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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딱 1편···한국 공포영화가 사라졌다

등록 2017-07-06 09:31:41   최종수정 2017-07-11 09: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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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화 '장화, 홍련'의 한 장면.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공포영화는 한국 영화계 희귀 장르다. 1998년 '여고괴담'이 큰 성공을 거두며 주목받았지만, 이후 올해까지 20년 동안 연평균 4.9편(총 98편)이 만들어졌을 뿐이다. 2006년 10편이 제작된 후, 가장 적은 작품이 개봉한 해가 2001년(2편)이다.

이후 공포영화는 힘을 못쓰고 있다. 올해 개봉한 한국 공포영화는 단 한 작품 뿐이다. 이마저도 독립영화다. 허정 감독의 '장산범'이 다음 달 개봉을 앞두고 있을 뿐 더이상의 국내 공포영화는 없다. 이대로라면 올해는 2001년 이후 가장 적은 한국 공포영화가 개봉한 해로 기록될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영화시장에서 공포영화는 명맥이 완전히 끊길 위기다. 편수는 많지 않았지만, 매년 1편 이상의 히트작을 내놓으며 최소한의 존재감을 유지했었다. 그러나 2011년 이후 개봉한 한국 공포영화 중 그 해 박스오피스 50위권에 이름을 올린 작품은 단 두 편(2013년 '더 웹툰:살인예고' 120만명 50위, 2015년 '검은 사제들' 11위 544만명) 뿐이다(2004~2016년 박스오피스 50위 내 공포영화 12편).

 ◇한국 공포영화 짧았던 전성기

 한국 공포영화의 전성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다. '여고괴담'이 문을 연 이 시대는 한때 흥행과 작품성 모든 측면에서 성공적이었다. 1999년 나온 김태용·민규동 감독이 공동 연출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한국 공포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걸작이다. 2003년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또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4년은 박스오피스 50위권 내에 네 편의 공포영화가 이름을 올린 해이기도 하다('귀신이 산다' '시실리 2㎞' '알포인트' '분신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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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화 '여고괴담'의 한 장면.

 우리나라 공포영화는 내리막길을 걸은 건 2005년부터다. 그해 나온 공포영화 중 '분홍신'(33위, 107만명)만 흥행에 성공했고, 이듬해에는 가장 많은 공포영화가 개봉했음에도 단 한 편도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극락도 살인사건'(2007년, 17위, 207만명), '검은 집'(2007년, 32위, 132만명), '차우'(2009년, 26위, 177만명), '이끼'(2009년, 7위, 335만명) 정도가 흥행에 성공했을 뿐이다.

 ◇공포영화는 돈이 안 된다

 전문가들은 우리 공포영화의 하락세를 1000만 영화 탄생의 그림자로 본다. 2003년 '실미도'가 1000만 관객을 최초로 달성하면서 흥행만을 목표로 한 영화들이 우후죽순 제작됐고, 공포·멜로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흥행 폭발력이 약한 작품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분석이다. 1000만 영화는 이어 스크린 독점 문제를 불러오며 한국영화의 장르 편중 현상을 가속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 제작사 대표는 한국 공포영화가 현재 최악의 위기에 빠진 이유에 대해, "아주 명쾌하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유명 배우들 모아서 한 작품에 몰아넣고 흥행시키는 게 대세 아닌가. 공포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신인급 감독·배우들의 영역이다. 다들 영화 만들어서 돈 벌고 싶어 하는데, 요즘 어떤 감독이 어떤 제작자가 어떤 투자사가 신인들 데리고 공포영화 만들려고 하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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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화 '알포인트'의 한 장면.


 결과는 악순환이다. 공포영화 시나리오 편수가 줄어드니까 좋은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줄어들고, 설령 제작된다고 해도 완성도가 떨어지다보니 관객이 더 공포영화를 외면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현실이 더 공포스러운데

 공포영화의 부진을 사회적 분위기를 통해 읽어내는 시선도 있다. 현실 사회가 주는 실제 공포가 영화가 만들어낸 가상 공포를 넘어서기 때문에 공포영화를 굳이 볼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촉발한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발한 2008년 이후 박스오피스 50위권 내에 진입한 공포영화가 4편에 불과하다는 건 이를 방증한다.

 김에리 문화평론가는 이같은 흐름에 대해, "지난해 사회비판 영화가 많았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부터 시작해 지난해 말 세월호 정국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나. 모두 매우 공포스러운 일들이었다. 굳이 공포영화를 찾아볼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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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화 '겟 아웃'의 한 장면.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고, 국내에서도 2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모은 미국 공포영화 '겟 아웃'이 여전히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을 주제로 삼아 성공을 거뒀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인 물은 썩는 법

 '여자 귀신'이라는 고정된 문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공포영화의 좁은 스펙트럼이 이 장르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지적도 있다. 매년 여름이면 TV에서 볼 수 있던 '전설의 고향' 시리즈가 더는 방송되지 않는 것과 같은 흐름으로 볼 수 있는데, 머리를 산발하고 상대를 노려보는 한(恨) 많은 여자 귀신으로는 이제 관객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사이 '공포'는 다른 장르의 재미를 더하기 위한 양념과 같은 존재가 됐다. 공포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소재였던 좀비가 재난 블록버스터 장르 안으로 들어왔고('부산행'), '엑소시스트' 같은 영화에서 봤던 오컬트적 요소가 스릴러와 결합했다('곡성'). 두 남자를 주인공 삼은 전형적인 수사물도 공포영화 소재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성공을 거뒀다('검은 사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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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한국 공포영화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 어떤 새로운 시도가 나오지 않는 이상 공포영화 장르가 관객을 다시 끌어모으기는 힘들 것이고, 다른 장르의 도우미 역할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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