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진행동 안진걸 "촛불로 첫 '완성된 혁명'…文 잘못하면 비판"
"4·19, 5·18, 6월항쟁 등은 모두 미완의 혁명 그쳐" "이번 촛불은 현직 대통령 탄핵 이끈 완성한 혁명" "피 한방울 안 흘리고 절대다수가 집단지성 발휘" "주역은 가족·친구·혼참러…노년층도 이례적 참여" "文 정부 잘해와…박수 보내지만 향후 미진하면 비판" 【서울=뉴시스】박준호 기자 =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항쟁 등은 미완의 혁명에 그쳤지만 박근혜정권 퇴진 시위는 비폭력으로 탄핵이라는 성과를 만들어 낸 역사상 전례 없는 '완성한 혁명'으로 남을 겁니다." 촛불집회를 줄곧 주관해온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의 공동 대변인인 안진걸(45)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18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6개월간의 '촛불 대장정'을 이렇게 평가했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 4·16연대 등을 주축으로 지난해 11월9일 발족한 퇴진행동은 2000여개 시민단체가 연대하며 박근혜 정권 퇴진이라는 한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10월29일 대통령 퇴진을 내건 첫 촛불집회를 시작해 올해 4월29일 23차 집회를 마지막으로 퇴진행동은 5월24일 공식 해산한다.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대통령 탄핵 이끈 '완성한 혁명' 안 처장은 "국민의 3분의1인 1700만명(연인원)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을 밝혔다"며 "촛불시위는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국민들의 힘, '피플파워'로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촛불집회는 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의 선상에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4·19 혁명은 많은 사상자를 낸 핏빛 혁명이자 미완의 시위였다. 5·18 민주화운동은 역사적으로는 승리였지만 한편으로는 200여명이 학살당하고 완전히 전두환 대통령한테 당했다. 7년간 너무 서러운 패배였다. 6월 항쟁은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으니 죽쒀서 개준 꼴이 됐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는 시작은 좋았지만 일부 시민들의 격한 행동이 나오면서 이명박 정권의 공권력이 사나워졌다. 결과적으로 30개월 미만 쇠고기를 수입하는 성과는 있었지만 정권을 근본적으로 몰아내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민주주의는 한국에서 배우라'는 외신들의 찬사를 받을 만큼 6개월에 걸친 시위의 전 과정이 비폭력으로 치러진 것도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안 처장은 "전경이든 시민이든 피 한방울 흘린 사람이 없었다. 절대 다수가 집단지성을 발휘해서 평화적으로 하자고 했다"면서 "역사적으로 항상 국민이 모이면 약간의 실수를 빌미로 정권이 폭도, 빨갱이로 몰아가며 여론을 호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비폭력 시위를 했다. 전체적으로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촛불시위가 전개됐고 지금도 외신들과 세계적인 사회학자들로부터 연락이 계속 온다"고 말했다. 촛불이 소규모 집회에서 평화의 상징이나 종교적인 의미로 쓰인 적은 있었다. 하지만 대규모 사회운동의 전술로 채택된 건 2002년 당시 '앙마'라는 네티즌이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두 여중생을 위해 촛불을 들고 추모하자는 글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무효 집회(2004년), 광우병 시위(2008년),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2011년), 세월호 추모 집회(2014년)로 이어졌다. 지난해 박근혜정권 퇴진 시위에서 촛불은 국민적 염원을 담은 상징물이 됐다. 과거 시위가 열릴 때면 최루탄 가스나 물대포가 등장해 시민들을 맹렬히 위협했고, 그로 인해 시위 양상은 더욱 과격해졌다. 그러나 이번 촛불 집회를 계기로 우리나라에 평화 시위가 정착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안 처장은 확신했다. "우리 민족은 원래 평화를 좋아한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너무 사납게 진압해 폭도처럼 된 것이지 원래 평화를 사랑한다. 폭력을 반대하고. 그리고 남한테 피해주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외국에서는 사람들이 시위에 좀 모이면 약탈 사건이 많이 일어나지 않느냐. 한국인은 남의 물건 하나 안 건드린다. 이번 촛불집회에서도 소매치기는 있었지만 집단적인 절도 사건은 한 번도 없었다. 경찰이 일부러 자극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은 앞으로 이런 추세가 계속 갈 것으로 본다." ◇시대별로 다른 시위 주역…넥타이부대→유모차부대→혼참러 1987년 6월 항쟁 땐 샐러리맨인 '넥타이부대'가 선봉에 서면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전 국민의 외침으로 커졌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 광우병 시위 땐 가족 단위의 '유모차 부대'가 등장했다. 이번 촛불시위에서는 전 세대에서 다양한 계층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부모와 함께 나온 아이들, 할머니·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온 어린 손주도 볼 수 있었고, 광화문 광장에서 동창회를 열 만큼 친구들끼리 축제처럼 즐기러 온 시민들이 많았다. "이번 촛불은 가족혁명, 친구혁명이었다"고 안 처장이 부르는 이유다.
흔히 실버세대로 불리는 노년층이 촛불집회에 참여한 것도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안 처장은 "보수적인 노인분들이 많이 참여했다"며 "가족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많이 나왔다"고 전했다. 또 다른 노인들이 참여한 '태극기 집회'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촛불시위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대통령 탄핵 열기가 고조되자 보수적인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맞불 성격의 태극기 집회를 열었다. 오히려 이것이 촛불시위가 위축되지 않는 '약'이 된 것으로 안 처장은 보고 있다. "시민들이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더 많이 나오는 계기가 됐다. 위축되지 않고 건강한 자극이 됐다. 우리한테 빨갱이라고 하고, 문재인의 사주를 받아서 나왔다고 하고, 그렇게 시비를 걸고 모욕을 하는데 말려들지 않았다. 안타까운 것은 왜 일부 노인들이 명백한 범죄를 믿지 않고 가짜뉴스나 유언비어에 빠져 사회적 갈등을 만들려고 노력했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사회에서 극우세력과 극단주의 세력은 자리잡아선 안 된다. 최소한 보수는 법치라도 존중한다." ◇"문재인 정부 촛불정신 충실해야…미진하면 언제든 광장 모일 것" 퇴진행동은 24일 공식 해산하더라도 촛불정신이 퇴색되지 않도록 '촛불 정부'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을 계속 해나갈 예정이다. 그러나 9년 만에 이른바 '진보 정권'이 들어서자 시민단체 안팎에선 비판의 날이 무뎌지는 건 아닌지 걱정 혹은 의심하는 시선이 없지 않다. 촛불집회가 없었다면 문재인 정권의 운명도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다. 박근혜 정부 때처럼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나 제도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다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갈 생각이 있는지 묻자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촛불시위와 국민 다수의 투표로 탄생한 새 정부는 촛불혁명의 정신에 가장 충실한 '촛불정부'가 돼야 한다. 모든 순간순간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지켜야 한다. 문재인 정부도 지금까지 잘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잘 하면 박수를 보내겠지만 못하거나 미진하면 비판하고, 다시 촛불을 들고 시민운동을 할 수 있다. 국민들이 항쟁을 여러번 해봤기 때문에 언제든지 광장에 다시 모일 수 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