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유혹, 대포통장③]베테랑 허성수 형사의 '집념'···"대포통장, 범죄 연결고리 뿌리 뽑아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허성수 경위 대포통장 근절해야 제 2·3의 범죄 차단 【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형사라면 무릇 범인을 꼭 잡고야 말겠다는 '집념'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형사로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소속 허성수(46) 형사는 지난 12일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는 내내 집념과 인내를 강조했다. 얼핏 형사에게 당연할 수 있지만, 그에게는 단단한 믿음이었다. 궁금한 물음이 넘쳤다. 허 형사는 자타공인 '수사통(通)'이다. 시쳇말로 날고 기는 서울 지역 형사들만 모인다는 광역수사대에서 11년째 근무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지역과 관할 구분 없이 사건만 쫓는 광역수사대에 대한 호기심이 뒤섞여서다. 특히 그는 범행 도구의 본래 소유주와 실제 사용자가 다른 대포통장·대포차·대포폰 등 대포 범죄 수사에 정평이 나 있다. "워낙 은밀한 대포 범죄 특성상 범인이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당연히 신분도 감추고요. 형사에게 불리한 상황이라도, 아무리 작은 단서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대포 범죄 수사가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란 뜻이다. 그의 말마따나 범행을 실제 지시하는 윗선까지 단죄하기 위해서는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수법이 갈수록 고도화하면서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꼬리 자르기도 서슴지 않은 탓이다. 베테랑 형사의 집념이 비단 하루아침에 쌓인 것이 아니다.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나 사설 도박 등과 같은 범죄는 모두 대포통장과 연결돼 있습니다. 범죄자들에게 대포통장은 필수품입니다. 이 연결고리를 제때 끊지 못하면 제2, 제3의 다른 범죄로 이어집니다. 반드시 사전에 끊어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잠복과 미행은 일상다반사다. 집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물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강행군이 이어진다. 그는 대포통장 모집책부터 인출책, 범행을 지시하는 총책까지 전화금융사기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1년간 잠복과 미행을 반복한 적도 있단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생각에 범인에게도 진정성 있게 다가갑니다. 함께 밥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인간적으로 먼저 다가가면 훗날 비슷한 범죄 수사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첩보를 넘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설득하는 것도 제 몫입니다." 대포 범죄 특성상 확실한 첩보가 없으면 수사가 쉽지 않다. 이때 그의 경험과 노련함이 빛을 발한다. 그는 사비를 털어 어렵게 사는 범죄자의 가족을 돌봐준 적도 있다. 그래서일까. 인터뷰 중간에도 그의 휴대전화가 연신 울렸다.
그는 숟가락 개수까지 꿰고 있을 정도로 '동고동락'하는, 부부 사이보다도 더 긴 시간을 붙어 있는 같은 팀 동료들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드러냈다. "형사 일이라는 것이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땀 냄새, 발 냄새 맡아가며 서로 몸으로 부딪치고, 호흡을 맞춰야 가능해요. 함께 일하는 동료를 믿고 힘을 합쳐야 합니다." 또 후배들을 향한 애정(?)을 표현하는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그는 늘 후배들에게 '버릇처럼 질문하지 말 것'을 강조한단다. "질문이 많은 후배는 게으른 것입니다. 선배로서 큰 그림만 그려줍니다. 후배 스스로 헤쳐 나가다보면, 설사 실패하더라도 이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경험과 노하우를 쌓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진짜 형사로 거듭날 수 있어요. 세세한 것까지 모두 선배가 나선다면 후배 입장에서 편할지 모르지만, 주워 먹는 꼴밖에 안 됩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범죄 조직에 꼬임에 넘어가 자신의 통장을 넘겨주는 사람들은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라고 전제한 뒤 "절박한 사람들을 또 한 번 울리는 대포 범죄 앞에서 적당한 타협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