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활동비①]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눈먼 돈' 수술대 오르나
특수활동비는 기밀 유지가 필요한 정보나 사건 수사, 이에 따르는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말한다. 연간 수천억 원에 달하는 특수활동비는 구체적인 사용 내역 공개나 영수증 처리 의무가 없어 이른바 '눈먼 돈'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또 비용 부풀리기나 사적 용도로 사용된다는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법무부 검찰국장과 검찰 고위 간부가 특수 활동비를 격려금 명목으로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향후 관행처럼 사용되던 특수활동비 집행 과정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돈 봉투 만찬, 檢 고강도 개혁 신호탄 되나 물의를 빚은 돈 봉투 만찬은 지난달 2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식당에서 열렸다. 당시 이영렬(59·사법연수원 18기)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51·20기) 전 법무부 검찰국장과 차장검사 1명과 부장검사 5명 등 10여 명이 저녁 식사를 했다. 국정농단 수사가 종결된 지 나흘 만이다. 이 자리는 국정농단 수사로 고생한 후배 검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라는 게 사정 기관의 설명이다. 술잔이 오고 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안 전 국장은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간부들에게 70만~100만 원이 든 돈 봉투를 건넸다. 이 전 지검장도 검찰국 간부들에게 100만 원이 든 돈 봉투를 건넸다. 법무부 과장들은 다음 날 격려금을 서울중앙지검에 반환했다. 문제는 국정농단 사건의 조사 대상자로까지 거론됐던 안 전 국장이 수사 책임자였던 이 전 지검장과 만난데 이어 돈 봉투까지 주고받았다는 사실이다. 또 격려금 출처가 특수활동비로 알려지면서 특수활동비 용도 논란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상급 기관인 법무부 과장들에게 돈을 건넨 이 전 지검장의 경우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돈의 출처가 특수활동비로 결론나면, 용도와 달리 사용한 만큼 돈 봉투를 건넨 이 전 지검장과 안 전 국장 모두 횡령 혐의 적용도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다. 법무부와 검찰은 논란이 커지자 해명에 나섰다. 이에 대해 법무부와 검찰은 "수사비 지원 차원에서 집행한 것"이라며 "법무부 통상적인 관행으로, 후배 검사들을 격려하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돈 봉투 만찬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 돈 봉투 만찬에 연루된 이 전 지검장과 안 전 검찰국장은 사표를 제출했지만, 청와대는 각각 부산고검 차장검사,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좌천시켰다. 지난 1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돈 봉투 만찬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22명으로 구성된 합동감찰반을 꾸려 만찬 참석자 10명 전원으로부터 경위서를 제출받아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 또 관련자들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감찰반은 관련자들을 상대로 돈 봉투를 주고받은 경위와 특수 활동비를 용도 맞게 사용했는지 집중 추궁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도 돈 봉투 만찬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23일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이 사건을 배당받아 수사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철성 경찰청장도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 전 법무부 검찰국장 등 10명에 책임을 물어달라는 고발장이 접수됐다"며 "실정법 위반 부분을 정확히 확인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검찰 개혁을 앞둔 시점에서 이번 돈 봉투 만찬 사건까지 터지면서 부적절한 관행과 특수활동비 용도 논란에 휩싸인 검찰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10년간 정부 특수활동비 8조5천억…납세자연맹 "특수 활동비 폐지" 지난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정부의 특수 활동비가 8조5631억 원으로 집계됐다. 한국납세자연맹이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특수활동비로 확정된 예산은 8870억 원으로 2015년에 비해 59억3400만 원이 증가했다. 최근 10년간 특수활동비를 가장 많이 쓴 기관은 국가정보원(4조7642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국방부 1조6512억 원 ▲경찰청 1조2551억 원 ▲법무부 2662억 원 ▲청와대(대통령 경호실·비서실 및 국가안보실 포함 2514억 원) 순이었다. 지난해 편성된 특수활동비 역시 국가정보원이 4860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국방부 1783억 원 ▲경찰청 1298억 원 ▲법무부 286억 원 ▲청와대(대통령 경호실·비서실 및 국가안보실 포함) 266억 원 순으로 집계됐다. 납세자연맹은 "국가가 국민에게 성실납세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낸 세금이 공익을 위해 사용되고 개인의 호주머니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며 "사기업은 영수증 없이 돈을 지출하면 횡령죄로 처벌받는데 국민의 세금을 공무원이 영수증 없이 사용하는 것은 국민주권주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보기관을 제외한 청와대, 법무부, 감사원, 국세청, 미래창조과학부, 통일부, 국가안전처, 관세청, 국무조정실, 국민권익위원회, 외교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대법원,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특수활동비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특수활동비 투명하게 공개해야…사용처 사후 감시·감독 장치 마련 검찰의 특수활동비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11년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은 검찰 고위 간부 45명에게 특수 활동비 9800만 원을 나눠줘 비판이 쏟아졌다. 올해 법무부에 배정된 특수활동비는 모두 284억 원에 달한다. 이 중 검찰의 특수활동비는 179억 원이다. 특수활동비 집행은 감사원 지침을 따른다. 지침에는 비용을 집행할 때 영수증 증빙 생략이 가능하고, 현금 사용 시 집행 내용 확인서를 첨부하도록 명시돼 있다. 하지만 '사용처 공개로 목적 달성이 어려우면 확인서 제출을 생략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있어 사실상 비공개 집행이 가능하다. 검찰 말고도 특수활동비를 부적절하게 사용하다 물의를 빚은 사례가 적지 않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원내대표 시절 자신에게 배정된 특수활동비를 생활비로, 신계륜 전 국회의원은 자녀 유학비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질타를 받았다. 지난 2010년 신재민 당시 문화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차관 시절 특수활동비 1억여 원을 유흥비와 골프 접대비로 썼다는 의혹으로 곤혹을 치렀다. 심지어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은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5000만 원을 차명 계좌로 빼돌렸다 구속됐다. 이번 법무부와 검찰 고위간부들의 돈 봉투 만찬 사건을 계기로 특수활동비 사용처와 용도에 대한 공개와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국회 예산심사 과정에서 특수활동비 문제를 거론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특수활동비 사용처에 대한 사후 감시·감독 장치가 마련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공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개가 안 되다 보니 확인서 등이 만들어지지 않고, 확인 절차 없이 방만하게 사용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며 "이번 기회에 공개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국회가 특수활동비를 견제하거나 검토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특수활동비는 공무원이 국민위에 군림하던 권위주의 정부의 산물로 일부 힘 있는 권력기관장들이 국민 세금을 공돈으로 여기고 나눠먹고 있다"며 "특수활동비 예산이 폐지되지 않을 경우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더욱 더 떨어지고, 납세거부 등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재인 정부의 사정 기관 특수활동비 감찰이 막대한 특수활동비를 집행하고 있는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등 다른 정부 기관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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