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은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공감대 어디까지 왔나
2004년 대법 전원합의체, 11대1로 유죄…대체복무 제안 의견도 불붙은 양심적 병역거부 논의…대법, 전원합의체 심리 가능성은? 【서울=뉴시스】김승모 기자 = 지난달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내렸지만, 일주일 만에 일선 법원에서 또다시 무죄를 선고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일주일 만에 유죄라고 재확인했음에도 하급심이 무죄를 선고한 것을 두고 일종의 '반기'라고 바라봤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유죄 입장은 현행법 위반이며 남북 대치 상황이라는 특수성에 따라 처벌이 유지돼야 한다는 원칙론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반면에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처벌을 주장하는 원칙론과 달리 인권 의식이 높아진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법과 제도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1심, 올해만 15건 '무죄'…대법원은 여전히 '유죄' 12일 대법원에 따르면 올해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과 관련해 전국 1심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은 총 15건이다. 특히 이 가운데는 지난달 15일 대법원이 병역법 위반 사건에 대해 유죄 확정판결을 내린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또다시 무죄 판결을 내린 하급심도 포함돼 있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지난달 15일 훈련소 입소 통지서를 받고도 소집에 응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된 신모(22)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현행법상 처벌 예외사유인 '정당한 사유'가 아니고,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하지 말라는 유엔(UN) 자유권규약위원회의 권고안은 법률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신씨는 1심에서 "병역을 강제하는 것은 신씨의 인격적 존재가치를 허물어버리는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심과 대법원에서 결과가 뒤집혔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 필요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하지만 이같은 대법원 판단이 나온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청주지법 형사4단독 이지형 판사는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모(23)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기본권 보장을 위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고 그것이 가능함에도 국가가 아무런 노력 없이 일방적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게 병역법을 적용해 오로지 징역형만을 감수하도록 한다면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양심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고 설명했다. ◇2004년 대법 전원합의체, 11대1로 유죄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재차 유죄를 확인하는 이른바 '쐐기' 판결을 내렸음에도 일선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이어지자 대법원이 판례 변경을 통해 기존 입장을 바꿀지도 관심사다. 대법원이 기존 판례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대법관 전원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결론이 나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 대법원은 지난 2004년 7월 전원합의체를 통해 유죄를 확인한 바 있다.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이강국(72·사법시험 8회) 대법관이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 최종영(78·고시 13회) 당시 대법원장을 비롯한 나머지 11명의 대법관은 모두 유죄 판결을 내렸다. 당시 이 대법관은 "피고인의 경우는 국가 형벌권이 한발 양보함으로써 개인의 양심의 자유가 더욱 더 존중되고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하고 그에 대해 관용을 베풀어야 하며 비례의 원칙에 반하는 형벌권의 행사를 삼가야 할 헌법적 의무를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병역법 위반 사건에서 피고인은 자신의 양심상 결정을 실현하기 위해 형벌집행의 수인 이외에 다른 대체 수단을 갖지 못하고 있다"며 "국가는 양심의 자유와 병역의 의무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하는 헌법적 의무와 함께 그러한 권한과 가능성까지 가지고 있음에도 그런 의무나 권한행사를 다하지 않았다면 불이익은 국가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대법관은 대체복무 도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서는 유죄 판단을 내린 다수의견에 목소리를 낸 대법관 5명도 뜻을 같이하기도 했다. 당시 재판에 넘겨진 최모(당시 23세)씨를 변호하기 위해 이름을 올린 변호사만 77명에 달했다. ◇대법, 전원합의체 심리 가능성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 논의가 2004년 전원합의체 선고 이후 다시 불붙고 있어 수년 내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통해 판례를 변경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도입과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열어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는 논의 분위기가 이런 가능성을 이끌고 있다. 여기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달 27일 국방부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권고하면서 힘을 보탠 상황이다. 또 조재연(61·12기)·박정화(52·20기) 대법관 후보자들도 모두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유죄 판례에 대해 '전향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거나 '전원합의체에서 혼란을 종식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여전히 남북 대치 상황 등을 볼 때 법 위반시 처벌이 필요하다는 반대 목소리도 여전하다. 박상기(65)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관련 병역법 규정과 헌법재판소 결정, 대법원 판결 등을 종합해 볼 때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불가피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렇듯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과 관련해 찬·반 입장이 극명히 엇갈리고 있어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통해 명확한 입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에 설득력이 실리는 상황이다. 하지만, 대법원이 곧바로 전원합의체에 넘겨 심리할지는 불투명하다. 한 번 전원합의체 선고가 이뤄지면 같은 쟁점을 가지고 불과 몇 년 안에 다시 회부하기 힘든 상황도 쉽사리 넘기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한편 헌법재판소도 대체복무를 마련하지 않고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심리 중이다. 헌재는 관련 사건 28건을 심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구 향토예비군 설치법이나 '대체복무 제도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입법 부작위를 대상으로 한 비슷한 취지의 주장까지 포함하면 30건이 훌쩍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지난해 헌법재판관들 사이에서 상당한 논의가 이뤄졌다는 헌재 분위기가 전해졌지만, 박근혜(65) 전 대통령 탄핵심판과 재판관 공백 사태로 더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체복무와 같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새로운 길이 열리거나 처벌 필요성이 없다는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대법원 판례 변경이나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이 나오지 않겠느냐"며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대법원이나 헌재도 모두 기존 입장을 뒤집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다"고 내다봤다. 그는 "분단국가라는 현실에서 병역법 위반 사건은 민감할 수밖에 없는 쟁점으로 입법을 통한 해결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