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인가 독인가? 술 마시는 사회ⓘ]혼술·야외 같술 그리고 남다른 술
세계보건기구(WHO) 조사(2015년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연간 술 소비량은 12.3ℓ로 세계 평균 소비량인 6.2ℓ의 두 배에 육박했다. 세계에서 15번째로 술을 많이 먹는 나라인 셈이다. 한국인 한 명이 연간 맥주 117병, 소주 86병, 탁주 13병을 먹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관련 산업도 발전할 수밖에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15년 국내 주류 산업 규모는 수출입을 포함해 10조1000억 원에 달한다. 연평균 약 2%씩 성장 중이다. 주종별로는 맥주(45%)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소주(33%), 탁주(5.5%), 위스키(3.4%), 과실주(3.1%), 기타 주류(2.3%) 순으로 뒤를 이었다. 알코올성 간 질환 진료비는 2015년 기준 968억원에 달했다. 음주운전도 끊이지 않아 지난해 음주운전으로 인한 면허취소(혈중 알코올 농도 0.10% 이상 시) 건수는 12만7999건, 면허정지(혈중 알코올 농도 0,05~0.10% 미만 시) 건수는 8만9666건으로 각각 나타났다. 음주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적잖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는 집에서 술을 마시는 '홈술', 혼자 마시는 '혼술' 등 새로운 주류 소비 방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여성 술 소비량도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술 소비량이 다른 계절보다 급증하는 여름을 맞아 국내 음주 트렌드는 무엇인지 살펴보고, 바람직한 음주 문화를 모색해본다. ◇2017년 한국 음주 문화 3대 트렌드- # 1. 회사원 최재명(32·가명)씨는 한 주에 두서너 번 귀갓길에 맥주를 사러 편의점에 들른다. '맥덕(맥주 덕후, 즉 맥주 마니아)'이자 '혼술족(혼자 술 마시는 사람)'인 그에게 편의점만큼 적당한 곳은 없다. 기존 국내 대형 맥주 브랜드뿐만 아니라 수입 브랜드 맥주, 국내외 크래프트 비어(수제맥주) 브랜드까지 다양한 브랜드의 갖가지 맥주가 있어 선택 폭이 크기 때문이다. 지방 출신 '1인 가구'인 최씨는 5년 안에 결혼하는 것이 목표다. 결혼 준비를 위해 자린고비 생활을 자청한 그는 최대한 다른 사람과 만나지 않는다. 대신 집에서 홀로 맥주를 마시며 스포츠 중계나 TV 드라마를 본다. 최씨는 "술을 좋아하지만 절약해야 해서 술자리를 잘 안 간다. 그렇다고 술집에서 혼자 먹으려니 괜히 루저나 왕따로 보이는 것 같아 싫더라. 우연히 편의점에 맥주 종류가 많다는 것을 알게 돼 편의점에서 맥주 쇼핑을 한다. 특히 크래프트 비어는 편의점 브랜드마다 판매하는 것이 달라 이 편의점, 저 편의점에 가서 늘 새로운 맥주를 즐기려 한다"고 말했다.
고풍스러운 흥인지문과 화려한 동대문 패션상가의 대비적인 야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경쾌한 버스킹에 선남선녀 수십 명이 장단을 맞추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 호텔이 이날부터 28일까지 3일간 이 자리에서 연 '비어 크루즈 페스티벌' 개막일 현장이다. 국내 하이트, OB, 수입 브랜드, 크래프트 비어 (수제 맥주) 브랜드 등 국내외 크고 작은 맥주 브랜드들이 부스를 마련해 맥주 시음과 일부 할인 판매를 했다. 참가 고객은 티켓 한 장(2만원)으로 각 브랜드 생맥주 6잔 (각 180㎖)을 즐겼다. 별도 판매이긴 했지만, 이 호텔 미셸 애쉬만 총주방장이 직접 준비한 각종 캐주얼 푸드를 각 1만원 전후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곁들일 수 있어 스몰 럭셔리를 추구하는 젊은 층 고객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 2015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3회째를 맞은 행사인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일 동안 600명 넘는 고객이 찾았다고 호텔 측은 귀띔했다, 행사에 참석한 디자이너 한지희(29)씨는 "지난해 선배와 (비어 크루즈)에 와보고 만족해 1년 동안 행사를 기다리다 마침내 친구들과 왔다"며 "맥주 맛을 더욱 좋게 하는 것이 분위기인데 이 행사에 참석하면 눈과 귀가 다 호강해서인지 더욱 맛있더라. 1년에 한 번 하는 것이 아쉽다”고 전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2015년 발표한 '2014년 국내 식품 생산 실적' 1위는 빵도, 라면도 아니었다. '맥주'였다. 규모는 자그마치 3조1937억원에 달했다. 2위는 소주로 1조4589억원을 기록했다. 봉지라면은 1조2012억원으로 3위에 그쳤다. 한국인이 얼마나 술을 좋아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한국인의 '2017년 음주 트렌드'로 전문가들은 세 가지를 꼽는다. 혼술(혼자 술 마심)괴 '야외 같술(야오에서 남과 같이 술 마심)' 그리고 '개성'이다. ◇왜 혼술인가? 혼술은 1인 가구 급증, 경기 침체, 개인주의 팽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 현상이다. 외국 생활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20~30대 젊은 층이라도 호텔 바 등을 찾아 홀로 술을 마시는 것을 전혀 낯설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외국 생활 경험이 거의 없다면 중장년층이라도 홀로 바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이 때문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인은 술을 마시려면 누군가를 불러서 함께 마시는 일이 일반적이었다.
여기에 1인 가구의 경우 가족은 멀리 있고 자신은 미혼이나 비혼인데 함께 술을 마실 만한 친구들은 이미 결혼해버린 상태다. 같이 술 마실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얘기다. 덩달아 고민이 있을 때 술 마시며 친구나 동료에게 털어놓아도 그뿐이고, 결국 해결은 내가 할 수밖에 없다는 개인주의적 인식 변화가 생겼다. 이런저런 이유로 혼술 인구는 지난 수년간 지속해서 증가했다. 최근엔 tvN '혼술남녀' 등 TV 예능 프로그램 등 대중문화 콘텐츠도 이를 부추기고 있다. 소비자와 가장 가까이 있는 유통채널인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맥주 종류가 날이 갈수록 다채로워지는 것도 한몫 단단히 한다. CU는 국산 크래프트 비어인 '대동강 페일에일' '국민 IPA' ' 강서맥주' '달서맥주' 등, GS25는 미국산 크래프트 비어 '혼커스에일' '312어반위트에일' '구스IPA' 등을, 세븐일레븐은 국산 크래프트 비어 '에일' 2종을 각각 판매한다. 편의점에 족발, 치킨, 육포 등 다양한 안줏거리가 있는 것도 만족스럽다. 배달음식은 혼자 먹기에 양이 많고 가격도 비싼데 이들은 양도 적당한 데다 넣고 전자레인지만 돌려도 될 정도로 조리가 간단하다. 가격이 배달음식보다 저렴한 것은 물론이다. ◇같술하려면 야외에서 대단하게 혼술 열풍 속에서도 '같술'이나 '함술(남과 함께 술 마심)을 해야 할 때도 있다. 혼술족이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기왕 하는 같술이라면 좀 더 화려하고 즐겁게 즐기고 싶은 사람이 많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심리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 욕구를 겨냥한 것이 갖가지 야외 맥주 프로모션이다. 혼자 먹어도 맛있지만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사람들과 마시면 더 좋은 술인 데다 비용은 와인이나 위스키보다 저렴하고, 알코올 도수는 소주나 막걸리보다 낮아 많이 마셔도 그만큼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국 술이 가진 세련된 이미지도 한몫한다. 올해 '봄이 실종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날씨가 일찍 무더워지면서 '야외 맥주 프로모션'은 더욱 많아졌고, 다채로워졌다. JW메리어트 동대문은 단기 행사인 비어 크루즈 외에도 매주 금~일요일 밤 같은 장소에서 '그릴링 앤 칠링'(종료 시기 미정)를 열고 있다,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포시즌스 호텔은 매주 수~토요일 밤 15층 야외 가든에서 '비어 앤 버거'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더케이호텔 서울은 매주 월~토요일 밤 '바비큐 비어(BBQ Beer) 파티'(각 9월30일 종료)를 각각 진행한다.
넓은 공간을 가진 테마파크도 가세했다. 경기 과천시 서울랜드는 지난 3일부터 주말과 공휴일 밤 시원한 맥주와 쫄깃한 훈체치킨을 판매하는 '치맥 나이트'를 운영 중이다. 야외 라이브 음악공연 '치맥 콘서트'를 열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호응이 커 오는 7월22일~8월20일에는 아예 이를 매일 밤 진행할 계획이다. ◇한 잔을 마셔도 개성 있게 요즘 인기 있는 맥주는 기존 국내 대형 브랜드 맥주가 아니다. 아무리 스타를 모델로 내세워 "벌컥벌컥"하고 "캬"하도록 연출해도 그뿐이다. 소비자가 선택하는 것은 "맛 좋다"고 회자하는 수입 유명 브랜드 맥주나 크래프트 비어다. 그중에서도 크래프트 비어는 브랜드명은 낯설지만, 전문성 있어 보이고 개성 넘치게 느껴지는 것이 강점이자 장점으로 작용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관련 시장은 최근 3년간 연 100%씩 쑥쑥 컸다. 지난해 국내 수제 맥주 시장 규모는 200억원대로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기간 수입맥주 시장이 연평균 30%씩 성장한 것에 비해 규모는 작아도 성장률이 훨씬 가파르다. 물론 4조원대인 일반 맥주 시장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업계에서는 10년 뒤 2조원대까지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크래프트 비어 붐은 2009~2010년 불었던 '일본 특수'가 꺼지면서 위기에 빠진 막걸리 업계에도 자극이 됐다. 관련 업계가 지난해부터 시작한 정부의 '전통주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크래프트 비어처럼 각 매장의 개성을 살린 막걸리를 내놓기 시작한 것. 대표적인 업체가 배상면주가다. 이 업체는 '느린마을양조장'이라는 브랜드로 서울 중구 을지로, 양재동 등 직영점과 전국 가맹점에서 막걸리를 직접 만들어 팔고 있다. 기본적인 조리법은 같아도 미세한 온도 차이, 손맛 등으로 막걸리 맛이 매장마다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는데 이를 마케팅 포인트로 삼고 있다. 배상면주가는 ‘동네방네양조장’ 사업도 펼친다. 사업주가 각 지역 동네 이름을 내걸고 하루 최대 600병의 막걸리를 만들어 유통하는 사업이다. 현재 서울 마포구 대흥동의 ‘공덕동 막걸리’, 관악구 신림동의 '신림동 막걸리', 경기 의정부시 민락동의 '의정부 막걸리', 경북 구미시 봉곡동의 ‘금오산 막걸리’ 등 8종을 선보였는데 올해 안에 양조장을 100개까지 늘려 더욱 다양한 막걸리를 내놓을 계획이다. 김조수 외식 평론가는 "술을 마시는 이유는 기쁨은 더욱 키우고, 슬픔은 보다 줄이기 위해서다"며 "누구와 마시는지, 무엇을 마시는지도 중요하나 정말 중요한 것은 '나를 위해 술을 마신다'는 사실이다. 그런 생각으로 절제한 가운데 술을 마시면 결코 술이 나를 먹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짚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