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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정의 寫讌] 바다로 간 오월 광주의 그들

등록 2017-08-22 05:50:00   최종수정 2017-08-30 10: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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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뉴시스】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 박갑수, 서정열, 양동남 선생님과 그들의 오월 동지들, 사진 치유자 임종진 사진치유공감아이 대표가 트라우마 사진 치유 과정 책거리 낚시 여행을 하고 있다.  VR카메라로 360도 촬영. [email protected]
【영광=뉴시스】 조수정 기자 = '철썩철썩···.'
 
 뱃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상처와 분노, 울분을 토닥인다. 출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긴다. 아무래도 좋다. 잃을 것 없는 이곳이 그냥 좋다. 몰입의 시간은 참혹했던 '80년 5월의 기억을 잠시나마 잊게 한다.

 하늘에선 두 겹 햇무리가 태양을 감싸 안았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세월을 낚는다. 손끝 미세한 떨림에 낚싯대를 들어 올리니 묵직한 광어 한 마리가 퍼덕인다.  ‘쓱쓱···.’ 방금 잡은 고기들이 셰프의 손길을 거쳐 회로 다시 태어난다. 이 맛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꿀맛’ 정도의 단어로는 아니 되는, 형언할 수 없는 맛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킨 사람들. 박갑수, 서정열, 양동남 선생님 등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 피해자들이 낚싯대를 들고 바다로 향했다. '사진 치유자' 임종진 사진치유공감아이 대표가 광주트라우마센터와 함께한 사진 치유 프로그램 2년 과정을 마친 일종의 책거리 겸 뒤풀이다.
 
 이들은 작은 고깃배에 몸을 싣고 전남 영광군 계마항을 떠나 30~40분을 달려 도착한 바다 한가운데서 소박한 잔치를 벌였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2년에 한 기수씩 두 기수가 치유 과정을 밟았다. 이날은 세 분이 2기 과정을 잘 마친 것을 자축하는 자리다.
 
 책거리를 바다에서 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바다야말로 세월을 통째로 잃어버린 선생님들에게 얻음과 취(取)함만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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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뉴시스】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 피해자 선생님들의 트라우마 사진 치유 과정 책거리 낚시 여행길에 태양을 감싼 두 겹의 햇무리가 함께했다. [email protected]

 책거리 배에는 다른 이들도 함께했다. 울분과 고통의 기억을 공유한 또 다른 ‘오월 동지’ 여섯 분, 소동출판사 김남기 대표와 남규조 실장, 탈북자 출신 머구리를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다큐멘터리 영화 ‘올드마린보이’ 개봉을 앞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연출자 진모영 감독, 시골자연치유원 김영부 원장, 일식 전문가 홍지훈 셰프 등이다.
 
 김 대표 등은 '80년 5월의 광주를 직접 겪지는 않은 사람들이다. 이날 배 위에서는 오월과 관련한 어떤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 누구도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10시간을 바다에서 즐겁게 웃고 얘기했다.

 빼앗긴 삶, 늘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오월의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일으켜 세웠지만, 상처투성이인 몸과 마음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았다. 고통의 시간은 칼날이 돼 내게 돌아왔다. 내 삶에서 도려내진 ‘행복’이라는 단어. 그렇게 37년을 살았다. 아니 버텼다. 외상으로 인한 후유증, 트라우마 등을 견디지 못 한 채 스스로 삶을 등진 동지들이 올해로 약 400명에 이른다. 사실 정확한 집계조차 쉽지 않다.

 사진 치유 프로그램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의 시간을 직접 대면하는 치유 과정이다. 이들은 지난 2년간 카메라를 들고 광주민주화운동의 흔적들을 찾아 나섰다. 아니, 참혹했던 그 날의 기억으로 들어가 내적 트라우마와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내가 붙잡힌 곳, 구타당한 곳, 동지가 죽은 곳 등은 물론 심지어 붙잡혀 고문당한 곳, 상무대 등 수형 생활을 하며 극심한 고통을 겪은 곳까지 각 공간에서 받은 큰 상처와 한없는 두려움은 외면하고 회피하는 삶으로 나타났다. 주변을 지나기만 해도 불안해질 정도였다.

 민주화 운동은 인정받았다 하더라도 파괴되고, 훼손된 개인의 존엄성은 여전히 남았다. 이 치유 프로그램은 개인의 존엄성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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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뉴시스】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 피해자 양동남 선생님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바다는 삶을 통째로 빼앗긴 '80년 5월 광주 민주열사'들에게 얻음과 취함의 공간이다. 이날 그는 피해자가 아닌 임종진 사진 치유자의 낚시 스승이 되었다. 2년간의 치유 과정을 통해 치유하고 치유받는 관계가 아닌 아픔을 공감하고 고통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  [email protected]
상처의 공간에 직접 가보고 상처를 대면하는 것으로 시작해 지속해서 공간을 마주한다. 외형에 관해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겪었던 장소를 재해석하는 의식 전환 의미에서 대면을 권한다. 한 번이 아니라 공간에 대한 생각이 바뀔 때까지 고통을 겪은 장소를 프레임에 담고 또 담는다.

 임 대표는 말한다. "사진을 찍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행위 안에서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그는 말을 이어간다. "선생님들은 30년 넘는 시간 동안 고통의 장소를 바로 볼 수 없었습니다. 숨조차 쉬어지지 않는 장소에 가 보는 것으로 시작해 셔터를 누르기까지 길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카메라에 눈을 대고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던 처음과 달리 사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바라볼 수 없었던 장소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사진으로 기록해 재해석합니다. 아팠던 감정을 회복의 감정으로 바꾸는 과정입니다. 이를 통해 삶을 꽃피우고 꿈을 품었던 원 존재로서의 자기와의 대면을 경험합니다."

 "내가 거길 뭐하러 가, 속상한데" "사진으로 대체 뭘 하나" 했던 선생님들은 점차 기록하고, 전달하는 사람으로서 80년 5월에 '개입'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진 짐을 조금씩 내려놓는다.

 4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쌓인 가슴속 응어리와 공포, 고통의 감정이 1~2년 과정으로 모두 회복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2기 선생님들이 임 대표에게 말한다.

  “3기에 우덜 또 혀도 되는 거제라?”

 이번 사진 이야기를 준비하며 지난 18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시간 동안 펼쳐지는 오월 광주, 그중 한 시간 동안 부들부들 떨며 울었다. 비단 기자만이 아니었다. 객석의 많은 관객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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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뉴시스】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 피해자 박갑수, 서정열, 양동남 선생님과 그들의 오월 동지들, 사진 치유자 임종진 사진치유공감아이 대표가 트라우마 사진 치유 과정 책거리 낚시 여행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분노와 공포, 여러 감정이 뒤섞여 터질 듯한 가슴을 부여잡고 밤늦은 시간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하물며 이를 직접 겪은 선생님들의 지난 세월은 과연 어땠을까.
 
 이 글을 쓰기까지도 조심스러웠고, 또 조심스러웠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겨우 살아갈 이유를 찾고 계신 선생님들의 기억에서 힘든 시간을 다시 끌어내게 될까 봐서다.

 그러던 중 지난 7일 전두환 전 대통령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의 방송사 전화 인터뷰를 듣고 오히려 용기를 냈다.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에서 계엄군이 광주 시민을 겨냥해 사격하는 장면은 완전히 날조됐다"며 "정도가 지나치면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당시 모든 육로와 전화 등을 완전히 통제하고 광주를 고립시킨 신군부는 시위에 나선 시민 2만여 명을 향해 집단 발포해 광주를 피로 물들였다. 특히 보안사 정보처 산하에 ‘보도 검열단’을 운영하며 언론을 회유·협박해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시민을 ‘폭도’로 매도했고, 신군부에 우호적인 기사만 보도할 수 있게 했다. 거부하는 언론인을 폭행·고문했으며, 가족의 신변을 들먹이며 위협했다.

 광주를 직접 보고 겪지 않은 이들은 방송과 신문을 통해 보도된 ‘폭동’이 진실인 줄만 알았다. 이후 여소야대 국회여서 가능했던 1988년 청문회 등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37년이 지난 지금도 일부 국민은 무관심과 무지 속에서 광주의 오월을 왜곡된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
 
 폭동이 아니라 '학살'이었다는 것을 전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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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뉴시스】조수정 기자 = 전남 영광 앞바다에서 방금 잡은 고기들로 회를 한 상 차려놓고 선상 책거리가 열렸다.   [email protected]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국비 300억 규모의 ‘국립 트라우마 센터’ 건립을 추진하는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직접 영화관을 찾아 '택시운전사'의 실제 주인공이자 5월 광주를 세상에 알린 독일 기자 고(故) 위르겐 힌츠 페터 씨의 부인 에델트라운트 브람슈테트 여사와 함께 ‘택시운전사’를 관람하는 등 광주민주화운동에 지속해서 관심을 쏟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4년 5월 국회의원 신분으로 1기 과정에 참여한 선생님들의 치유사진전을 조용히 찾기도 했다.

 국가폭력에 맞선 고문 피해자들은 치유되지 않은 몸과 마음으로 3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통을 겪고 있다.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은 매일 밤 그들을 옥죈다. 이들에게는 트라우마 등에 대한 치유 과정이 지속해서 이뤄져야 한다. 국가와 사회 국민적 관심도 매우 중요하다.

 ‘만약 내가 그때 광주에 있었다면···’

 뒷골이 서늘해지고, 소름이 돋는다. 자신이 처한 엄청난 상황에서 무엇이 옳은지를 몸으로 증명한 사람들. 죽음을 무릅쓰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내가 누리는 현재가 존재하기는 할까.

 *양동남 선생님은 80년 5월, 가톨릭센터 앞에서 리어카에 실려 있는 시신을 보고 시위에 참여했다. 화순경찰서 무기고에서 총을 가져와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기동타격대로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 27일 새벽 계엄군에게 체포돼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갔다. 모진 고문으로 심한 상처를 입고 국군통합병원으로 후송돼 70여 일간 입원 치료를 받았으며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다.

 *서정열 선생님은 80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으로 시민군에 참여했다. 항쟁 기간 막바지에 고등학생은 집으로 돌아가라는 권유를 받고 도청을 나왔으나 28일 체포돼 31사단으로 끌려가 구타 등 심한 고문을 당했다. 반복되는 기억과 울분, 도청에서 마지막까지 함께하지 못한 죄책감을 갖고 있다.

 *박갑수 선생님은 80년 당시 직장이었던 동아제재소에서 총무를 맡고 있었다. 계엄군의 지나친 진압 작전에 분개해 맨손으로 싸우는 학생들을 제재소 마당에 불러 모아 시위에 쓸 각목을 나눠줬다. 계엄군들의 구타와 당시 잔혹한 상황에 관해 기억하고 말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조수정의 사연(寫讌)은 사진 '사(寫)', 이야기 '연(讌)', '사진기자 조수정이 사진으로 풀어놓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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