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잠적 황당"···'알바추노'에 속끓는 자영업자들
고용주, 알바생들 돌연한 잠적과 사직에 골머리 "근로법상 무단결근 등 불성실에도 해고 어려워" "피해 입은 자영업자 고충 들어주는 창구 없어" 【서울=뉴시스】 이재은 김성진 기자 = 전북에서 패스트푸드점을 운영하는 조민석(가명·45)씨는 최근 수백개의 햄버거를 혼자 만드느라 진땀을 뺐다. 두달 전 고용한 아르바이트생(알바생) 김모(22)군이 갑자기 연락이 두절된 채 '잠수'를 탔기 때문이다. 조씨는 A대학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며 군대 가는 내년 2월까지 근무하겠다는 김군의 말을 믿고 지난 6월말 채용했다. 그러나 김군은 대학 개강 전날인 지난달 31일 월급을 받음과 동시에 연락도 없이 잠적해버렸다. 당황한 조씨는 김군이 근로계약서에 적은 대학교와 집에 찾아갔으나 "그런 사람은 없다"는 황당한 답변만 들었다. 김군이 거짓으로 작성한 것이었다. 조씨는 "저녁 장사가 하루 매출 60%를 차지하는데 그 시간에 혼자서 일하면 주문이 밀리고 고객들 항의도 이어지니 정말 죽을 것 같다"며 "장사보다 알바생이 잠수탈 때가 가장 힘들다. 전화를 계속 안 받다가 나중에 '일하기 싫어서 안 나가는데 귀찮게 왜 이러냐'는 문자를 받으면 황당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김군처럼 사전 통보를 하지 않고 갑자기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는 일명 '알바추노'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자영업자들이 많다. 알바추노는 아르바이트와, 노비를 쫓던 내용의 드라마 '추노'(推奴)를 합성한 용어다. 알바생이 아무 예고없이 연락을 끊거나 잠적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신조어다. 추노는 본래 '도망간 종을 찾아오던 일'을 뜻하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의미가 변형돼 알바추노는 '알바를 쫓는 자영업자'가 아니라 '도망간 알바'를 가리킨다. 물론 임금을 체불하고 휴식시간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등 노동력을 착취하는 고용주의 '갑질' 행위에 견디다 못해 관두는 알바생들이 많다. 그러나 역으로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태도로 고용주를 곤혹스럽게 하는 알바생도 적지 않다. ◇알바추노 무용담 즐비···고용주 79% “개강 전 통보 받아"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자신을 '알바추노'라며 근무지에서 도망친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은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지난달 사이 알바추노 관련 글이 1000개가 넘었다. 한 네티즌은 '현직 프로 추노꾼'이라며 "추노하는데 이유를 찾지 말라"며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카페 면접에서 모 의대 휴학생이라고 속이니 사장이 좋아하며 커피를 공짜로 줘 마시고 다음날 안 갔다. 맥도날드 알바를 5년 해봤다고 속여 채용됐는데 매니저 번호를 차단하고 출근을 안했다. 모텔에서 청소하는 알바를 하기로 했는데 방이 너무 더럽길래 은행 다녀온다고 거짓말을 하고 집에 왔다. '꿀잼'(너무 재밌다)이다"라고 글을 남겼다. 이밖에도 '하루 만에 3번 추노했다', '지금까지 추노 횟수 5회' 등 누가 더 많이 '추노'행위를 했는지 경쟁하는 듯한 게시물도 많았다. 고용주들은 특히 알바 인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대학생들이 개강을 앞두고 갑자기 관두거나 잠수를 타는 경우가 많아 일손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소연한다. 지난 달 알바천국이 고용주 211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용주 10명 중 8명(79.6%)은 대학교 개강으로 알바생에게 사직 통보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고 답했다. 받았던 사직 통보 유형은 '면대면 대화'(43.5%)가 가장 많았고 '문자통보'( 37.9%), '무단퇴사'(11.9%)가 뒤를 이었다. 고용주 75.8%는 알바생의 갑작스런 사직 통보로 인해 난처했던 경험이 있었다고 했다. '당장의 일손 부족'(79.5%)과 '거짓말을 했다는 실망감'(9.4%)' 등 때문이다.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핫도그 가게를 운영하는 윤모(51)씨는 지난주 개강을 이유로 알바생 8명이 모두 그만두는 바람에 막막한 상황에 처했다. 윤씨는 "개업한 지 6개월밖에 안됐는데도 방학 때 뽑은 알바생들이 개강 무렵에 전부 관두더라"며 "개강하면 구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채용해도 최소한 한 달 정도는 일을 가르쳐야 하는데 능숙하게 할 정도가 되면 관두니까 지친다"고 답답해했다. 서울 화곡동에서 PC방을 운영한 김모(50·여)씨도 "방학 전에 휴학해서 오래 일을 할 수 있다고 해 채용했는데 두 달 만에 부모님이 휴학을 허락하지 않아 다시 복학해야 한다면서 관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복학을 한 게 아니라 여행을 갔다고 하는데 어이가 없었다"며 허탈해했다. 지난 7일 서울 성북구의 한 편의점에서 만난 점주 백모(56·여)씨는 마침 이날 알바생이 갑자기 그만둬 12시간 동안 근무해야 한다며 연신 한숨을 쉬었다. 백씨는 "3개월 정도 일한 알바생이 손님과 마찰이 생겨 주의만 줬는데 어젯밤에 전화로 '엄마가 그만두라고 했다'고 말하더니 그 후로 연락이 안 된다. 이렇게 갑자기 그만두면 사람 구하기 정말 힘들다. 재수생 딸에게 밥도 차려줘야 하는데 12시간 근무하면 다리에 쥐가 나고 녹초가 돼 아무것도 못한다"고 말하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무단결근 등 불성실 근무를 하는 알바생이 있어도 해고하기 쉽지 않다. 고용주가 해고 30일 이전에 예고해야 하거나 즉시 해고시 한 달 분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근로기준법을 악용하는 알바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윤모(39)씨는 "전날 술을 많이 마셔놓고 매번 아프다면서 지각하거나 결근하는 알바생에게 해고 통지를 하니 미리 얘기하지 않았다고 노동청에 신고했더라. 당시 벌금 80만원을 냈다"며 "또 지각이 잦고 업무가 미숙한 알바생에게 잔소리했더니 다음날 계좌번호 적힌 포스트잇을 던지면서 '돈 안 보내면 신고할 거예요"라고 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하니까 '저는 쓰레기예요'라고 웃으면서 가는 모습에 너무 기가 막혔다"고 전했다. 햄버거 가게 사장 조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조씨는 "작년 3월에 5개월 정도 근무한 알바생이 갑자기 연락 두절되더니 일주일 후에 내용증명서를 보냈다. 근로기준법상 그만둔 날부터 2주안에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 조항과 함께 며칠까지 입금하라는 내용이었다"면서 "원래 월급날인 말일에 챙겨주려고 했는데 왜 잠수 탔는지 영문도 모른 상태에서 그런 증명서만 받으니까 황당했다"고 탄식했다. ◇"알바생만 피해자?···사각지대 놓인 자영업자 권리" 고용주들은 알바생의 인권과 권리 구제를 위한 제도와 단체는 많아지는 반면 자영업자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창구는 마땅치 않다고 입을 모았다. 조씨는 "알바생만 피해자로 보는 인식이 강한데 '가게가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니까 알바'라며 휴대폰만 하면서 농땡이 피우거나 무단결근하는 알바생이 많다"며 "잔소리하면 '노동 착취하는 가게'라고 소문낸다거나 노동청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데 하소연할 곳도 없고 속앓이만 한다"고 울상을 지었다. 계상혁 전국편의점가맹점주협의회 회장은 "법은 알바생에게만 너무 유리하게 돼 있다. 정부에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 알바생의 의무도 지킬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나 지침을 만들어달라고 줄기차게 요청하지만 법으로 규정하기 애매하다는 답변만 한다"고 지적했다. 계 회장은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알바생들도 많은데 국회의원은 노동자 눈치만 본다. 자영업자의 권리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근로감독관을 늘린다는데 노동감독관도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잘못해서 고용주가 피해를 입을 때 구제받을 수 있고 상담해주는 감독관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낮은 임금 등 노무 관리가 체계적이지 않아 알바생들이 일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생이란 신분 자체가 아직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절실하게 구할 생각이 없다는 점과 알바가 저임금 일자리이고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게끔 하는 근무환경이라는 점 등이 겹쳐 알바추노 현상이 많아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노무 관리가 체계적으로 되지 않아 알바생들이 책임이나 의무를 소홀히 하고 근로 윤리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알바는 또 다른 직업체험이 되는 것"이라며 "그런데 임금도 적고 노무관리나 인력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젊은 세대들이 알바를 통해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학습효과를 얻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알바생들이 낮은 임금이나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한 불만이 쌓여 표출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면서도 "알바생들도 근로자로서 책임은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노사는 서로 갈등관계일 수밖에 없지만 상대가 있어야 보완되고 유지되는 것이 지금의 경제체제"라면서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용부도 노사가 고용계약, 사전고지 의무 등을 엄격하게 지키는 등 올바른 작업장 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