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독립’ 주장하는 이라크 쿠르드족, 민족의 100년 숙원 이뤄질까
이라크의 쿠르드족이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나섰다. 이른바 ‘쿠르디스탄’이라고 불릴 최초의 민족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다. 그러나 쿠르드족이 수세기에 걸쳐 염원한 숙원 달성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라크 뿐 아니라 국제사회 전반이 반대의사를 표하고 나선 가운데 운명의 날인 25일(현지시간)이 밝았다. 쿠르드족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독립하겠다”는 쿠르드족 vs “위헌”이라는 이라크 이라크 북부지역을 통치하고 있는 쿠르드자치정부(KRG)는 지난 6월7일 쿠르디스탄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찬반 주민투표 실시를 발표했다. KRG가 자치권을 행사하는 도후크와 에르빌, 술라이마니야 등 3개 주(州)와 쿠르드계가 많이 살고 있는 키르쿠크와 막무르, 신자르, 카나킨시 등에서 유권자 약 500만여명을 대상으로 한다. 이라크 인구의 약 15~20%를 구성하는 쿠르드족은 중동에서 네 번째로 큰 민족이지만 한번도 제대로 된 민족국가를 갖지 못하고 이라크와 터키, 이란, 시리아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사실상의 자치권을 획득한 1991년 걸프전쟁까지 이라크 정부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마수드 바르자니 KRG 수반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국경을 그릴 준비를 하고 있다”며 “이번 주민투표는 쿠르디스탄 국민이 자신의 미래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첫 번째 단계”라고 말했다. 성명을 통해서도 “이는 쿠르드족의 기본권”이라며 “퇴로는 없다”고 강조했다. KRG는 이번 주민투표 결과의 구속력에 주목하기보다는 이로 인해 이라크 중앙정부와의 ‘이별’ 과정에서에 정당성을 확보하기를 바라고 있다. 바르자니 수반은 “투표 이후 국경과 수자원, 석유 등에 관한 합의를 위해 이라크 중앙정부와 회담을 시작할 것”이라며 “중앙정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밝혔다.
하이데르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는 꾸준히 “이라크의 분열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바그다드에서 대화로 결론을 내자”고 촉구하고 있다. 이에 바르자니 수반이 주민투표 디-데이(D-Day)를 엿새 앞둔 지난 19일 이라크 정부에 3일 안에 주민투표를 대신할 안을 내놓지 않으면 이를 강행하겠다고 최후 통첩을 내렸다. 대안은 미국과 유럽 등 국제사회가 지지하고 이행을 보장하는 쿠르드족과 이라크 중앙정부 간 양자협약이다. 그러나 다음날 알아바디 총리가 “KRG가 추진하고 있는 분리독립 운동은 이라크를 분열하고 약화하는 것”이라며 “현재에도, 미래에도 (쿠르드족의 독립을)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표하면서 협상의 길은 틀어지고 말았다. 그는 주민투표 추진에 앞서 이라크 의회와 국민투표에서 개헌이 발의되고 동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라크 정부의 반대 이유에는 국가 분열에 대한 우려 뿐 아니라 석유 수출로 얻는 수익 감소도 포함된다. 쿠르드족이 자치정부를 꾸리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중앙에 종속돼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헌법에 따르면 이라크에서 생산된 원유를 전부 중앙정부가 통제하고 인구 비율에 따라 전체 수익의 17%를 KRG에 배분한다. 쿠르드족이 독립하면 국가 전반의 수익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특히 유전지대인 키르쿠크가 투표지역에 포함되면서 관련 논란이 거셌다.
쿠르드족은 이라크 중앙정부의 반대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직면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가 급한 상황에서 이라크 분열을 조장해 전열을 손상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쿠르드족은 쿠르드민병대를 구성해 IS에 맞서고 있다. 이라크군은 지난 7월 이라크 내 IS의 최대 거점으로 꼽히던 모술에서 IS를 축출했지만 여전히 잔당의 공격에 시달리는 중이다. 지난 14일에도 IS 세력으로 알려진 무장대원들이 이라크 남부의 한 검문소를 테러해 80명의 사망자와 93명의 부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쿠르드족이 나뉘어 살고 있어 자국 내 쿠르드족의 분리독립 운동을 우려하는 터키와 이란이 가장 먼저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터키 외무부는 14일 성명을 발표해 “쿠르드족은 우리가 한 모든 우호적인 권고에도 주민투표를 고수하고 있다”며 “분명히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KRG가 생산하는 석유 및 천연가스의 주된 ‘고객’ 터키에는 1470만여명의 쿠르드족이 살고 있다. 터키는 2014년부터 약속을 깨고 원유수익을 KRG에 이전하지 않는 이라크 중앙정부를 대신해 KRG의 석유거래를 중개하고 있다. 이란도 “쿠르드족을 형제이자 동맹국으로 간주하고 어려운 시기에 그들을 지원했으나 주민투표는 불법이고 이라크와 지역의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주민투표를 실시한다면)국경을 엄격히 통제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미국도 한 목소리를 냈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달 이라크를 방문해 KRG의 수도 에르빌을 찾아 바르자니 수반에게 “이라크군의 IS 격퇴전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주민투표 계획 철회를 요청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도 바르자니 수반과의 전화통화에서 비슷한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 역시 성명을 발표해 “KRG의 주민투표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공표하며 “(IS의 영향력에서)해방된 지역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노력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쿠르드족의 일방적인 결정은 이라크 내 IS를 격퇴하기 위한 노력을 방해할 것”이라며 주민투표 계획 철회를 촉구했다. 바르자니 수반은 이에 콧방귀를 뀌며 주민투표안을 고수했다. 그는 “그들은 단지 우리를 막을 핑계거리를 찾고 있다”며 “그렇게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안정이나 안보를 우리가 이 지역에서 누린 적이 있는가. 단합을 깰까봐 걱정할 정도로 이라크가 단합된 적은 있느냐”고 반박했다. ◇‘주민투표 강행’…종족분쟁·유혈사태 우려도 이런 가운데 쿠르드족과 타 종족 간 분쟁, 이라크 중앙정부의 군사개입 등 유혈 충돌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알아바디 총리는 이미 “이라크 국민이 무력의 위협을 받는다면 군사적으로 개입할 것”이라며 주민투표 강행 시 군사개입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바르자니 수반이 “키르쿠크는 모든 민족을 위한 공존의 상징이어야 한다”며 “키르쿠크 주민들이 투표에서 분리독립에 찬성하지 않으면 그들을 존중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키르쿠크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은 벌써 험난하다. 지난 19일 키르쿠크에서 쿠르드족과 투르크멘족 사이 충돌이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라크 투르크멘전선의 모함메드 사만 카난은 AP통신에 전날 밤 자동차에 나눠 탄 무장괴한들이 투르크멘전선 사무실에 총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쿠르드족 독립운동 지지자를 겨냥한 총격으로 알려졌다. 조인우 기자 [email protected] |