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항쟁 30주년]⑤6월항쟁과 촛불집회의 매개 '광장의 노래'
6월 항쟁이 광장의 노래에도 자유 불러와 노찾사, 안치환 등 민중가요의 대중화 흐름 촛불집회서도 그 시절 노래들 자주 불려져 과거와 현재의 노래들, 민주화 매개로 작용 【서울=뉴시스】 심동준 기자 = 노래는 30년 전 6월 항쟁과 최근 촛불 광장의 공통분모다. 6월 항쟁에서 자주 불린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2017년 광장에서도 울려 퍼졌다. 80년대 광장의 대표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도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노래에 깃든 당대의 정신이 이어진 것처럼 느껴졌다는 감상을 내놓는 이들도 많았다. 민주화를 불러온 6월 항쟁은 광장의 노래에도 자유를 불어넣는 계기가 됐다. 과거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사노라면' '불나비' 등 광장의 인기곡에는 대체로 '금지곡' 낙인이 찍혀 있었다. 유신정권과 군부는 시의에 맞지 않는다는 등 여러 이유를 들어 노래가 퍼지거나 불리는 것을 막았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어디선가 전해들은 노랫말을 입으로 옮기거나 불법 테이프를 구해 돌려 들으면서 노래를 익혀 불렀다.
1987년 광장의 애창곡은 '애국가' '아리랑'과 같이 누구나 알던 노래와 여러 금지곡들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면서 통일을 '민주'로 바꾸기도 했다. 6월 항쟁을 다룬 곡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노래모임 '새벽'의 '유월의 노래'와 연세대 학생들의 추모 음반인 '한열아 부활하라' 등이다. '한열아 부활하라' 음반에는 후에 이한열 추모곡으로 명명되는 안치환의 '마른 잎 다시 살아나'가 담겼다. 당대 노래운동에 동참했던 이영미 평론가는 "당시 민중가요라고 부르는 곡들은 시위 현장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향유하던 노래들이었다. 신곡이 계속 나왔으며 상당한 역량을 가진 창작자들이 매달렸었다"며 "6월 항쟁 이전에는 대중가요 공간에 들어가지 못했던 민중가요를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부르게 되는 대중화가 일어났다. 민중가요를 만들어 유행시키는 주체가 지식인들에서 일반 노동자로 바뀌는 대중화도 도래했다"라고 회상했다.
6월 항쟁은 같은 해 7월부터 10월초까지 진행된 이른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 광장의 노래는 더욱 널리 울려퍼졌으며 정부는 1987년 9월5일 방송 금지곡 500여곡을 해금했다. 노래모임 '새벽'이 구성한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을 비롯해 본격적으로 진보적 대중음악 시대를 여는 주역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음악계 일각에서는 7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를 민중가요 전성기라고 부르면서 6월 항쟁 이후가 절정에 이른 때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최근 광장에서는 윤민석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와 같은 다소 잔잔한 풍의 노래들이 시민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이끈 촛불집회에서는 '하야가' '이게 나라냐' 등 비교적 경쾌한 곡조의 노래도 인기를 끌었다. 최신 경향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이 무대에 올라 집회 참가자들과 호흡하기도 했다.
최신 유행 흐름과는 상관없이 80년 6월 항쟁 시절 불렸던 자유와 민주를 갈구하는 노래들 역시 원곡 그대로 또는 편곡 등을 달리해 적잖이 울려퍼졌다. 집회의 열기 속에서 과거와 현재의 노래들은 시민들에게 6월 항쟁을 떠올리는 촉매이자 현재를 과거의 기억 속에 투영하는 매개로 작용했다. 김창남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많이 불린 민중가요는 그 시대의 역사를 상징하고 의식을 대변하는 노래로서 의미가 있다. 이번 촛불집회 과정에서 역사와 사람의 기억을 매개하는 음악과 노래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면서 "민중가요가 맥이 끊긴 것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가수들과 음악이 대중을 만나면서 새로윤 의미와 맥락을 갖게 된 것처럼 느껴졌다"고 해석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