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대안 '생리컵' 찾는 여성들…또다시 비화한 '여혐' 현상
릴리안 파동 확대로 생리대 유해성 불안 고조 생리대 대안 찾는 여성들 '생리컵'에 관심 늘어 일부 남성, 생리컵 소재 여성 비하…"여혐 투영" 【서울=뉴시스】장서우 기자 = 릴리안 생리대 유해성 파장이 확산되면서 대안을 찾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유기농 생리대를 찾거나 외국 생리대를 직접 구매하는가 하면 대체품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런데 주요 대체품으로 지목되는 생리컵을 두고 온라인상에 남녀갈등이 재현되고 있다. 특히 상당수 남성들 게시물이 생리컵을 사용하는 여성들의 성생활을 연결시키거나 여성 자체를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담고 있어 '여성 혐오'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리대 유해' 논란에 불안 확산 생리대를 둘러싼 유해성 논란은 릴리안 제품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확산했다. 국내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연이어 부작용 폭로에 나서는 등 생리대 유해성 논란은 사회의 주요 의제로 부각됐다. 릴리안 생리대를 사용한 여성들은 월경혈(생리양)이 줄거나 생리가 아예 멈춰버리는 증상을 겪었다. 이들은 생리대를 교체한 뒤에 다시 월경주기와 월경혈이 정상화됐다고 지적하면서 생리대가 건강상 문제를 불러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40대 여성 A씨는 원래 월경기간이 평균 5~6일이었다. 그런데 생리대 사용 이후 1~2일정도로 줄었다가 급기야는 생리가 멈춰버렸다. A씨는 폐경이 일찍 찾아왔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리대를 바꾼 뒤 월경주기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20대 초반 여성 B씨는 2011년 여름과 2012년 봄에 생리불순이 생겨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정상 판정을 받았으나 월경기간이 평균 7~10일에서 3일로 줄었던 상황이었다. B씨의 생리주기는 올 봄 생리대를 바꾼 뒤에 회복됐다. 20대 C씨는 평균 27~30일이던 월경주기가 생리대 사용 이후 7~8주, 나아가 3개월까지 늘었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스트레스로 지목했으나 생리대 교체 이후 증상은 사라졌다. 여성환경연대가 10~60대 여성 3009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85.8%(2582명)이 생리대 사용 이후 월경혈이 줄었다고 답변했다. 월경주기가 바뀌었다는 응답자도 65.6%(1977명)에 달했으며 생리통이 심해졌다는 답변도 68%(2045명) 있었다.
일회용 생리대에 대한 여성들의 우려가 커지면서 반영구적이며 화학물질이 상대적으로 적게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생리컵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생리컵은 의료용 실리콘을 사용해 만든 자궁 크기의 컵이다. 체외로 월경혈이 배출되지 않도록 질에 평균 10~12시간 삽입하는 방식으로 쓰인다.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쓰레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설문조사 결과 생리컵 사용 경험이 있는 한국 여성 82.4%는 "생리컵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겠다"고 답변했다. 응답자들이 꼽은 생리컵의 장점은 ▲경제성(재사용 가능) ▲피부친화성 ▲환경보호 기여 ▲활동 편리성 등으로 나타났다. ◇남녀갈등 양상으로 번져 릴리안 사태의 반동으로 생리컵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늘면서 온라인상에서 갑론을박도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생리컵을 사용하는 여성들에 대해 일부 남성이 비뚤어진 성차별적 의식을 투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리컵을 둘러싼 온라인 논쟁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부터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지난달 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서 생리컵을 도입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언급하며 '자취하는 처자 집에 놀러 갈 때는 별도의 컵을 준비해야 한다. 귀찮으면 생리컵에 커피를 담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같은 달 8일 게재된 생리컵 국내 생산에 관한 온라인 기사에는 '생리컵을 쓰면 처녀성을 잃을 수 있다' '성 경험이 있는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다' 등 생리컵이 성생활과 연관이 있다는 취지의 댓글들이 잇따랐다.
비슷한 맥락에서 왈가왈부하는 남성들 글이 페이스북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 잇따르고 있는데, 최근 "생리대가 불안해서 주문했다"라는 등 여성들의 생리컵에 대한 관심에 비례해 증가하는 추세다. 게시물 내용을 보면 '생리가 벼슬이냐. 여자는 종족 번식의 도구다' '저렇게 큰 생리컵이 들어가면 어떻겠느냐' 등 오프라인 상에서는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노골적인 비하와 비아냥이 적지 않다. 이 같은 게시물들을 불쾌해하고 비판하는 여성들 반응도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개인 블로그 등에는 생리컵 사용 후기와 함께 정확한 사용법을 설명하는 글, 질막이 손상된다는 등의 게시물을 반박하는 글들이 심심찮게 오르고 있다. 또 페이스북에는 생리컵과 성생활을 연계한 글들을 언급하면서 '여자들 생리컵 좀 쓰게 그냥 놔둬라' '실제로 만나면 여자한테 말도 못 걸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저런다'는 등 일부 남성을 비판하는 성격의 게시물이 다수 나타났다. 이정민(27·여)씨는 생리컵 댓글 논란에 대해 "성 경험 있는 여자들만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는 탐폰(막대모양의 생리용품)이 처음 나왔을 때도 나왔던 말"이라며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미솔(31·여)씨는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여성성을 운운하는 댓글에 분노하는 것도 이제는 일상이 됐다"며 "논리도 없는 엉뚱한 상상을 굳이 언급하면서 비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생리컵 논란 속 성차별 전문가들은 생리컵을 둘러싼 게시물 논란이 우리 사회 일각의 여성 혐오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생리컵 관련 조롱 상당수가 위해성 등에 대한 합리적 분석에 근거한 것이 아닌 처녀성 상실 등 사실과 다른 추측과 함께 비난 섞인 표현들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여성의 '순결'에 관한 내용들이 많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잔존하는 성차별 관념과 이에 기초한 혐오감이 생리컵 이슈를 계기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자발적으로 생리컵 등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여성을 성욕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거나 남성의 결정에 따르기만 하는 종속적인 존재로 여기는 가부장적 생각과 배치되면서 '가치관 충돌'에 따라 공격적인 내용의 게시물을 작성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김수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는 "성과 여성성을 소재로 비하하거나 멸시하는 표현 역시 여성 혐오에 해당된다"며 "많은 남성이 순결에 대한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성적 주체성을 드러내는 여성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생리컵과 관련한 최근의 논란들을 보면 여성에 대한 편견과 비하가 전제된 것으로 보인다"며 "충분한 정보를 토대로 자신의 몸에 대해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의 당연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김진선 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장은 "공교육 과정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의식 없이 비하 발언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며 "여성의 성경험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도 생리컵 논란을 불러일으킨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생리컵 논란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여성의 월경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월경에 대해 사실과 다른 각종 낭설이 온라인을 통해 퍼지는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고 남녀 대립이 공고화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은 "사회적으로 월경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여성 인권을 향상하기 위한 정보 공유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생리컵 문제를 다루면서 사회적 논의를 여성 문제로 확대해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