍니다”고 말합니다. 또 “아직은 병원에서 사회로 온전히 연결되지 않아 디딤돌에 불과한 우리나라 재활 의료를 튼튼한 다리로 만들겠다.”고 길고 원대한 계획을 밝혔습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